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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박제이 옮김 / 문학수첩 / 2022년 3월
평점 :
누군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수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멋쩍게 웃으며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수학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려운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어 좋았던 수학이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려웠고 싫어졌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느꼈을 것이다. 수학은 범접하기 어려운 교과였다는 걸. 수포자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생활에서 가장 쉽게 사용하고 가장 밀접하게 활용하는 분야는 수학일텐데 왜 나에겐 수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게 느껴지게 된 걸까. 정해진 방법대로, 공식을 외워 문제를 해결해 정답을 맞춰나가는 그런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가 없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제목 때문이었다. <수학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이란 제목은 마치 '수학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 그래도 조금은 재밌을 걸?'하며 나를 살살 꼬드겼다. 어렸을 때 조금은 좋아했던 수학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렇고.
이 책은 저자인 니노미야 아쓰토가 담당 편집자인 소데야마 씨와 함께 11명의 수학자를 만나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교수에서부터 교사, 천재 중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만의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수학자, 이름만 들어도 깐깐한 대학 교수 느낌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게 박혀있던 하나의 편견이었다. 실제로 수학자를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뭔가 날카로운 눈매에 안경을 쓰고 있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으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일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아니었다. 교사와 개그맨의 꿈을 합쳐 수학을 가르치는 다카타 선생님, 어른을 위한 수학교실을 운영하는 호리구치 씨 등 자신만의 길을 찾아 수학을 연구하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도 수학자였다.
저자와 인터뷰이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당시 대화를 그대로 옮겨두듯 서술한 책이라 나도 함께 그 자리에서 여러 수학자들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궁금한 것, 의문이 드는 질문들을 저자가 수학자에게 전달해주는 부분도 많아 신기하기도 했다. 정말 수학에 대한 편견을 가득 가진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가식적이지 않고 정말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나온 전문 지식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이 가진 수학에 대한 사랑과 열망은 너무나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내가 겪었던 입시 수학이 미워질 정도로 말이다. 단지 풀고 정답을 맞히는 단순한 기계적인 사고가 아닌 내 스스로 질문하며 탐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고 정리해나갔다면 나도 이들처럼 수학에 모든 걸 바치지는 않았을까?
수학자들이 말하는 수학은 같은 결이 있었다. 수학은 결국 모든 것이라는 것. 수학을 공부하는 건 인간을 공부하는 것이고 모든 대화와 상황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수학은 자연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 냈기 때문에 하나의 관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분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표를 몰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수식을 몰라도 수학을 즐길 수 있다. 단지 '왜?'라는 질문을 시작하면 그것이 수학이라는 지바 교수의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즐기는 데엔 다른 건 필요 없다. 즐기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에 뛰어드는 용기,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수학 공식을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수학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수학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았을 뿐이지.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며 내가 너무 편협하게 수학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수학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요즘에서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보게 하고, 놀이를 하며 좀 더 즐겁고 탐구하며 수학을 배우게 하고는 있다. 하지만 정해진 내용과 분량이 있고 그 나이 또래에 바라는 목표가 정해져 있는 지금의 교육에선 그 틀을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공식이 중요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수학의 특성 중 하나인 '추상성'이 오히려 수학의 감동을 없어지게 만든다는 다카세 씨의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갔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의 교과서를 스토리텔링으로 실생활과 관련 있게 계속 만들고 있지 않나. 단순한 문자로 치환하지 않고 우리 삶에서 수학을 경험할 수 있게 말이다.
진정한 수학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 사람이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한 후치노 씨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은 내가 즐기는 수학이 진정한 수학이라는 것이다. 과연 나는 내 삶 속에서 수학을 즐기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 11명의 수학자들처럼 수학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제목과 같이 수학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술술 읽히는 책이라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읽으면 인식 전환에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뭐, 조금은 수학이 재미있어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