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봐라. 직장에서 집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머릿속에서 무엇을 했나. 돌아오는 길은 어떠했나. 최소 하루 두 시간 자기만의 명상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인데 대부분은 그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있다.

그러나 비탈길은 그런 경박과 멍청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완만해도 비탈인지라 하체는 긴장하고 있다. 꾹꾹 누르는 발걸음의 무게가 순례자의 마음속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걷는 발뒤꿈치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35)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류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아래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9품 계단의 정연한 질서를 관통하여 오른 때문일까. 안양루의 전망은 홀연히 심신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지루한 장마 끝의 햇살인들 이처럼 밝고 맑을 수 있겠는가.

(65-66)

이 점에 대해서는 건축가 승효상이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셋>이라는 글에서 아주 핵심을 잡아 논한 부분이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르며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서양의 눈에는 그냥 남겨진 이 비움의 공간은 집의 생명을 길게 하여 가족공동체를 확인시키고 사회공동체를 공고히 하여 우리의 주체를 이루게 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인 것이다.

(179-180)

수덕사 대웅전 건축은 그 구조와 외형이 아주 단순하다. 화려하고 장식이 많아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현대인에게 이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것의 아름다움,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수식이 가해지지 않은 필요미(必要美)는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덕사 대웅전의 저 간결미와 필요미가 연출한 정숙한 아름다움에 깊은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가벼운 밑화장만 한 중년의 미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237)

해인사 조실 자운스님은 열반에 드는 날 저녁에 4행시를 지었는데 맨 끝 구절은 서쪽에서 해가 뜬다였다. 서산대사는 운명 직전에 당신의 초상화를 가져와서는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고 적고는 입적하셨다. 또 수덕사 만공스님은 저녁공양 후 거울을 보면서 만공, 자네는 나와 함께 70여 년 동고동락했지. 그동안 수고했네라고 말하고 떠났고, 인조 때 걸출한 스님 진묵대사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얘들아, 내 곧 떠날 것이니 물을 것 있으면 빨리 다 물어나보아라하고는 한두 마디 대답하더니 앉은 채로 열반했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의 수필 중 비뚤어진 험악한 세상에서는 차라리 이단을 택하리라는 내용의 글이 있는데, 청주의 어느 스님이 제자들을 보고 얘들아, 앉아서 죽었다는 사람 보았느냐?”고 물으니 , 있습니다.”고 답하자 그러면 서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고 묻고 들어보진 못했으나 있을 법은 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거꾸로 서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였더니 제자들은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그 스님은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을 알아차린 분들의 이야기들이다.

(248)

그러나 좋은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건축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서 건축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이다. 조용한 산세에는 소박하게, 화려한 산세에는 다채롭게, 호방한 산세에는 기세 좋게 건물을 세운 것이 우리 산사 건축의 미학이다. 전국 각 산사의 건축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연과의 어울림은 모두가 저마다의 여건에 따라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

(254-255)

답사를 가든, 수학여행을 가든 우리의 마음과 눈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은 자연 그 차제다. 장엄한 산, 시원한 바다, 유장한 강줄기, 그 사이를 비집고 뻗은 길…… 그것이 국보급 문화재를 보는 것보다 더욱 감동을 준다. 그중에서도 철 따라 바뀌는 꽃과 나무는 우리의 정서를 더없이 맑게 표백시켜준다. 그 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감지하지 못하는 서정의 여백이 없다면 국보도 그저 돌덩이, 나뭇조각으로만 보일 것이다.

(262)

조선의 소나무는 그래도 죽지 않고 여기 이렇게 사철 푸르게 살아 있지 않은가. 웬만한 소나무는 그 칼부림, 도끼날에 생명을 다했을 거이련만 조선의 소나무는 그 아픔의 상처를 드러내놓고도 아리따운 자태로 늠름히 살아 있지 않은가. 저 푸른 소나무에 박힌 상처는 우리가 극복해낸 역사적 시련의 상처일 뿐이다. 아무리 모진 시련도 우리는 그렇게 꿋꿋이 이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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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2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답사기에서 산사 엑기스만
뽑아낸 책인가 보네요.

bookholic 2019-04-13 00:3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예전에 답사기에서 읽었던 것들일텐데, 처음 읽는 기분이었어요.ㅎㅎ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