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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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신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가 출간되었다. 전작은 영화화되어 5월 중순에 개봉 예정이라니, 자신의 SNS에 소설을 연재하던 블로거가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섰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는 격언이 떠오른다. 그의 가열찬 작가 행보는 어디까지일지 독자로서도 궁금해진다.


 

<오베라는 남자>가 고전 명작의 반열을 장식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유머와 감동을 독자에게 선사했던 것처럼,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도 마찬가지의 매력이 있었다. 전작의 주인공 오베는 개성을 넘어 진상끼가 느껴지던 할아버지였고, 그런 오베의 일상이 주된 스토리었다. 이번 작품은 단순히 한 주인공만이 아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 입주민들 각각이 저마다 개성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7살 주인공 엘사의 할머니는 단연 압권이다. 여성판 오베라고 할까. 전직 외과의사로 종군 의료봉사를 했던 "할머니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데 별 재주가 없다. 규칙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모노폴리 게임을 할 때 속임수를 쓰고, 르노 승용차로 버스 전용 차로를 달리며, 이케아에 가면 노란색 쇼핑백을 슬쩍하고, 공항에서 수화물을 찾을 땐 안전선 밖으로 나와 서 있지 않는다. 볼일을 볼 땐 화장실 문을 닫지 않는다."(p.29) 딸의 재혼남을 '찐따"라고 부르는 객기.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분쟁을 일으키는 싸움꾼이다.

 

하지만 7살 엘사에겐 학교 왕따인 자기를 대신에 교장에게 지구본을 던질 줄 아는 히어로였고, 미아마스, 깰락말락나라를 비롯한 여섯 왕국 판타지세계 이야기를 전해 주는 입담꾼이었다. 엘사는 엄연히 미아마스 왕국의 작위를 받은 기사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암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소설은 본격적으로 감동적인 시트콤 엔진의 엑셀을 밟는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엘사에게 보물찾기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엘사는 수수께끼를 풀어서 할머니의 편지를 이웃에게 전해주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라고. 비로소 엘사는 깨닫는다. 수수께끼 판타지 인물들은 다름 아닌 편지를 받는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미아마스 왕국의 울프하트였으며, 깰락말락나라의 바다천사였다.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할머니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과연 엘사의 여정은 어떻게 마무리되고 마지막 편지는 누구에게 전달될까. 감동은 독자들의 몫이다.

 

미아마스 기사 엘사의 무용담은 이웃 간의 이야기를 넘어, 할머니, 엄마, 엘사 모녀 3대의 화해를 담고 있다. 전쟁터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았던 할머니, 그로 인해 엄마는 성장기에 할머니의 부재를 감내해야 했고 완벽주의자로 컸다. 7살에 맞지 않게 맹랑해서 밉살스럽기까지 한 엘사. 때문에 학교에서 극심한 왕따를 당한다. 엘사의 여정 속에서 세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스웨덴뿐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까지 담겨 있었다. 아마 전세계적인 공통감각일 것이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감동 시트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오히려 <오베라는 남자>보다 영화화되기 안성맞춤이었다. 수수께끼같은 할머니의 보물 찾기 지령, 아픔을 간직한 이웃들과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판타지 왕국 이야기, 영화 <조이럭클럽>처럼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화해까지. 무료하고 팍팍한 일상을 감동 시트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로 힐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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