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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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이러한 처세술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안다. 품위를 유지하면서 사악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는 뱀처럼 교활하게, 때로는 비둘기처럼 정직하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p.211)

 
자기계발, 인간관계 처세서가 서점가 가판대에 넘친다. 개중에는 실제 유용한 책들이 있는 반면에, 속 빈 강정같은 책들도 상당하다. 왜 알맹이가 없는가 보면, 인간의 다양한 본성에 대한 성찰 없이 단순히 미사여구와 선행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거나, 염치불구한 행동도 마다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계중심의 문화가 뿌리 깊고, 한국 특유의 '화병'이 정신의학계에 등재될 만큼 인간관계가 고민거리다. 직장인들이 업무보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많은 연구결과가 있지 않은가.


반면에, 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시대를 넘어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의 다면적인 본성을 잘 간파한 덕분이다. 명예와 덕행을 존숭하면서도, 시기와 질투, 잇속을 우선하는 속물근성을 잘 표현한다.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촌철살인으로 다가온다.


<사람을 얻는 지혜>도 마찬가지다. 저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17세기 성직자와 철학자로, 스페인 국왕의 고문자격으로 궁정에서 철학 강론을 맡았다. 당시에 계급 사회에 회의했던 그는 대중들이 스스로 삶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고자 했고, 고담준론이 아닌 성공과 행복론, 생활철학과 처세술을 다뤘다. 쇼펜하우어는 "유럽 최고 지혜의 대가"라고 극찬했고, 니체 등 유수의 철학자들이 그라시안에 찬사를 보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고마워하기보다 기대하고 의지하게 만들어라. 기대는 오랫동안 기억되지만 감사의 마음은 이내 사라지기 때문이다."(p.15)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 두려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지레 겁먹고 위축되지 마라."(p.37)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손쉽게 움직일 수 있다."(p.38)

"상대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은 상대를 탐색하는 매우 효과적인 기술이다."(p.41)

"자신의 한계를 보여주지 마라."(p.51)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그들을 떠나라."(p.95)

​"부러진 손가락을 보여주지 마라."(p.114).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의 결과가 타고난 재능 때문인 것처럼 보이도록 그 속에 담긴 노력을 숨긴다.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보다 타고난 것을 더 높이 평가한다."(p.199)


이러한 가르침들은 성직자보다 노회한 정치인의 아포리즘을 연상케 한다. 특히 "사자의 털가죽을 걸칠 수 없다면, 여우의 털가죽이라도 뒤집어써라.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은 결코 명성을 잃지 않는다."(p.223)거나, 부당한 일에 화내지 않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줄 모르고 그에게 휘말리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신을 미주알고주알 드러내지 마라는 조언들은 얼마나 실용적인가. 명예를 소중히하고 미덕을 가르치면서도, 인간의 속물 근성을 꿰뚫고 현실의 처세를 가르치는 그라시안의 면모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모순이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한발 다가서게 한다.

 

인기 웹툰 미생에서 회사가 원하는 임원을 이렇게 표현한다. 땅에 발을 내딛고 구름 너머의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 사실 독자들이 원하는 인간관계론, 처세서도 마찬가지다. 땅(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별(인간의 미덕)바라기를 잊지 않는 책. <사람을 얻는 지혜>는 그런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입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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