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당당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들의 모든 삶은 연극이자 변장하고 나타나는 축제 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안 속지만요. 참, ‘페르소나(persona)‘란 단어는 인간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로 그 말의 어원은 ‘가면‘입니다. 내가 그냥 꾸며낸 말이 아닙니다! 정말 인간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남자고 여자고 각자 삶의 무대로 나가기 전에 자신만의 가면을 아주 잘 씁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진짜 생각, 충동, 느낌을 감추기 위해 ‘문명화된‘ 복잡한 예법에 따라 자신들의 태도나 말을 숨기고 통제합니다.˝

˝어린이와 술에 취한 사람과 미친 사람만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스스로 자신들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그들은 ‘원한다면 진실을 말해 주지.‘ 라든가 ‘솔직히 말하면...‘ 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을 자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의 탈을 쓴 자들입니다! 게다가 여럿이 모이면 거짓말이 아주 황당한 목소리가 되고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쇼윈도에 진열해 놓고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보게 합니다. 하지만 그 상점 뒤에는 숨겨진 상자들이 있습니다.˝

왐바는 내게로 재빨리 뛰어와서 피고인석에 앉아 숨기고 있는 나의 ‘뒷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특히 궁둥이를 말이죠!˝



˝왐바 양. 인간이 뒷방에 숨기는 비밀 상자에 대한 예를 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후유!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어떤 인간은, 그러니까 러시아, 중국, 쿠바 사람들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그 쇼윈도를 들여다보면 평등이라는 원칙에 따라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하고 재산도 똑같이 나누어 갖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갖지 못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조각의 케이크를 맛봅니다.˝

˝그런데 그들의 뒷방은요?˝ 칼라가 질문했다.

˝뒷방에는 그들끼리 나눠 가진 진짜 케이크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부스러기를 나눠 준 거죠. 그들은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 온갖 특권을 누리고 좋은 음식을 먹지만 벽면이 벗겨진 집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형편없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들은 그것이라도 사려고 긴 줄을 서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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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그러니까 인간이 가장 자주 하는 욕 중 하나는 바로 ‘동물‘이라는 말입니다.˝

청중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칼리는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더욱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지금 ‘동물‘이라고 하셨습니까? 인간의 언어에서는 이 단어가 욕으로 쓰인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동물은 이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저속하고 공격적이며 교양이 없고 비열하고 저속하고 공격적이며 교양이 없고 비열하고 저속하고...˝



˝물론 그들도 동물임을 본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들만 다른 척하면서 우리보고 ‘동물‘ 또는 ‘짐승‘ 아니면 ‘야수‘라고 불러댑니다. 인간은 다른 창조물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간 사이에서 ‘동물‘이나 ‘짐승‘, ‘야수‘ 이렇게 부르는 건 정말 심한 욕입니다.˝

˝존경하는 동물의 왕국 식구들은 방금 증언을 들으셨습니다. 인간은 ‘동물‘이라는 단어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대지의 어머니가 낳은 모든 생명을 욕하면서 자신의 본래 정체성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세르도, 피그, 코숑, 포르쿠, 슈바인!˝

˝이 말들은 여러 나라에서 돼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돼지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돼지라는 단어는 모욕적이고 굴욕적이며 정말 참기 어려운 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모욕적이라고요? 돼지는 고귀하고 분별력 있으며 똑똑한 동물입니다. 도대체 이 단어가 어떻게 쓰이고 있다는 말인가요?˝

˝돼지 같다는 말은 더러운, 게으른, 아둔한, 불쾌한, 구역질 나는, 악취가 나는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더럽고, 게으르고, 아둔하고, 불쾌하고, 구역질 나는, 악취가 나는!˝



˝개 같은! 개새끼! 개자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니, 개는 인간과 가장 친하고 충성스럽다고 소문난 동물이 아닌가요?˝

칼리는 고소하다는 듯 웃으며 필로스를 쳐다보았다. 필로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한쪽 귀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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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몽 자베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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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몽 자베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외관상 일치하는 것이, 특히, 내적으로 파열한다. 눈은 떠오르는 것만을 인지한다.

명증은 전복이 작동하는 이상적인 영토다.



˝나를 궁금케 하는 것은 결코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의 모든 계단을 내려갔다는 점이 아니라, 애초에 어떻게 내가 가장 높이 위치한, 맨 첫 장에 이르렀느냐는 점이오.˝

문체는 고독이라는 무모함이며, 근심의 밀물과 썰물이다. 고독은 또한 자신의 새로운 기원에 비추어진 어떤 현실의 반영이며, 그 기원에서 우리는 혼잡한 욕망과 의심에 가득 차 영상을 본뜨는 것이다.



시간-밖의 문체는 언제나 밖이며, 그럼에도, 자신이 초월하는 단어를 통해 읽힐 수 있다. 따라서 너머의 문체란 자신마저 넘어섰기에, 자신의 결정되지 않은 ‘부재의 무게‘가 우리네 문체를 짓누를 것이다. 그러고는 매번, 무한에 의존하는, 비참한 표현이 되고야 말 제 고유의 인과 속에서, 우리네 문체가 자신의 뭇 한계를 직면하도록 허하리라.

...따라서 침묵에 의존하는 인과의 안이니, 우리네 문체가 침묵을 헛되이 꿰뚫으려 하는 것은 결코 침묵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한 송이 장미 앞에서, 설명할 길 없는 우리네 태도다.
장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감탄한 몸짓으로, 우리는 장미의 삶을 앗아간다.
쓰기란 자신에게 이러한 몸짓을 새로 되풀이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 죽는 것은 우리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책이란 그저 이 모든 죽음을 알리는 일상의 부고일 따름이다.



글이 우리를 참여시킨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내빼기 위해서이리라. 그러한 내뺌이 우리에게는 그저 끝까지 참여를 시키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끝까지, 즉 시작된 참여가 자신의 끝에 다다라, 하나의 새로운 모습의 참여로 우리 앞에 나타낼 때까지.



우리는 온갖 문체의 먹잇감이다.



그가 말했다, ˝관대하고도 가차 없는 어휘. 네가 내 모든 것을 허하고 불허하였음이다. 개중에는 순간이 있다. 오늘날 내 심장을 사랑으로 부풀게 한 순간이, 또한 이제 곧 그 심장의 고동을 너무도 미약하게 하여, 오직 예의주시하는 죽음에게만 들리도록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모든 독서는 제한한다. 제한 없는 글이란 매번 새로운 독서를 부추기고, 매번 그러한 독서로부터 일부 벗어난다.
여전히 읽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글의 유일한 생존 기회다.



ㅡ무엇이 당신을 공포에 빠뜨리는가?
ㅡ당신의 이름에 자리하였으며 더는 정당화하지 않아도 될 것이 나를 공포에 빠뜨리오.
ㅡ저는 당신이 잘 파악되지 않습니다.
ㅡ내가 당신의 진리가 살인을 저지른다고 답하더라도 말이오?



신을 신에, 생각을 생각에, 책을 책에 맞서게 하여, 너는 하나로 다른 하나를 소멸시키리라.
그러나 신은 신을, 생각은 생각을, 책은 책을 견디고 살아남는다. 바로 그들의 생존 속에서 너는 계속해서 그것들에게 도전하리라. 사막이 사막의 뒤를 잇는다. 죽음이 죽음의 뒤를 잇듯이.

(상처받지 않은 상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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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몽 자베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가능만을 물을 수 있다. 불능은 그 자체가 질문이다.

질문은 어둠이다. 답은, 간결한 맑음이다.

답은 기억이 없다. 질문 홀로 추억한다.

(그가 말했다, ˝완성이란 어쩌면, 유일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위로하는 미완의 어떤 형태인지도 모른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요컨대, 미완이 제 미완결성을 가늠할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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