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몽 자베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외관상 일치하는 것이, 특히, 내적으로 파열한다. 눈은 떠오르는 것만을 인지한다.

명증은 전복이 작동하는 이상적인 영토다.



˝나를 궁금케 하는 것은 결코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의 모든 계단을 내려갔다는 점이 아니라, 애초에 어떻게 내가 가장 높이 위치한, 맨 첫 장에 이르렀느냐는 점이오.˝

문체는 고독이라는 무모함이며, 근심의 밀물과 썰물이다. 고독은 또한 자신의 새로운 기원에 비추어진 어떤 현실의 반영이며, 그 기원에서 우리는 혼잡한 욕망과 의심에 가득 차 영상을 본뜨는 것이다.



시간-밖의 문체는 언제나 밖이며, 그럼에도, 자신이 초월하는 단어를 통해 읽힐 수 있다. 따라서 너머의 문체란 자신마저 넘어섰기에, 자신의 결정되지 않은 ‘부재의 무게‘가 우리네 문체를 짓누를 것이다. 그러고는 매번, 무한에 의존하는, 비참한 표현이 되고야 말 제 고유의 인과 속에서, 우리네 문체가 자신의 뭇 한계를 직면하도록 허하리라.

...따라서 침묵에 의존하는 인과의 안이니, 우리네 문체가 침묵을 헛되이 꿰뚫으려 하는 것은 결코 침묵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한 송이 장미 앞에서, 설명할 길 없는 우리네 태도다.
장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감탄한 몸짓으로, 우리는 장미의 삶을 앗아간다.
쓰기란 자신에게 이러한 몸짓을 새로 되풀이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 죽는 것은 우리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책이란 그저 이 모든 죽음을 알리는 일상의 부고일 따름이다.



글이 우리를 참여시킨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내빼기 위해서이리라. 그러한 내뺌이 우리에게는 그저 끝까지 참여를 시키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끝까지, 즉 시작된 참여가 자신의 끝에 다다라, 하나의 새로운 모습의 참여로 우리 앞에 나타낼 때까지.



우리는 온갖 문체의 먹잇감이다.



그가 말했다, ˝관대하고도 가차 없는 어휘. 네가 내 모든 것을 허하고 불허하였음이다. 개중에는 순간이 있다. 오늘날 내 심장을 사랑으로 부풀게 한 순간이, 또한 이제 곧 그 심장의 고동을 너무도 미약하게 하여, 오직 예의주시하는 죽음에게만 들리도록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모든 독서는 제한한다. 제한 없는 글이란 매번 새로운 독서를 부추기고, 매번 그러한 독서로부터 일부 벗어난다.
여전히 읽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글의 유일한 생존 기회다.



ㅡ무엇이 당신을 공포에 빠뜨리는가?
ㅡ당신의 이름에 자리하였으며 더는 정당화하지 않아도 될 것이 나를 공포에 빠뜨리오.
ㅡ저는 당신이 잘 파악되지 않습니다.
ㅡ내가 당신의 진리가 살인을 저지른다고 답하더라도 말이오?



신을 신에, 생각을 생각에, 책을 책에 맞서게 하여, 너는 하나로 다른 하나를 소멸시키리라.
그러나 신은 신을, 생각은 생각을, 책은 책을 견디고 살아남는다. 바로 그들의 생존 속에서 너는 계속해서 그것들에게 도전하리라. 사막이 사막의 뒤를 잇는다. 죽음이 죽음의 뒤를 잇듯이.

(상처받지 않은 상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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