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그가 축구를 해요 그러그 시리즈 7
테드 프라이어 글.그림, 김현좌 옮김 / 세용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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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그 시리즈를 읽으면서 문득 '나는 이미 지나간 어린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화책이란게 순수와 동심의 상징일텐데.. 이러한 단순한 스토리는 더이상 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못한다는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요.

당연한거겠죠? 저는 이미 그러그의 작은 행동들을 저와 동일시하면서 그속에서 기쁨, 즐거움, 안타까움, 아쉬움을 느낄수 있는 인지수준이 지나버린 다큰 성인이니까요!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러그는 우리 아이들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문득 저희 아이가 다섯살때 그린 사람그림이 떠올랐는데, 그 형태가 너무도 단순하게 큰 머리에 몸통생략하고 머리에서 바로 팔다리가 뻗어나온 모습이 바로 그러그였던것같습니다.

아마 이 캐릭터도 자신의 아이가 그린 그림을 흉내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시리즈에서도 <멋진 음악회>에서 처럼 그러그에게 소포가 배달됩니다. 이번엔 축구공이네요.

축구공을 받자마자 그러그는 나뭇가지를 모아 골대를 만들고 바닥에 하얀 선을 그어 축구장을 만들어 얼룩뱀 카라와 함께 축구놀이를 합니다.

카라는 발이 없어서 공을 찰수가 없으니 골키퍼를 하고, 그러그는 공격을 합니다.

처음엔 헛발질로 실수도 하지만 몇번 골을 넣기도하고, 또 카라가 공을 잘 막아내기도 합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러그의 다양한 표정들이 무척 재밌습니다.

공을 받고 기분좋은 그러그, 머리로 슛을 날리며 어질어질해 하는 그러그, 시무룩하게 아픈 발을 주무르는 그러그, 비치볼이 터져서 아쉬워하는 그러그의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우리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것같았습니다.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을때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죠.

아마 이책이 '손에서 내려놓을수 없는 책 50' 에 선정된데는 아이들의 인지수준에 맞게 단순한 상황들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기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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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고음악과의 만남 - 마쇼.던스터블.팔레스트리나의 시대 클래식 시대와의 만남 1
루시엔 젠킨스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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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에 겉표지의 맨 첫장과 마지막장에 붙어있는 두개의 CD를 먼저 뜯어서 들었습니다.

클래식이라고해서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의 음악처럼 현악이나 관악연주가 아닐까 했는데, 음악이 괭장히 생소했습니다.

일단 성당음악같기도 하면서, 악기만이 아닌 사람목소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클래식과는 차별되는 점이었죠.

저자는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을 '고음악'이라 통칭합니다.

중세는 알다시피 왕권보다 교권이 더 강했던 사회였죠. 왕이 어떤 결정을 하기에 앞서서 교황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했던, 정교 일치 사회였습니다.

어떤 문화의 역사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배경이 가장 중요하다는걸 생각해볼때, 중세의 문화는 거의 신과 교회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두가지 예외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시기에 만들어진 거의 대부분의 곡들은 작곡가 개인의 취향보다는 교회의 요구에 따라 그 형태가 만들어졌죠.

다시말해 역사는 승자의 기록물이라는 말처럼, 문화역시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누가 전쟁에서 이겼냐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수정될수 밖에 없는것같습니다.

이책에는 그리스 로마가 무너지고, 바야흐로 중세를 거쳐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의 문화를 꽃피웠던 르네상스 시기까지 음악이 어떤 형태로 변해왔는지 담겨있습니다.

알비파십자군원정의 침략과정, 헨리8세의 이혼문제가 가져온 영국에서의 종교개혁 등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기록도 흥미진진하지만 그러한 시기와 궤를 같이했던 음악의 역사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음반에 담아놓아 , 비록 용어는 생경하지만 쉽게 친숙해질수있어 참 좋았습니다.

크게 나누었을때 중세에 쓰인 거의 대부분의 곡들은 가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라는 교회의 요구로 단선율위주의 곡이 만들어졌고, 르네상스 이후에는 다양한 폴리포니 장르가 만들어졌다고 요약한다면 이해가 쉬울것같네요.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중 어느 쪽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결국 새롭고 복잡한 음악을(폴리포니장르) 떠받치고 있는 것이 수백년 전 단선율 성가라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서로다른 장르라기보다는 변형으로 보아도 무방할것같습니다.

역시 어떤 책을 읽더라도, 기본은 전쟁과 정복,침략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이해가 쉬운것같네요.

읽을수록 세계사가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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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그의 멋진 음악회 그러그 시리즈 6
테드 프라이어 글,그림, 이영란 옮김 / 세용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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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만난 그러그는 좀 낯선 외모였습니다.
마치 원시부족의 볏집으로 둘러쌓인 움막같기도한 얼굴에 길쭉하고 큰코의 단순한 생김새는 아이들이 익히 보아오던 짱구나 뿡뿡이,뽀로로의 그것과는 또 새로운 것이었으니까요.
그러그라는 이 독특한 캐릭터는 작가 테드프라이어가 자신의 아이에게 읽힐 동화책을 직접 만들면서 탄생했다고합니다.
아마 이책 그러그 시리즈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주고싶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와 모험의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읽은 그러그의 멋진음악회에서는 창의력이 뛰어난 그러그의 모습을 볼수있었습니다.
소포로 북을 하나 선물받으면서, 그러그는 북 말고 다른 악기들도 한번 연주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흔히 구할수있는 재료들을 모아다가 그러그만의 악기를 만들어봅니다.
그렇게 신나는 하루를 보낸 그러그는 그날밤 꿈에서 유명한 악단의 단장이 되는 꿈을 꿉니다.

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때는 백지 상태라고하죠. 어떤 밑그림도 그려지지않은 하얀 도화지처럼 무한한 꿈과 가능성이 열려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싶습니다.
때문에 아직 사물에 대한 뚜렷한 인식능력을 갖지 않은 아이들이야말로 훌륭한 발명가가될수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요.
나뭇가지와 냄비, 깡통과 실을 이어서 훌륭한 악기를 만들어내는 그러그 처럼요!
그리고 그안에서 큰 꿈을 키워나가는 그러그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지금의 아이들은 과연 그러그처럼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속에 꿈꾸며 자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가 꾸는 꿈의 크기를 제한하는것같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것들을 즉시 구해주고, 사줄수 있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인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달리보면 그건 아이의 사고를 제한할수 있다는 면에서 해악이 될수도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돈으로 살수있는 것들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면서 갖고있던 무궁무진한 창의력들은 빛을 잃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결론은 우리 꼬마들에게는 굳이 멋진 완제품의 장난감 보다는 그러그처럼 주변의 사물을 보면서 자유로운 생각을 통해 놀이와 꿈을 즐길수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부모의 관심인거죠.

그러그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악기를 연주하는 의성어 의태어를 읽으며 귀가 즐거워지는 음악같은 동화입니다.
아이들과 반복해서 읽으며 그러그를 흉내내보는것도 재밌을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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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솔솔 나서 생각에 대한 생각이야기 2
노석미 글.그림 / 장영(황제펭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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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기분좋아지는 책입니다. 마치 아이가 그리고 만든 동화책인것도같고 포스터칼라로 정성스럽게 한자한자 글자를 칠했지만 삐뚤삐둘 할수밖에 없었던 어린시절의 미술시간이 떠올라 무척 아련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죠.
처음 드는생각이 ' 이 동화책은 얼마만큼의 깊이를 담고 있을까? ' 였습니다. 사소한 동화같은데 의외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전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저에게 시무룩하게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 엄마 우리반에 누구누구는 예뻐서 모두들 걔를 좋아해, 나도 걔처럼 예뻤으면 좋겠어..'

대부분의 사람들역시 성장과정에서 아니면 살아가면서 타인을 향한 부러움을 한번쯤은 느껴보았을겁니다.
그게 외모가 되었든, 어떤 물질적인것이 되었든, 관계가 되었든 말입니다.
그때 어떤말을 해줘야할지 잠시 당황하다가 물어보았죠.
나: 그친구는 어디가 예쁜데?
아이: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길고, 노래도 잘하고..
나: 얼굴이 예쁜건 어떤거야? 엄마눈에는 너가 세상에서 가장 이쁜데?
아이: 나는 눈이 이렇게 생겼는데 걔는 눈이 요렇게 생겨서 이쁘단 말이야.
나: 그건 다르게 생긴거지, 이렇게 생기면 밉고 저렇게 생기면 예쁘다는 기준은 없어~~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는 그애가 이쁘겠지만, 엄마눈에는 너만큼 이쁜아이를 본적이 없다는거지

그제야 아이가 씨익 웃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동화를 읽으며 절대성과 상대성에 초점을 맞춰서 아이에게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멀리서도 환하게 보이고, 향기마저도 좋은 백합은 스스로를 가장 멋진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을거라는 기대가 큰 실망감으로 이어지게되죠.
그리고 꿀벌처럼 백합을 좋아하는 곤충도 있지만, 이름모를 작은꽃을 좋아하는 노린재가 있는것처럼
세상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는것같습니다. 모두 상대적일수 밖에 없죠.
그래서 결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은 아름답다!
다만 그 역할이 다를뿐, 그 가치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상대적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또 우리는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차별없는 시선을 가져야하고, 자신에게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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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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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수많은 해석들중 이 소설 속에 담긴 세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쯤 놓여있는 걸까.

그들의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도 그저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신파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난 이 세사람중 어느 한사람도 나와 동일시 되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보다는 소설을 읽을수록 자꾸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온다고 해야할까.

처음에는 노라라는 여자에게 화가 났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상대방의 긴 시간의 고통을 외면한채 한 몇년 연락두절했다가 어느날 문득 나타나는 노라가 참 미웠다.

너무도 일방적인 사랑.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블레리오와도 머피와도 감정교류가 느껴지지않는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건 어쩌면 불운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가 할수있는 일종의 사랑법, 사랑을 갈망하지만 늘 방어기제가 앞서는 그녀의 안타까운 사랑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던거다.

오히려 블레리오나 머피중 누군가 더 세게 더 강하게 꽉 그녀가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사랑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노라는 왜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걸까.

어떤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노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대의 나였다면 분명 노라를 부러워 했을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좌지우지 하면서 때론 기쁨에 들뜨게도 때론 아프게도 할수 있는 그녀의 능력을 부러워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20대를 지나는 동안 노라보다는 사빈의 입장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슬픔이 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결국 노라의 만족은 끝이 없고, 모든것들이 파국으로 치닿는 가운데 그녀 마저도 스스로를 무너뜨린 꼴이 되지 않는가.

내생각에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 소설의 제목 '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에 모두 나타나 있는것같다.

어쩌면 루이 블레리오, 머피 블룸데일, 노라 이 세사람이 욕망했던건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닌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한게 아닐까 싶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오히려 더 허하고 쓸쓸할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이 짧은 인생속에 너무나 큰 파국을 가져다 준다는걸 이 소설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보통 책 한권을 잡으면 일주일 이내에 읽었던 반면, 이책은 참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것 같다.

줄거리 보다는 파트리크 라페르 라는 작가의 글솜씨,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유독 마음에 와닿아 한줄 한줄 가슴으로 느끼며 읽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던것같다.

줄거리만 건진다면 단 몇줄에 요약이 가능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무척 쓸쓸하게 재생산 될수 있었던건 작가의 글솜씨 덕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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