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유혹의 기술 - 예능에서 배우는 기획과 설득의 기술
이승한 지음 / 페이퍼로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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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유혹의 기술>은 "예능에서 배우는 기획과 설득의 기술"이다. 시청자에게 친숙한 예능 TV 프로그램의 성패, 흥망성쇠를 분석해 본다. 어떤 프로그램은 인정받고 살아남는 반면, 어떤 프로그램은 속된 말로 죽을 쑤다가 끝난다. 승승장구하던 방송도 어느 순간 시청률 하향 곡선을 그리며 조용히 종영된다. 책은 기획에서 원인을 찾는다. 기획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적합한행동을 설계하는 일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주된 목표는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시청자와 사회의 욕구를 읽어내고, 적절한 포맷과 캐스팅으로 론칭한 후에도 끊임없이 피드백을 수용한다. 보는 이에게 웃음을 주지만, 물 밑에선 숨가쁜 자맥질이 이루어진다. 치열한 방송 환경에서 프로그램의 사활을 좌우하는 예능 기획. 그 기술과 전략을 배워보자는 취지다.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성공을 거뒀고 저 프로그램은 어쩌다 끝내 실패로 기록되었는가. 같은 방식으로 프로그램에 접근했는데 왜 어제는 성공했고 오늘은 실패했는가. TV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쇼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기획에 사용되는 크고 작은 전략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이다.(p.9)


예능을 즐겨 보는 시청자 입장에선 거창한 취지보다 예능이 좋아서, 알고 싶어서 읽게 된다. <무한도전>, <런닝맨>, <라디오스타>, <삼시세끼>를 비롯한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또한 많은 프로그램이 실패한 이유, 개그맨 유재석, 이경규, 강호동, 그리고 나영석 PD 외 여러 예능 스타를 조명한다. 두 번째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다. 예전부터 개인 블로그나 다음 아고라 같은 커뮤니티에서 일반인의 방송 칼럼을 쉽게 접한다. 어느 네티즌은 '좋아요'나 '공감'을 상당수 받으며 나름 영향력을 발휘한다 . 올라오는 글도'아무개 프로그램이 호감인 이유' 혹은 '출연자 아무개의 발언이 불편한 이유' 등 가지각색이다. 저자 이승한 TV 칼럼니스트는 그 중에서 <한겨레>, <시사IN> 등 정식 언론 매체에 기고하고 정식 직업을 삼을 정도면, 방송 칼럼 분야에선 메이저 중의 메이저가 아닐까. 저자의 시선과 글쓰기가 궁금했다.


책을 읽고 놀랬다. 국민 MC 유재석은 방송계 미다스의 손인 줄 알았는데, 정상급 예능인이 된 후에도 여러 프로그램을 속된 말로 말아먹었다는 것이다. <일요일이 좋다>에서 "하자 Gg", <옛날 TV>, <기적의 승부사> 등 이름이 생소한 조기종영 프로그램, 야심차게 론칭한 <나는 남자다>, <동상이몽 - 괜찮아 괜찮아>도 실패한 축에 속한다. 중요한 점은 실패를 발판삼아 비슷한 포맷을 개선하여 성공시킨 사례들이다. <무한도전> 특집으로 지난 프로그램 컨셉을 차용했고,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은 '토토가'와 <놀러와>를 접목한 시도였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가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기시감에 사로집히는 건 흔한 일"(p.37)이라고 한다. 유재석은 오랜 무명 생활 동안 이럴려고 개그맨이 되었나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있고 실패도 많았다. 그러나 실패를 분석하고 개선하여 다시금 재가공하는 뚝심이 유재석을 국민 MC에 오르게 한 동력이었다.



나영석 PD는 CJ E&M에 이적 후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신서유기> 등을 히트시켰고, 2017년 3월 말부터 방영된 <윤식당>은 시청률 13%를 넘었다. 공중파도 달성하기 힘든 시청률이다. 나영석의 성공 전략은 무엇인가. 저자는 '뺄셈'이라고 말한다. "더 화려하게 보여주기 위해 더하는 대신 본질을 잘 보여주기 위해 나머지를 제하는", "'많이, 멀리, 독하게' 대신 '깊게'"를 지향하는 태도다. <꽃보다 할배>는 과거 KBS <1박2일>과 비슷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만, 복불복 게임과 레이스라는 중요한 예능 양념이 빠진 대신에 사람, 사람 간의 관계에 집중했다. TvN 방송사 중역들은 <삼시세끼>를 보고 "시골에 내려간 멤버들이 게임을 하거나 어떤 미션을 수행하느냐"라고 물었다. 나 PD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것 없이 그냥 남자 둘이서 시골에서 밥해 먹고 치우며 하루는 보내는 게 전부"라고 말이다. 대신에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른바 "더 많은 요소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핵심 콘텐츠를 최대한 돋보이게 할 것, '인간'의 속내로 깊게 들어가는 것"이다.(나영석의 성공전략) 그에게 '뺄셈'은 본질을 파악하고 집중하는 능력이다. <꽃보다 할배>의 복제로 의심받았던 KBS <마마도>는 멤버 간의 친밀감과 화학 작용을 살리지 못하여 실패했고, <슈퍼맨이 간다>는 <아빠, 어디가?>에서 보여준 아빠와 자녀 간의 교감을 잡아내서 성공했다.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본질을 살렸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납득이 간다. 방송 칼럼의 생명력은 필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만들고, 방송을 보면서 알지 못한 흥미로운 사실이나 부분을 캐치해서 전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납득이 간다. 반면에 이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가. 책에도 자신의 오리지날리티에 집중하면서 혁신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전략이 유효하지, 마냥 베낀다고 해서 성공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읽으면서 사후확신편향이 아닐까 의심된다. 예컨대, 미덕이 있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미덕으로 미화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나 PD는 <삼시세끼> 기획 과정에서 이우정 작가를 제외한 모든 제작진의 반대에 부딪혔다. 나 PD는 이렇게 생소한 아이템이라면 이건 정말 새로운 시도구나 하여 한 번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과감히 실행했다. 만약에 프로그램이 나 PD에게 따라붙는 자가복제의 오명만 남기고 실패했다면 그의 독단적 결정은 가장 큰 패인으로 지적됐을 것이다. 뺼셈의 미학도 새겨들을 만하지만, 나 PD의 능력과 노하우가 없으면 힘든 일이었다. 오히려 그가 가진 독창성의 영역으로 해석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MC 유재석, 나영석 PD에 관한 분석이 흥미로웠다. 이 밖에도 2등 의식, B급 정서를 십분 활용한 MBC <라디오스타>의 사례, 시청자 피드백을 반영하여 성공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드백에 소홀한 결과 종영이 논의됐던 <런닝맨>, 자극적 콘텐츠를 다루던 방송사에서 이제는 공중파의 아성을 무너뜨린 TvN, 종편 예능을 선도하는 JTBC의 성공 전략이 인상 깊다. 책의 마지막 제 4장인 '시대의 욕망을 읽는 법'에선 "불안정한 시기에는 사람들에게 결핍된 것을 찾아라"라는 격언을 남긴다. 예능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시청자의 욕구, 즉 사회와 시대의 욕구를 민감하게 읽어내야 한다. 예컨대, 일인 가구, 혼자 라이프, 복고로의 회귀 욕구를 겨냥한 방송이 각광을 받았던 것처럼, 새로운 트렌드를 읽고 선도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물론, 방송 시간 동안은 세상 시름을 잊으려 보는 예능인데, 하나하나 분석하고 전략을 찾아내는 일이 못마땅할 수 있다. 이른바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지 마라"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만들어진 비하인드 스토리, 타켓 시청층과 전략이 어떤지를 알고, 방송가가 주목하는 사회와 시대의 욕구가 무엇이며, 거기에 맞춰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과정을 조망하는 일. 독자로 하여금 예능 독법을 가르쳐 준다. 알고 보면 더 재밌다는 말이 있다. 책에서 말한 기획과 전략의 기술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계기도 되겠지만, 그런 거창한 목적보다 예능을 즐기는 마음에서 읽으면 흥미로운 책이다. <예능, 유혹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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