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지 않은 히어로와 약하지 않은 빌런"
<헨치>라는 소설을 집어든 순간, 시선을 사로 잡았던 문구이다. 우리는 여태까지 살면서 히어로는 항상 선하고 강하며 빌런은 히어로보다 약하면서도 히어로와 시민들을 괴롭히는 쓰레기같은 존재 정도로 여겨왔다. 꼭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말이다. 영화 속 히어로는 잠시 난관에 봉착해도 끝끝내 빌런과 싸워 이겨냈고, 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세상에 베풀었다. 빌런은 그 반대였고.
그런데 이 책은 흔히 가지고 있는 클리셰를 비틀며 생각의 전환으로 창작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이고 분노를 이기지못하고,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히어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의 답변은 "아니다" 이다. 그렇기에 책 표지부터, 판타지 소설 <헨치>는 나의 기대감을 잔뜩 높여주었다.
소설에서의 직업군은 크게 몇가지로 나뉜다.
히어로, 빌런, 헨치, 미트 정도인데, 히어로와 빌런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기에 생략하기로 하겠다. 미트는 빌런 밑에서 일하는 부하, 헨치는 빌런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무직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트가 히어로와 싸우는 것을 보면 뛰어난 무기라던가 능력은 조금이나마 갖추고 있는 듯한데, 헨치는 대개는 히어로나 빌런 같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으로, 회사에 출근하는데 그 회사가 빌런과 관련된 것이다. 직업일뿐이니 히어로를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는 일은 없는 것 같으나... 히어로에게 피해를 입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설의 주인공 헨치 "애나 트로메드롭"이 히어로 "슈퍼콜라이더"에게 치료일수 6개월에 달하는 복합골절을 입은 후 본격적인 "음모론자"의 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애나는 이 부상으로 인해 기존에 일하던 직장에서도 해고 당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간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발견한 [자연재해의 직접적인 영향에 관한 DALY식 측정법]으로 슈퍼히어로를 인간으로 취급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연재해와 동급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절친한 친구 준의 눈에 '완전히' 미쳐 보일정도로 히어로가 입힌 피해와 사라지게 만든 인간의 수명에 집착하던 애나는 결국 이를 통해 히어로의 본모습을 까발릴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그리고 사고치기 직전인 히어로 "글래스블로워"를 타겟하기 시작하는데...
여기까지의 줄거리는 1권의 절반정도인 이야기이다. 어떤가.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
여태까지 스릴러나 범죄와 관련된 소설들만 읽어와서 판타지소설을 접해보지 못했었는데 (또 그만큼 재밌다고 느낀 판타지 소설도 없었다.) 소설 <헨치>를 읽고 판타지 소설의 이미지가 무척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현실을 뛰어넘는 세계관이라던가, 미쳐날뛰는 슈퍼히어로의 모습은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다음장을 궁금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