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 - 일상처럼 생생하고, 소설처럼 흥미로운 500일 세계체류기!
정태현 지음, 양은혜 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소설 같은 500일 간의 세계여행!

 

 

신선한 여행기, 인스턴트 용기를 낸 세계 방랑기라는 책을 만났다. 여행기면 다 비슷한 거지. 뭐가 다르다는 걸까. 여행기란 자고로, 여행을 하면서 먹고 보고 잔 것을 주재료로 여정 한 스푼을 풀어 넣은 된장국 같은 것 아닌가. 어느 집에나 있는 음식처럼. 사진과 지도 몇 개가 화려하게 눈을 즐겁게 하고 작가의 글맛이 좋으면, 아! 나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뭐 그런 감탄사가 여러 번 나오게 하는 게 여행기 아닌가. 뭐가 새롭고 신선하다는 걸까.

저자는 유명한 금융회사의 직함을 내려놓고 자전거로 여행을 떠났다. 거창하게 말하면 생의 의미를 찾아서, 소박하게 말하면 재미있는 이야기, 괜찮은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자전거로 내달리게 된다. 도중에 만난 사이클러들은 서울에서 부산가지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은퇴자가 대부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다친 동료를 내버려두고 목표를 향해 달리다니! 책으로 접하는 나에게도 상당히 충격이다. 은퇴자들에게 남은 목표는 뭐였을까. 생존을 위해 직장에서 경쟁 하던 모습이 은퇴 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니! 왜 느긋한 걸음, 여유로운 웃음이 되지 못하는 걸까.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조급한 은퇴세대의 모습이 나의 자화상은 아니길 빌 뿐이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이젠 너무 늙었어. 더 이상 올라가는 건 무리야. 방금 짐꾼과 이만 내려가기로 결정했네.(20쪽)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며 살지 말게. 그 인생이 가장 위험한 인생이 되어버린다네. (22쪽)

 

얼마 전에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읽은 터라 히말라야에서 만난 할아버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30년 전부터 안나푸르나에 오고 싶었다는 할아버지는 몹시 슬픈 표정이다. 오래되고 약한 다리로는 등반이 무리임을 알고 하산 결심을 했다는데……. 평생의 소원인 안나푸르나를 눈앞에 두고 포기할 때의 심정이 어떠할까. 따뜻하고 편안한 휴양지를 좋아하는 아내에 맞추느라, 자식의 행복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이 소원하던 일은 챙길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일생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의 안나푸르나는 포기한 적은 없는지, 미루고 살지는 않는지…….

 

직장을 나와 집과 짐들을 정리하고 배낭만 챙겨 툴툴 털고 떠나는 부부의 용기는 분명 부러움이다. 버릴 수 있는 자의 당당함, 떠날 수 있는 자의 용기,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호기심은 나의 로망이기도 하니까.

처음 저자가 아내의 고향인 캐나다 입국 심사에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받던 일이 안타깝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하고 여전히 불공평한 대우가 존재함을 느꼈던 대목이다. 언제쯤 이런 차별이 지구에서 사라질까. 차별과 무시는 이제 지구를 떠났으면 좋겠어. 오로라를 보러 나섰다가 북극곰 위험지역에 들어 간 일도 흥미롭다. 그런 경험은 극지방에 가까운 캐나다이기에 가능한일 일 것이다.

 

미국을 거쳐, 쿠바에 도착한 여행자들.

쿠바의 하바나는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곳이지만 게으른 곳이라는데……. 쿠바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기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다. 쿠바에는 미국과의 좋지 않은 관계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경찰이 되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씁쓸하다. 배우지 않아도 먹고 사는 것이 지장이 없기에 학교에 가는 것보다 바다에서 멱을 감는 것을 즐긴다는 아이들, 어떻게 봐야 할까. 쿠바는 열정적으로 살려는 사람, 무언가를 배우려는 사람이 살기가 힘든 곳이라는 경찰관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오랜 공산국가의 잔재가 국민들의 의욕상실, 나태로 나타난 듯해서 말이다.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나라일까.

 

콜롬비아를 거쳐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를 지나 유럽으로 날아오고, 다시 아시아로 날아오는 500일의 여행기에 사진 한 점 없다. 그 대신 예쁘고 멋진 그림들이 지역 풍경을 담아 마음대로 상상하라고 한다. 늘 보던 사진보다, 톡톡 튀는 그림이 외려 신선하고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본다.

자전거에 거대한 벌룬을 달고 달리는 모습, 벌룬에서 튕겨져 나오는 시계, 거대한 나무, 컴퓨터, 노트, 책, 커피, 넥타이, 운동화...... 도시탈출, 일상탈출을 느끼게 된다.

버린 만큼 채워지는 여행, 간만큼 얻게 되는 여행, 본 만큼 느끼게 되는 여행 이야기가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 500일 간의 세계여행…….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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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그컴퍼니 2014-06-1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북로그컴퍼니 출판사입니다.
다음주 토욜일인 6월 28일 오후 5시에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의 정태현 작가의 강연회가 있습니다. 무료 강연회이고 선착순 입장이니 관심 있으시면 덧글 남겨주세요. 자리 맡아 드릴게요. ^^

봄덕 2014-06-18 18:3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만, 지방이고 일을 하고 있답니다. 강연회에 가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