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 사는 듯 살고 싶은 판사의 법정 이야기
정재민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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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판사로 재직하다가 2017년경 그만둔 글쓴이가

재판(특히 형사재판)을 했을 당시를 회고하며 쓴 이야기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실제 사건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시선이 따뜻하다. 왠지 좋은 판사였을 것 같다.

 

반면 재판을 할수록 점점 확신이 드는 것은, 너무나 뻔한 소리지만, 인간은 모순이 한 몸에 공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선과 악이, 위대함과 초라함이, 평안과 불안이, 생명과 죽음이, 용기와 두려움이, 집단성과 개인성이 양립할 수 있다. 여러 모순된 측면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복잡한 존재이므로 한 측면이 있다고 해서 반대의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무엇보다도 내가 판사로서 하는 일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오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런 지옥으로 몰아넣었을까. 그 불편하고 두려운 감정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사건 이후 재판을 대하는 자세와 관점이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마치 운전하다 가족을 잃어본 사람이 다시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법복 안쪽 가슴에는 보이지 않는 세줄의 표어가 새겨졌다.
˝음식 장사는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되고,
의사는 병으로 장난치면 안 되며,
법조인은 정의로 장난치면 안 된다.˝

나는 판사가 위법과 적법을 판단하는 사람이지 도덕성을 판단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 도덕적 판단은 각자의 마음속 판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도 작은 법정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대개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내 삶을 두고 악이라고 몰아세우는 검사와 선이라고 변호하는 변호사가 격론을 벌인다. 내 마음속 판사는 날마다 내게 묻는다. ˝공소사실을 인정합니까˝ 라고. 그때마다 나는 피고인석에 앉아서 대답을 찾느라 힘겨워한다. 법정의 햄릿이 된다. ˝자백이냐 부인이나, 그것이 문제로다˝라면서. 몸과 정신이 연약하고 늘 변한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도덕적 일관성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인 것 아닌가 투덜거리면서,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피고인석을 걷어차고 마음속 법정에서 판사의 자리를 꿰차는 날을 꿈꾼다. 나 스스로 나의 모든 행위의 준칙을 자신 있게 설정하고, 나 스스로 나의 행위의 가치와 당부를 판단하는 마음속의 판사가 되기를 꿈꾼다. 아니, 법정이라는 판단의 공간 자체를 걷어치우고 궁극의 자유로움을 얻기를 꿈꾼다.

국민 눈에는 재판이란 좋은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결과 채무다. 의사가 아무리 친절하고, 인품이 좋고, 설명도 잘해주고, 성실하게 치료해도 오진을 내린다면 누가 좋은 의사라 하겠는가. 그저 돌팔이일 뿐이다. 차라리 불친절하고 성의 없어 보여도 정확히 진단해서 확실히 치료해준 의사가 진짜 의사다. 아무리 인품이 좋고, 친절하고, 연륜이 높아도 판결이 엉터리라면, 인품이 나쁘고, 불친절해도 정확한 판결을 하는 판사보다 못하다. 아니, 훨씬 나쁘다.
많은 사람들이 판사의 인품이 훌륭하지 않은지, 자신과 소통을 기피하려 하는지가 아니라 사실과 다른 판결, 억울한 판결을 받을까봐 불안해한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형량이 약해지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인간의 고결함과 위대함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그렇게 고결하다거나 선하다거나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간혹 그런 인간이 출현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여건이 맞아서 그런 업적이 성취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은 그저 그렇다. 나쁘다기보다는 유약하다.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젊음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다. 몸도 정신도 약하다. 그래서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지면 악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불행한 일이 닥칠 수 있다. 병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선의로 한 일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을 때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이 사건과 같이 누군가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의도치 않게 저지른 잘못이 너무나 큰 피해를 낳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에 누가 누구를 얼마나 원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서로의 가슴이 가장 적게 아플 수 있을까.

사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비판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자기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문제의 대안을 제시해서 해결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을 참아주고 용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보니 그 쉬운 일을,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직업으로 매일 하게 되었다. 매일 이 일을 할 때마다 ‘그러면 너는 제대로 살아왔느냐, 너는 네가 말하는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느냐‘는 양심의 질문이 쿡, 쿡, 쿡 아프게 나를 찔러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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