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많이 읽었었던 청소년문학.
‘청소년 문학’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한동안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하도 이 책의 표지가 포스터처럼 붙어있길래 호기심이 자극되었는데, 사실 그보다도 이 소설의 제목과 표지의 일러스트 소년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끈 주역들이다. 소년의 무표정한 표정이 아무 감정을 못느끼는 사람처럼 차갑게 보이면서도 어딘가 슬퍼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책의 표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 타입인듯하다.)

아무튼, 표지의 소년처럼 이 책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에 장애가 있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진 ‘윤재’가 이끌어간다.
윤재는 헌 책방을 하는 엄마와 할머니 손에 자란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병에 걸린 윤재는 그 어떤 보편적인 기쁜일에도 슬픈일에도, 웃을수도 울수도 없다.
다시 고쳐 생각해보면, 어쩌면 누군가가 느끼기엔 증오, 분노, 배신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병을 차라리 속 편한 병이라 긍정적이게 여길 수도 있겠다.
적어도 작은 감정에도 예민한 나는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감정 자체를 모른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을테니까.
‘곤이’는 모든 감정에 예민한 여린 아이이다.
어떤 이의 눈에는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이기적인 비뚤어진 아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윤재의 병을 알고난 뒤 오히려 친구가 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린 아이인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어릴 때 부모를 잃어버린 뒤 순탄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며 분노를 느끼고 원망을 느끼고 슬픔을,아픔을 너무 예민하게 느껴 방황할 뿐이었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형수 출신의 미국 작가 P.J.놀란이 한 말이다.(p.113)
이 인용된 문장이 이 책의 전체적인 윤곽을 만들었다.
윤재는 비록 선천적인 아픔을 가졌지만, 엄마와 할멈의 끝없는 관심과 사랑 속에 자랐다.
그리 유복하진 않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책을 읽었고, 엄마와 할멈을 통해 감정을 학습했다. 뇌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 딱히 표정으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가슴으로는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며 자랐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윤재의 장애가 한번씩 튀어 나올 때,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그를 괴물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윤재가 나름대로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며 평범해 보이는 연기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건, 엄마와 할멈이 지속적인 관심을 주었고, 윤재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극적인 살인 사건으로 할멈이 죽고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도 그들이 줬던 사랑의 기억이 계속해서 그를 안정시킨 것이다.
반면에, 곤이는 잘나가는 부모의 밑에서 태어나 유복한 집 도련님이 될 수도 있던 운명이었지만, 그가 아직 아기였을 때 놀이공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고, 영영 그 손을 놓치게 되어 결국 여러 보육원을 거치며 거칠게 자라게 되었다.
P.30에서 나오는 ‘생각보다 운이라는 놈이 세상에 일으키는 무지막지한 조화들이 많으니까.’라는 말이 이 모든 상황들을 대변해준다.
곤이는 17살이 되어서야 친부모 손에 넘겨진다. 그마저도 이미 엄마는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끙끙앓다 죽은 상태였다. 이미 상처받을대로 받은 모난 아이가 되어 소년원도 갔다왔고, 세상을 증오로만 바라보게 된 상태였다.
선천적인 괴물이지만 사랑과 관심 속에 자란 윤재와, 선천적으로는 정상이었지만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후천적 괴물이 된 곤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만나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줄거리다.

책의 뒷표지에 ‘영화보다 강렬한, 드라마처럼 팽팡한’이란 문구가 눈에 뛴다.
글쎄. 나는 솔직히 이 소설이 영화보다 강렬하고 드라마처럼 팽팽한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영화로 치자면 강렬함보다는 부드러움쪽이고, 드라마로 치자면 팽팽하다기 보다는 약간 느슨하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느슨하다는 게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강렬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억지도 없고, 팽팽하게 긴장시키기 위한 어색한 문장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강렬하거나 팽팽하기 위해서는 사실 어떤 어색한 극적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윤재의 성격처럼 담담하지만 똑부러지게 이야기를 읊어갈 뿐이다.
칼이 왔다갔다 하는 잔인한 상황에서도 묵직하게 글을 풀어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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