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설.
마르크스는 <자본>에 대한 서문에서 다음으로 같이 말한다. 사람 많은 지역들에 사는 도시사람들로만, 시민들로만, 이뤄진 오래된 '근대사회'라는, 곧 자본주의적인 지배계급들에 사회에서는,
"경제적 운동에 대한 법칙들을 드러내고자, 책을 쓴 궁극적인 목적이다."
역사적으로도 규정된 한 사회에서 생산관계를 발생·발전·쇠퇴로부터 연구하는 건,
마르크스 경제학설에 대한 내용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에 대한 생산들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대한 분석으로는 먼저 상품에 대해서 처음부터 나누어서 분석한다.
- 물건을 구매할 때는 성분표를 먼저 보는거와도 같다.
가치.
사용가치: 쓸값.
교환가치: 바꿀값.
잉여가치: 남긴값.
상품이란, 첫째로는 사람들에 욕구를 충족해주는 물건들이다.
둘째로는 다른 물건들로 바꿀 수 있는 물건들이다.
팔리는거에 대한 쓸모는 쓸 수 있는 쓸값들로 만들어준다. 바꿀 수 있는 값어치들은 바꿀값들로 또는 단순하게는 그저 값어치들로 무엇보다도 한 갈래들로부터 된 쓸값들은 굳어진 값들로부터도 마찬가지로 바꿀 수도 있는 같은 관계들로 된 비율들이다.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여러 건들에 달하는 바꿔지는 모든 갈래들로 된 쓸값들은, 심지어는 매우 많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되어서 서로 전혀 견주어서 보기도 힘들다. 쓸값들까지도 끊임없이 서로 견주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는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특수하게 정해서 굳어진 사람들로 모인 사회에서나 모임들로 맺어진 관계들에서는 체제라는 틀 내에서도 끊임없이 서로 견주어지는 이들로부터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맺어질까. 이들 사이에서 똑같은 건 일노동으로부터 생산된 물건들이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물건들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여러가지로 된 일노동으로부터도 서로를 견준다. 상품에 대해 만들어진 생산에는 하나씩 여러가지로 많게도 만들어진 물건들로 사회적 분업이라는 형태로 사람들로 따로 모여서 나누어진 생김새로도 만들어진다. 이러한 모든 만들어진 물건들에는 바꾸어지는 과정으로부터 서로 견주어지는 사람들로 모여서 사회관계들로부터 맺어진 틀이라는 체제다. 그러므로 모든 상품이란 물건들에 두루 안에서 붙었거나 닮 건, 그저 뛰어나서 굳힌 일노동에서가 아니라 그저 추상적인 막연한 생각으로만 두루 이뤄진 곧 흔한 사람들에 일노동으로부터 이뤄지기 때문이다. 수 십억이나 수 백억 건에 교환이라는 바꾸는 행위나 짓들로부터도 증명한다. 그러므로 따로 된 물건들은 그저 사회적 필요라는 사람들로부터 모여서 조르고 구하는 일노동에 대한 시간이란 때들로부터 한결같은 숱들을 드러내는데 그저 지나지 않는다. 한 물건에 값어치들에 대한 크기는 사회라는 큰모임에서도 구하는 일노동에 대한 양이라는 값이나 또는 그에 대한 물건들, 곧 그러한 쓸값들에 대한 만들어지는 생산들을 위해서 사회라는 큰모임에서도 구하고자 하는 일노동이란 시간이란 때들로부터 모여져서 결정해서는 굳는다. 사람들 서로 다른 갈래로 만든거로 바꿔서 값어치들로부터도 서로 견주는 짓들로부터, 만든거에 들일 수 있는 서로 다른 갈래에 일들로부터 사람들에 대한 일들로 또한 서로 견준다. 그들로는 섣불리 알지도 않으면서 그렇게만 한다. "<돈>에서 값어치는, 전에 한 돈 배운 사람들도 말한 바와 같게 두 사람들에 관계다. 다만 그는 다음들로 같은 점도 덧붙여야만 했었다. 무언가들에 겉모습 아래에서 감추어진 채로만 맺어지고, 따로 강조한 자취들이나, 모임들에 대한 묶여진 틀들로부터 있는 모여만들어진 틀로 바라볼 때나, 또는 여러 똑같고, 크게만 바꿔지고, 보여지고,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맺어진 틀들로부터 바라볼 때만 값어치는 무엇인지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다.
"값어치는 모든 만들어진 무언가들로만 엉기거나, 뭉친 일때들로부터 굳어진 '셈'들에 지나지 않는다."
<나랏돈들 따지기>. 그러므로 만들어진 무언가들로 이뤄진 일들에 대한 겹친 결들로 꼼꼼하게 쪼개본 뒤에야. 마르크스는 값어치들에 모습들이나 돈들에 대해 비로소 바라볼 수 있다. 마르크스에 대한 으뜸가는 물음들로, 값어치들에 대한 돈모습들에 깊게도 따져보고, 곧 따로·뜻 밖에 바꾸는 짓들이나, 한 만들어진 무언가에 대한 굳은셈들에 다른 만들어진 무언가들에 대한 굳은셈들로 바꿀 수 있는 처음이거나 또는 '뜻 밖에 값어치들에 처음모습들로부터 많고도, 또 서로 다른 만들어진 무언가들로부터도 하나에 같은 달리 굳어진 무언가들로부터 바꿔지고, 흔한 값어치들에 모습들도 거치고, 마지막으로는 빛나는 '쇠돈'(금)이라는 달리 굳어진 무언가로, 곧 흔하게 값어치들로 된 무언가들에 대한 돈모습들로부터 끝나는 바뀌고, 낫게 더 나아간, 자취들에 대한 길다리부터 깊게 따진다. 바꾸거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더 낫게 나아간, 매우 높은 돈으로 모든 따로만 나뉜 일들에 대한 모임들에 결들로부터, 혹은 사고팔 수 있는 곳들로부터도 하나로 맺어기는 하지만 따로따로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모임들로는 맺는거도 정작 흐리터분하고 숨기기만 한다. 마르크스는 돈들에 대한 온갖 쓰임들도 매우 꼼꼼하게 따져본다. 여기에서는 다르게 <돈>에 앞 갈래에서는 여러 가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라보아야만할 건 흐릿하게만, 때로는 꾸밈없이만, 따라풀게만 보이던 그저 말해진거나 꼴들로부터도 무언가로 바뀌거나, 만들어지고, 나아간 자취들에서도 매우 크게 쌓이거나, 드러난 일감들로 다룬다.
<돈>: 있는 돈들로는 바꿔진 무언가들로부터 한결같은 길다리를 먼저 내세운다. 돈들에 대한 다른 쓰임들로, 그러니까 쉽게 만들어진 값어치들도 같은 무언가들이나 또는 흘러 널리 쓰일 수 있는 꾀들로부터도, 또는 값으로 치르는 꾀들, 감추거나, 모아진 돈들 및 어느 나라에서나 쓰일 수 있는 돈들도 여러가지 쓰임들로부터는 하나하나에도 서로 다른 가닥이나 서로 맞서거나, 모여 만들어진 뜻들로부터는 하나에 다른 여러 오르내리는 길다리들로 나타난다.
남긴값.
만들어진 무언가에서 한결같이 낫게만 나아간 일다리들도 돈으로만 주고받는다. 만들어진 무언가들도 흐른 돈들에 대해 써보면 다음으로 같다. C(만듦) - M(돈) - C(만듦)이다. 거스르면, 돈들에 대한 흔하게 써보면 다음으로 같다. M(돈) - C(만듦) - M(돈), 곧 남는 돈들도 덧붙여 팔거나 산다. 그래서 흘러 던져넣는 돈들에 처음 값어치들로부터는 늘어난 돈들에 대해 마르크스는 남긴값이라고 부른다. 돈지랄들에 따른 돈들도 흐르거나, 늘어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늘어나거나 바로 목돈에서 모갯돈들로, 곧 다른 자취들로부터 굳어진 모여서 맺어지고, 만들어진 모갯돈들로 달리 되진 않는다. 남긴값들로는 무언가들로부터 그저 흘러가기만 해서는 생겨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흘러가는 무언가들로는 바꿔지는 같은 값어치들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긴값들 또한 그저 값만 올린다고 생겨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는 사람들이나 파는 사람들이나 모두 두 쪽, 모두 잃거나, 얻는 건 안 맞다가 시나브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아주 크고 많거나 그저 고르게, 모여지거나 보여진 거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지만, 따로 일어난 걸 다루는 건 아니다. 남긴값. 얻으려면 돈 가진 사람들로는 "쓸값들로부터 값어치들로부터 흘러나온 뛰어난 결들로 지닌 무언가들이다", 곧 쓰는 길들로부터 마찬가지로 값어치들로부터 만드는 길들로부터 무언가들로 "여러 사고파는 곳에서 찾아내야만 한다." <돈>. 무언가는 있다. 다름아닌 사람들로부터 일하는 힘들이다. 사람들에 일하는 힘들로 모여, 쓰는 거도 일이고, 일한다는 건 값어치를 만든다. 돈 가진 사람들로는 일하는 힘들로부터 값어치대로 산다. 일하는 힘들에 값어치는 다른 모든 만들어진 무언가들에 값어치와 마찬가지로 일하는 힘들로부터 만드는데드는 모여진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일때'들로부터 곧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피붙이들로부터 날마다 쓰는 살림거리들에 대한 값어치들로만 굳어진다.
돈 가진 사람들로는 일하는 힘들도 샀기 때문에, 쓰고자, 곧 하루에, 말하자면 12 때들로 움직이거나, 일한다. 그리고 일하도록 맡긴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로는 6 때에 반드시 일때들로부터 일들 속으로 스스로에 살림들도 지킬 수 있는 만들어진 물건들도, 만들고, 나머지 6 때들로 남긴일때들에 대한 일로는 모갯돈 만지는 사람들에 돈 내어 값 치르지는 않는 만들어진 무언가들에 나머지들로, 곧 남긴값들도 만든다. 따라서 만들어지는 쪽에서 볼 때는 큰돈들에 두 가지, 곧 바꿔지는 않는 큰돈들이나 바뀌는 큰돈들에 대한 가지들로 갈라 나눠봐야만 한다. 바꿔지지는 않는 큰돈들로는 틀들, 일거리들, 만들거리들, 따위들로 만들어지는 솜씨들로 쓰여지는 구석들로, 값어치는 바뀌지도 않고 그대로 한 번에 또는 조금씩 만들어지는 무언가들로 옮겨진다. 바꿔진 돈들로는 일에 대해서도 쓰여진다. 바꿔진 돈들에 대한 값어치는 바뀌지도 않는 모습으로 있지도 않고, 일하는 길에 남긴값들로 만들면서 늘어난다. 그러므로 모갯돈들에 대한 일하는 힘들에 대해 억지로 짜낸 걸 둘레로 나타내려면 먼저 남긴값들로 들인 큰돈들 모두로 견주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오직 바꾼 돈들로부터 대보면서, 견줘봐야만 한다. 그리해서, 바로 앞에 보기를 가지고 말해본다면, 남긴꼴값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부른다. 6:6=100%.
큰돈들로 생겨나는데는 자취에 대한 두 가지를 내세운다. 첫째, 만들어진 무언가들로 흔하게는 견주어보면 높은 길들로 낱낱 사람들에 주머니들로 굳어진 셈들로 돈들도 쌓어야만 한다. 둘째, 겹친 뜻으로 마음대로 하는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일하는 힘들로 파는 데 있어
모든 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데로부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터나 만드는 솜씨들로부터도 마음대로 일하는 사람들, 곧 스스로에 일하는 힘들로만 오직 팔기만 하는 살아남는 길조차도 없는 '밑돌섬돌'들도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남긴값들로부터 늘리는 밑바탕들로는 두 가지로, 일하는 때를 늘리는, '모자람 없는 남긴값', 들어간 일때들로부터 줄이는, '견주는 남긴값'들이다. 첫번째로 나눠본다면 마르크스는 일하는 때들로부터 줄이도록 일하는 섬돌들에 싸움들이나, 14-15 즈믄에 일때들에 대한 늘림들 및 19 즈음에 일터에서 줄어든 나라힘들로부터 끼어들어 매우 강하게 남긴 생김새들에 그림들도 드러낸다. <돈> 내놓는 뒤로 모든 나라들에 오랜나라들에 일하는 섬돌들에 움직이는 자취들에도 그림으로도 더욱 끝맺는 많고, 새롭게 드러나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견주는 만들어진 남긴값들도 쪼개는 구석들로는, 돈지랄들로부터 일만들고, 큰 자취들로도 셋으로 나누어 따져봤다. 1. 쉬운일. 2. 나뉜 일틀. 3. 큰 일틀.
마르크스는 돈지랄들로부터 더 나아가 바탕이나 눈 뜨이는 보기들로부터 얼마나 깊숙하게 파헤쳤는지를, 러시아에서 이른바 사고파는 곳에서 만들어진 손일들도 깊게 따져보며 위에 세 갈래들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로, 보기를 들어 밝히고는 넉넉하고 많은 감들로부터 주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크고 많은 틀들로부터 이뤄진 일들에 대한 고칠 수 있는 보람들로는, 1867해에 마르크스는 적었고 바로 뒤로는 똑같이 나눈 즈음 동안에 많은 러시아, 일본, 따위들에 '새로운' 나라들로부터 뚜렷하게 나타났다.
나아가서 마르크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하고 새로운 쌓여진 큰돈들도 나눠본다. 곧 남긴값 들에 한 큰돈들로 주고받고, 그리고 남긴값들로부터 돈 많은 사람들에 낱사람들에게 얻고자하거나 분위기를 모자람 없게 쓰는게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 쓰는 걸로 나눠본다. 마르크스는 큰돈들로부터 주고받고 남긴값으로는 모두 변하는 큰돈들도 된다고 내세우는 동안에도 모든 오랫동안 돈생각만 한 사람이던 애덤 스미스 뒤로도 무엇으로 그릇됐고, 맞지 않았는지는 밝혀냈다. 말하자면 모든 큰돈들에서 만들어진 솜씨+바꾼돈들로 나눈다. 얼마 동안에 바꾼돈들에 견주어 보면 얼마 동안에 안 바뀐 돈들에 대한 좀 더 빠르게 늘린다는 건 돈지랄들로 나아가거나 모여진 사람들로부터 바꾸는 데에도 매우 무거운 뜻으로 지닌다.
또한 쌓인 큰돈들로는 틀들로부터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틀로 세우도록 빨리 나아가게 하고, 그리고 한쪽에 맨끝들로는 넉넉함들로, 맨끝에 다른 쪽으로는 가난들도 만들어내고, 미리 일할 수 있는 사람들도 갖추고는, 곧 일하는 사람들에 견주어보아도 넘치도록 낳는다. '돈지랄들로 넘친 드나드는 사람들로는 더할 수도 없이 크가 많은 생김새를 띠고, 맨끝에 빠르기들로 늘려 만들 수 있도록 큰돈들에 붙여준다. 만드는 솜씨나 생김새들로도 쌓여진 큰돈 및 믿음들로부터 서로 맺어질 수도 있고, 돈지랄 떠는 나라들로는
되풀이해서 나타나기에 처음으로는 고르게 보자면 열 해에, 나중에는 더 길고 덜 굳어진 벌어진 사이들로부터 일어나는 넘치게 만들어진 나머지 큰돈들에 대한 깨진 두려움들도 알 수 있는 열쇠를 갖다받친다. 돈지랄들에 밑바탕 위로 이뤄진 쌓여진 큰돈들부터 으뜸들로 쌓여진 모갯돈들부터는 곧 만드는 솜씨들로부터도 억지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떼어놓게 하고, 모든 땅들로부터도 정작 밭 짓는 사람들도 내쫓거나, 나랏땅이라고는 그저 빼앗거나, 다른나라로부터 스스로에 나라마저 잃거나, 나라빚, 다른 나라들에 대한 돌봄구실, 따위들로부터는 잘 따져봐야만 한다. 한쪽으로만 으뜸으로 쌓여진 돈들에 끝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는 있지만 정작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쪽 끝으로는, 돈 가진 사람들, 곧 돈 많은 사람들만 지어내고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돈지랄들로부터 쌓여진 자취들에 기울임들로는 마르크스는 다음으로 같은 이름난 말로도 그려냈다.
바로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빼앗는다는 건 가장 모지고, 가장 끔찍하고, 그리고 가장 더럽고, 가장 나쁘고, 가장 남부끄럽고, 가장 괘씸하고, 가장 얄미운, 억누르기도 힘든 마음들 속으로 따르기만 했다. 스스로에 일로부터 얻는 낱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말하자면 낱낱으로, 홀로 선 일하는 사람들이나, 일에 대한 여러 가지들로부터도 뒤섞인 채로 낱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자리에다 딴사람들에 일들로부터 도와 딴일로 여러 꼴들마저 마음대로 비틀어 짜낸 일들도 하고선 돈지랄들도 떠는 낱사람들로 들어선다.
빼앗긴 사람들로는 스스로 살림차리는 일하는 사람들도 아니라 많은 일하는 사람들마저 지지고, 비틀고, 짜내는 돈 많은 사람들이다. 빼앗긴다는 건 돈지랄들로부터 만들어진 바탕들로부터도 안에서부터 따르거나, 미치던 힘들로부터, 곧 모갯돈들로부터 모여진 큰돈들로 늘 돈 많은 한 사람으로는 처음부터 돈 많던 사람들로부터 모아진 돈들도 정작 없어지도록 만든다. 한 곳으로 모여, 곧 드물게만 돈 많던 사람들로부터도 나중에는 많아진 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빼앗고는 나란하지만 다르게 나아가고 더욱 더 크고도 넓게 일어난다.
곧 일하는 길로는, 함께 일하거나, 그루를 따져보면서 깨우치거나, 무언가를 잘 다룰 수 있도록 하거나, 땅들로부터는 앞으로는 이롭게 잘 쓸 수 있도록 하거나, 만들어진 솜씨들로부터 짬들로 쓸 수 있는 꼴들로 주고받고는, 모든 만들어진 솜씨들도 모여 하나로 맺어진 모여진 일들로부터는 만들어진 솜씨들로 쓰여서 아낄 수도 있다. 여러 나라들에 나랏사람들로는 모든 나라들에 대한 사고파는 곳에 그물로 얽는다. 돈지랄 떠는 틀들로부터는 여러 나라들로부터 모여진 결들도 늘어남에 따라 더욱 더 넓고도 크게만 일어난다. 다르게 바뀌고자 하는 모든 보탬들도 가로채고는 혼자서만 모두 차지하는 크고 돈 많은 사람들도, 셈으로도, 끊임없이도 줄어들지만, 가난이나 억눌림, 매여짐, 썩어 잘못되고, 얼마나 비틀고 짜는지도 셈으로도 더욱 더 늘어만 간다.
그러나 같은 때 일하는 사람들도 세어보면 끊임없이도 늘어가고, 돈지랄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얼개나 바탕들로부터 익고, 하나로 모으고, 짜여 만들고는 나눠진 사람들에 대듦도 늘어난다. 큰돈들도 홀로만 모두 차지한다는 건, 홀로만 모두 차지해서는 더불어 홀로 차지한 밑에서부터 퍼진 만드는 솜씨들도 차꼬를 차, 몹시도 괴롭고 힘들다. 만드는 솜씨들도 모이고, 모인 일들도 마침내는 돈지랄들에 겉모습들로부터 군데군데 어울릴 수도 없도록 다다른다. 돈지랄들에 겉모습들도 깨지고, 갈라지다, 마침내 터져나온다. 돈지랄들에 따른 낱사람들만 가질 수 있던 끝에도 다다른다. 빼앗던 사람들마저 빼앗긴다. <돈>.
마르크스가 보이도록 나타난 또 한 가지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하도록 있게 한 두 번째 <돈> 에서는 보이도록 모임 모두에 자돈들에 다시 만들어지도록 나눠본다. 마르크스는 따로 그저 나타나도록 본다는 데만 그치는게 아니라 셈 많은 보여짐들로부터, 줄이도록 돈으로 끊어지게 하거나, 쪼개지도록 한 건 아니라 줄인 돈들 모두를 다룬다. 마르크스는 꼼꼼하게도 말한 바와 같고 오래된 돈에 대해 배우기만 한 사람들에 틀림들도 바라잡고는 또한, 모든 만드는 모임들로부터 두 가지 갈래들로, 곧 1). 만들어진 쓸모들에 대한 만듦 2). 쓸거리들로부터 만드는 걸 따로 나눠보고, 셈들로부터 자주 쓰이는 모든 모임들에 큰돈들도 흘러가는지도, 낱낱 아직까지도 크기들로는 쉽게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드는 때나, 더 크게 다시 만들고는 쌓는 때들도 모두 따져본다. 세 번째 <돈>에서는 견주어 보기에 고르게 남은 돈들도 어떻게 이루는지에 대한 물음들도 값어치들에 꼴들로부터 밑받침들로부터 얽힌 일들도 잘 치르고 마무리한다. 마르크스는 잘 따져보면서, 돈 밝히는 배운사람들에 대한 오늘날에는 테두리를 넘나들도록 배우도록 한 잦고, 스스로를 가둔 낱낱으로 일어난 일들이나 또는 이기려고 겨루는 겉모습들이나 겉보기들로부터만 나아가지는 않았고, 크고 많은 돈들로부터 보여지거나, 모든 돈들에 대한 흐름들로부터 나아간, 돈에 대해 배우기에도, 훌륭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마르크스는 먼저 남긴값들로부터 처음으로 생기던 걸 따져보고, 이어서 남긴값들에 대한 남은돈들, 치를 돈들, 땅돈들로부터 나누어 쪼개는 물음들도 깊게 생각한다. 남은돈들로부터 대대로 물려온 일들로부터 떨어진 큰돈들에 대한 모갯돈들에 남긴값들에 알맞게 견준다. 떼어낼 수는 없게 이루는 높게는 곧 바뀔 수 있는 큰돈들에 대한 바뀌지는 않는 큰돈들에 대한 남들보다 모임들로부터 고르게 높게 나타난 많은 큰돈들로부터는 고름들로는 낮은 남은 돈들에 대한 셈들도 가져온다. '떼어낼 수 없게 이루는게 낮게는 큰돈들로는 고르게는 높게 남은 돈들에 대한 셈들도 가져온다. 돈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이기거나, 앞서가려고 서로 견주는 한 만드는 낱낱들로부터 다른 만드는 낱낱들로부터도 큰돈들도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건 두 가지 모두에게 남은 돈들에 대한 셈들도 고르게 남은 돈들에 셈들로 맞추고는 낮춰놓는다. 주어진 모임들로부터는 모든 팔 수 있는 값어치들에 모갯돈들로는 팔값들에 대한 모갯돈들로부터 모두 같다. 그러나 낱낱에 대대로 물려온 일들 및 낱낱으로 만드는 쪽들로부터 잘 팔고자 이기거나, 앞서고자 서로 겨루도록 미치기 때문에, 값어치, 그대로 팔지는 않고, 쓸 돈들에 대한 큰돈+고른남은값들도 모아 똑같게 돈들에 대한 셈들로부터 값들로 치고 팔린다. 마르크스는 값어치들로부터 값들에 동떨어진 틈으로, 남은값들에도 고르게 할 수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하고자 값어치들에 꼴들로부터 처음부터 위로부터도 모자람 없이 잘 말했다. 모든 팔릴 수 있는 값어치들에 대한 모갯돈들도, 모아진 모든 값들에 대한 모음들로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에 무슨 모임인가에 대한 값어치들도 여러가지로도 많은 낱낱이라는 값들로만 나타나거나 쉽게는 가운데 없이 바로 가는 건 아닌지라 대단하게 얽혀있다. 오직 사고파는 곳에서만 서로 맺어지거나 흩어진 팔고자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모인 모임들로는 꼭 알맞도록, 어떤 때는 이 쪽으로, 또 어떤 때는 저 쪽으로도 낱낱에 벗어난 거리들로부터 서로 주고받아 미치고, 사라지도록, 고르고, 모이고, 큰 셈들로부터도 꼭 알맞도록만 나타나지는 않는 건 더 할 수 없이는 그러하다.
만들어진 일들로부터 나아진다는 건 바뀌지 않는 큰돈들에 견주어보자면 바뀌지는 않는 큰돈들에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걸 뜻한다. 남긴값들로는 바뀌는 큰돈들에 대한 노릇들이라고 할 때, 남은값들에 대한, 곧 남긴값들로부터 견주어 볼 때, 얼마나 남긴값들에 대한 그저 바꾼 큰돈들만에 견주어보는게 아니라 모든 큰돈들로부터 견주어본다. 분위기마저 낮아지거나, 띠는 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분위기들로부터, 몰래 감추어 숨기거나,
거스르는 움직임들로부터도 많은 까닭들도 꼼꼼하게 나눈다. 우리는 남은값들로 비싸게 받는 돈놀이들로부터 큰돈들로부터 팔고남은돈들이나 큰돈들로부터 내어진 세 번째 <돈>에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진 쪽들도 건너뛰어서, 매우 대단한 큰손들에 사고파는 땅들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땅들에 넓이에 따른 크기들도 넘지는 못하게 됐고, 돈지랄 떠는 나라들에서는 땅들도 모두 낱낱에 낱사람들로만 가질 수 있도록 차지됐으므로 밭에서 만들어 판 값들로는
가운데 높이를 지닌 땅에서나 만들어진 셈들로는 아니고 가장 낮은 땅들로부터 만들어진 셈들로부터굳어진다. 또한 만들어진 걸 사고파는 곳에다 주고 갖출 수 있는 가운데 높이나 갖출 수 있는거도 아닌 나쁘게 갖추는 아래서 밭에서 자라 판값들도 굳어지기 때문이다. 값이나 바탕들로 땅 또는 보다 낫게 가추고자 만드는 값들 사이에도 나머지 값이나 나머지 땅들도 생겨난다.
마르크스는 나머지 땅들도 꼼꼼하게 나눠보고, 어떻게 낱낱사람들에게 땅들에 대한 걸거나, 기름지는 다름로도, 또 땅들로부터 들어간 큰돈들에 대한 많음은 얼마나 다르고, 발생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나머지 땅들보다 바탕들에 땅들로부터도 잇따라 보다 낮은 땅들로 옮겨가는 때에만 생긴다고 본 리카도에 틀림들도 흠 없이 드러냈다. <남긴값, 자취들>도 보라. 로트베르투스에 대한 따짐들도 다르게 깊게 살펴볼 만하다. 돌아보면 거스름들도 있다. 곧 어떤 한 위아래로 본 땅들이나 다른 위아래들에 땅들로 바뀌는 논밭 기르는 재주들도 나아가거나, 사람 많은 곳에 자라남, 따위에 일들도 있을 수는 있다. 그리하여 저 나쁘게도 '하나만 거두어들이고 나머지는 조금씩 줄어들게 만드는 꼴'들로는 돈지랄들에 대한 흠 되거나, 둘레들이나 앞뒤 맞지 않고 저절로만 다른사람들에게만 넘겨짚거나, 넘겨씌워서, 밑바탕마저 틀림렸다는 걸 안으로도 안는다. 더 나아가서는, 솜씨일들 및 흔하게는 나라사람들에 아낀 돈들로부터 모든 갈래들에서도 남긴값들로 고르거나, 가지런하게 하고자 한다면 이기거나 앞서는 다툼들에서 모자람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고, 한 만들어지는 낱낱들로부터 다른 만들어지는 낱낱들로도, 큰돈들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하도록 먼저 내세운다. 그러나 땅들도 가진 낱사람들로는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건 가로막거나, 거치적거리는 혼자 모두 차지하도록만 낳는다. 혼자 모두 차지 한다는 맺는다는 건, 큰돈들로부터 떼어낼 수 있게하는 짜임들도 견주어보자면 낮고, 따라서 낱낱으로는 견주어보아 높은 남은값들로 부터 눈에 뜨인 논밭일들로부터 만들어진 건 남은값들에 모으거나, 고르게 하는 아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거나, 나중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땅 가진 사람들로는, 혼자 차지하는 사람들로는 값들도 고르게 많거나, 낫도록 얻고자한다. 따라서 혼자 차지한 값들로는 맞설 거 없는 땅들도 낳는다.
나머지 땅들로는 돈지랄 아래로는 없앨 수 없지만, 맞설 수 없는 땅들로는 이를테면 땅들에 대해 나라들로부터 가지도록해서, 곧 땅들도 나라로부터 가질 수 있게 함으로만 없앨 수 있다. 같은 토지를 나라로 뒤로 옮긴다는 건 낱사람들로부터 가지고, 혼자 모두 차지하는 걸 무너뜨릴 수 있고, 논밭일에서 앞다투어 마음대로 할 수 있게하는 한결같고, 오직 흠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꼴 뿐이다. 때문에 자취들 속에 다스리는 사람들 가운데 서두르는 쪽들에게 마르크스로부터 꼭 집은 바와 같이 땅들로부터 나라땅들로 하게 한다는 건 나아가서 다스리는 사람들로부터 달라고 해온 되풀이해서 내놓은거다. 그러나 땅들로부터 나라땅들로 한다는 건 오늘날에도 다르게도 대단하고, 날카롭게 보이는 혼자 모두 차지한다는, 곧 만드는 솜씨들에 흔하게는 혼자 모두 차지함으로 주고받거나 미치는 데 너무나 가까워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겁먹게 하고는 달라고 해서 얻는다. 마르크스는 큰돈들 대한 고르게 남은값 및 맞설 수 없는 땅들에 대한 스스로에 옳거나 그름들에 대한 더할 수 없이 까다롭지도 않고, 깔끔하고, 막힘 없이 쉽게 풀어서 쓴 속내들도 1862해 8달 2날로 된 엥겔스에게 보낸 글들도 있다. <갔다 돌아온 글집> 3번째, 77-78쪽도 보라. 또 1862해 8달 9날로 된 보낸 글, 같은 글로는 86-87쪽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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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의 지대 변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분석을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분석은 노동지대 농민이 영주의 토지에서 노동해서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경우
가 어떻게 생산물지대 또는 현물지대라는 농민이 자신의 토지에서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경제 외적 강제' 때문에 지주에게 넘겨주는 경우로 전화되고, 그 다음에는 화폐지대 앞 선 현물지대가 상품생산의 발전의 결과로 화폐 납부로 전환된 것. 구 러시아의 '면역지대'로, 그리고 끝으로는 자본주의적 지대 농민 대신에 농업 기업가가 나타나 임노동을 사용하여 토지 경작을 하는 경우로 전화되는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농업에서 자본주의의 진화에 관해 마르크스가 표현한 일련의 시오한 러시아와 같은 후진국에 특히 중요한 사상이다. 현물지대의 화폐지대로의 전화는 나아가, 화폐를 받고 고용되는 무산 일용노동자 계급의 형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계급의 형성이 화폐지대로의 전화에 선행하기까지 한다. 이 새로운 계급이 아직은 산발적으로밖에 등장하지는 않는 그 발생기의 경우, 지대 지불 의무를 지는 농민 내에서도 비교적 번영하는 층들 사이에서는 자기 자신들의 농사를 위해 농업 임노동자를 착취하는 관습이 필연적으로 발전한다. 이는 봉건시대에도 비교적 부유한 예농이 그들 자신에 더해서 다시 예농을 고용하고 있던 것과 똑같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일정 정도의 부를 축적해서 스스로 미래의 자본가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점차 얻게 된다. 구래의, 자기 노동에 기초한 토지 소유자 자신들이 바로 자본주의적 차지농의 양성소를 탄생시키는 주역인데, 이러한 차지농의 발전들은 농촌 밖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들의 일반적 발전들에 의해서 제약된다. 자본 3권.
"농촌에 인구 일부의 수탈과 추방들은 산업자본들을 위해서 노동자들과 그들의 생활수단 및 노동재료들을 분리시켜놓았을 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들을 창조한다." 자본 1권. 한편 농촌 인구들의 빈곤화와 파산은 자본들을 위한 노동예비군 창출에도 일익을 담당한다. 다라서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농촌인구의 일부는 도시 무산게급들 또는 매뉴팩처 곧 비농업 무산계급들로 끊임없이 이행하는 중에 있다. 그리해서 상대적 과잉인구들의 이 원천들은 끊임없이 유출되고 있다. 따라서 농업노동자는 임금이 최저한까지 억눌리며, 항상 한 발은 이미 궁민 상태의 늪에 담그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 1권. 농민의 자기 경작지에 대한 사적소유는 소생산의 기초이며, 소생산의 번영, 소생산의 고전적 형태로의 발전들을 위한 조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생산들은 생산 및 사회의 협소하고 원시적인 틀 안에서만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농민들의 착취로는
공업 무산계급들에 대한 착취와 단지 형태에서만 구분될 뿐이다. 그러나 착취자는 같다. 곧 자본이다. 개개의 자본가는 저당과 고리대로부터 개개의 농민들을 착취한다. 자본가계급들은 국가조세로부터 농민계급들을 착취한다. 프랑스에 계급투쟁.
"이재 농민들의 분할지는, 자본가가 경지에서 이윤과 이자와 지대를 끌어내면서, 토지 경작자의 임금을 어떻게 염출해낼 것인가 궁리해야 하는 일들을 경작자 자신에게 떠넘겨버릴 수 있게 해주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브뤼메르 18일>. 대개 농민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곧 자본가계급들에게 임금의 일부분들까지도 내다 바치고, "아일랜드 소작인들에 수준"으로 영락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적소유자라는 구실 아래로 일어난다. <프랑스에 계급투쟁>. 그렇다면 "소농 분할지 소유가 지배적인 나라들에서는 곡물가격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나라들에서보다 더 낮은 원인들 중 하나"는 무엇인가. <자본> 3권. 이건 농민들이 사회에 곧 자본가계급들에게 자신의 잉여생산물들에 일부분들을 무상으로 넘겨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곡물 및 기타 농업 생산물들에 낮은 가격들은 생산자들의 빈궁의 결과이지, 결코 그들에 노동생산성에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3권. 소생산이라는 정상적 형태인 소토지 보유는 자본주의 하에서 퇴하하고 파산하며 멸망한다.
분할지 소유는 그 본성상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이나 노동의 사회적 형태들과 자본의 사회적 집적과 대규모의 목축과 과학의 누진적 응용들을 배제한다. 고리대와 조세제도는 어디서나 분할지 소유를 빈곤화하게 마련이다. 토지 구입들에 들어간 자본 지출들은 그만큼 자본들을 경작으로부터 회수한다. 생산수단의 끝없는 파편화와 생산자 자신의 고립화로.
협동조합, 곧 소농민의 연합은 극히 진보적인 지배계급적 역할을 하면서도, 이러한 경향들을 약화할 뿐, 없애지는 못한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건 이러한 협동조합들은 부농에게는 커다락 이익들을 주지만 빈농대중들에게느 매우 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이익밖에는 주지 않는다. 결국 협동조합 자신들에게 임노동에 대한 착취자가 된다.
"인간 에너지의 막대한 낭비, 생산조건의 누진적인 악화, 그리고 생산수단의 가격등귀는 분할지 소유라는 필연적 법칙이다. <자본> 3권. 공업에서처럼 농업에서도 자본주의가 생산과정을 개조하는 것은 오직 "생산자의 순교"라는 대가를 치른 다음이다.
집적으로 인해 저항력이 커지는 도시노동자와는 달리, 농업노동자는 비교적 광범위한 지역들에 퍼져 있어서 그들의 저항력은 약화된다. 도시 공업에서와 마찬가지로 근대 농업에서는 노동의 생산성의 증대와 그 유동화의 증진들이 노동력 자체가 황폐해지고 쇠약해지는 대가로 얻어진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농업에서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 약탈 기술만이 아니라, 토지 약탈 기술에서의 진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파멸하게하고 비로소 기술을 발전하고, 다양한 생산과정들을 하나의 사회적 생산과정으로까지도 결합한다. <자본> 3권.
<포어베르츠>와 빈에 <노동자신문>으로 보내는 편지.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며칠 전에 <포에베르츠>는 전쟁과 사회주의라는 주제에 대해서 짧은 기사를 한 편 게재했습니다. 기사에서 나는 취리히에서 읽었던 신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는데, 신문에 대한 전적으로 그릇된 인상들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차르주의에 반대하는 논쟁으로만 분명 글들을 제한하고 있다는 인상들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국만이 아니라 자국에 배외주의나 애국주의에도 반대해서 가차 없는 투쟁들을 수행한다는 건 모든 나라에서도 사회주의자들에 의무임을 확신하는 사람으로서도 나는 차르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해왔고, 맥락으로부터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유에 대해서도 발언합니다. 그러나 나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취한 입장에는 반대해서 기회주의와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붕괴를 말한 건 아무런 언급마저 하지도 않는다면, 내 논지에 의미는 완전하게 왜곡될 소지도 분명하게 있습니다. 두 시간에 걸친 내 보고에서 10분에 9만으로 비판으로 다룹니다. 내게 밝힌 누락 부분들로부터 <포어베르츠>에 또는 게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민주주의적 인사를 보내며.
여기서 말하는 레닌에 대한 보고에 기사로는 1914년 11월 10일자로 <포어베르츠>라는 <전진> 308호와 11월 7일자로 된 빈에 <노동자신문> 309호에도 게재됐었다. 1914년 11월 22일, <포어베르츠> 편집국에서는 레닌에 대한 편지에 답하는 짧은 글들을 게재해서, 레닌에 보고들로부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취한 입장들을 비판했고, 제2인터내셔널로부터 된 일련에 붕괴들에 대한 평가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 원서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