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삶이란 흔들리고 부유하는 궤적임을, 이렇게 흔들리는 삶에서 때로 넘어지는 것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찾고 있는 것을 향해 내딛는 착실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다."(출판사 책소개)를 읽고 책에 이끌렸다. 우리나라는 스펙사회다.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아야 하고, 낙오된 인생을 피하려고 분투한다. 하지만 현실이 기성복처럼 규격화될수록, 개성과 자아 찾기에 대한 욕구가 내면에서 불쑥 올라온다. 소설 사라바는 "나는 이 세상에 왼발부터 등장했다."(p.7) 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해서 "나는 왼발로 내디딘다."(p. 420, 2권)로 맺는다. '사라바'(さらば, 안녕), 남 부러울 것 없었던 남자가 서른 즈음에 인생의 추락을 겪고 되돌아본 자아의 궤적과 참 나를 찾는 여정이다.

 

'사라바'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방불케 한다."는 평처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연상되기도 했다. 일인칭 시점의 자아 찾기, 예술적 감성과 편력, 기이한 주변인물과 이야기 등 하루키와 닮았지만, 작중 신흥종교 사토라코몬사마교처럼 의미있으면서 유머러스한 전개, 보다 뚜렷한 이야기 흐름과 주제의식이 한결 읽기에 편했다.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 아쿠쓰 아유무(步)의 자기고백이다. 아유무는 여성적인 수려한 외모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다. 그러나 신경질적이고 기가 센 어머니와 기행을 일삼는 누나로 인해, 유아기적부터 남들에게 주목 받지 않으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아유무의 가족력이 독특하다. 아버지의 해외 주재로 이란, 이집트의 생활을 경험했다. 특히 누나는 아유무의 회상에 따르면 남들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끌고 싶어했다. 마이너리티한 감성을 고수하며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해 등교를 거부한다. 고둥에 집착하여 방 안을 쥐꼬리가 달린 고둥으로 도배하고, 종교에 심취하기도 한다. 모녀 사이의 기싸움은 날로 심해지며, 그럴수록 아유무는 더욱 타인의 시선을 회피한다.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 자신은 뛰어난 외모로 학내에서 선망받는 입장이었지만, 다수의 편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타인에게 호감을 표하거나 연애를 하는 것조차 남들의 시선이 신경쓰여서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학창시절 동네에 번성했던 기이한 종교 사토라코몬사마교의 흥망성쇠와 주변인들의 변화, 죽음을 겪고, 특히 일본 경제 불황의 심화로  잘 나가던 프리랜서 기고가로서의 지위도 타격을 입는다. 서른 즈음 아유무의 신상 변화와 추락은 탈모로 구체화된다. 인기의 원천이었던 외모의 변화. 소극적인 성격이었음에도 학창시절 선망 받을 수 있었고, 대학생으로서 난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외모가 주는 호감 덕분이었다. 한편으론 코미디 촌극 같지만 탈모는 아유무의 자존감과 아이덴티티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나락에서 '아유무의 시간'은 흘렀다. 옛 동네의 정신적 지주였던 야다 할머니의 죽음과 사토라코몬사마교의 진정한 의미. 출가한 아버지와 결혼한 누나, 지인들의 속내를 들으면서, 남들의 시선과 소극적인 태도로 정체되어 있던 아유무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유년기를 보냈던 아랍권에서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고, 동경대지진을 겪는다. 나락을 맛본 아유무는 오히려 동경에 남고, 콥트인 교회가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집트를 방문한다. 거기서 동경과 동성애적 감정을 느꼈던 이집트 콥트인 친구 야곱과 재회한다. 아유무는 묻는다.

 

"믿는다는 건 뭘까?"(p.394, 2권)

 

소설에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정체모를 사토라코몬사마 등 다양한 종교가 언급된다. 결국 서른이 넘어 아유무는 자신의 줄기, 믿음을 찾아 여정을 떠난 것이다. 아마도 작품이 종교적 문제를 다룬 것은, 그 자체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마음의 지주' 처럼 자아의 버팀목,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내면의 사랑과 보금자리, 실존적 의미를 찾는 여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야곱과 나눴던 그들만의 밀어. '사라바'처럼.

 

"우리의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잘 있어' '약속이야''굿 럭''갓 블레스 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p.257, 1권)

 

아유무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정체되어 보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인정하고, 자신의 기원을 찾는 여행을 간다. 태어난 곳, 이란에서 아유무는 말한다.

 

 

"나는 왼발로 내디딘다."(p.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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