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런어웨이]일상에서의 탈출, 행복을 확인하는 순간이 된다.

 

2013년 노벨상을 탄 작가인 앨리스 먼로는 우리나라의 고 박완서 같은 느낌을 준다. 봄날의 따뜻한 미풍처럼, 비 온 뒤의 청량감을 주는 바람처럼 화사하고 시원한 미소도 닮았지만 백전노장의 필력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10대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83세의 현역 작가로 살고 있다. 1968년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13년엔 단편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소설은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단편소설을 가장 완벽한 예술의 형태로 갈고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는 모두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 중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런어웨이>다.

 

클라크와 칼라는 승마 트레킹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금은 단골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신 돌봐주는 말 세 마리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부다.

계속되는 비로 폭풍에 휩쓸려간 지붕 수리도 밀려 있고 그들에게 말을 맡긴 조이 터커마저 비가 새는 곳에 말을 맡길 수 없다면서 신경질이다.

게다가 애완동물처럼, 반려동물처럼 키우던 염소인 플로러마저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칼라는 마을에 있는 제이미슨 실비아 집에 청소 일을 돕게 된다. 시인인 제이미슨은 간병인을 둔 환자이며 그의 부인인 실비아는 대학에서 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돈이 필요한 칼라는 제이미슨이 성추행을 했다며 클라크에게 거짓말을 해버린다. 클라크는 화를 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뜯을 것인가를 궁리하게 된다.

돈이 필요해서 장난처럼 해버린 거짓말이 서서히 진실로 둔갑해버리다니!

하지만 일은 엉뚱하게 흘러간다. 세상사가 원래 그런 것처럼 말이다.

 

실비아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칼라를 영리하지만 영악하지 않고 천성적으로 착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본 많은 여학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특히 남편이 죽은 이후로 실비아는 칼라에게 더 의지하게 된다. 칼라가 지닌 젊은 여성만이 지닌 활달함, 생기가 좋았다고 할까.

 

어느 날, 청소를 하던 칼라는 남편에게서 떠나고 싶다고 한다. 늘 화를 내는 남편 때문에 미칠 것 같다면서 말이다. 너무도 갑작스럽지만 실비아는 칼라의 행복을 빌며 경비를 마련해 주고, 토론토에 있는 친구 집에 가라며 도움을 준다.

 

칼라는 주변 사람들과 폭언과 싸움을 일삼는 클라크와의 삶에는 자신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 안에 자신의 삶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일상에서 탈출하려고 버스에 올라 탄 건데.

어쩌면 탈출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서였을까. 그녀 존재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

버스가 세 번째 마을에 정차했을 때 그녀는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가을이 되어 비가 오지 않는 황금빛 나날이 시작되면서 칼라는 내면 깊숙이 박혀 있는 날 선 생각을 차츰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책에서)

칼라의 진실은 그냥 푸념이었던 것이다. 한차례 수다로 해결될 수 있는 불만이었던 것이다.

탈출을 도운 공범이 된 실비아는 드디어 깨닫게 된다. 칼라의 행복이 클라크와 함께 있을 때 존재하는 것임을 말이다. 칼라의 런어웨이가 젊었을 때 일어나는 한때의 사랑싸움 같은 것임을 말이다.

결국 탈출은 하나의 해프닝이 되고, 한차례의 백일몽이 된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클라크와 칼라는 서로를 더 신뢰하게 되고 이들이 꾸리는 여름 캠프도 활기를 띄어 간다.

 

일상에서의 탈출은 자유롭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자신을 되찾고 싶은 반항 같은 것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일탈을 꿈꾸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잔잔하게,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삶이 농축된 일상들은 그저 우리의 이웃의 모습 같아서 편안하게 읽힌다.

 70여 년의 작가의 필력, 그저 대단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