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순간들 - 불멸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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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존재의 순간들]목마와 숙녀의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 에세이, 섬세하고 예리해~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나왔던 이름, 그래서 선명히 기억되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이 책은 불멸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 에세이다.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언니인 바네사 벨의 권유로 쓴 회고록 형식인데, 자신의 유년 시절 회상, 과거의 스케치, 회고록 클럽 원고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록, 작가로 성공한 이후의 느낌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고 잔잔히 흐르는 물결처럼 과거의 내면세계를 훑어내고 있다.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다운 예리한 통찰력으로 말이다.

한 장의 사진이 그녀의 생김새를 알려주는 최고의 증거물이며, 이 경우에 사진 속의 얼굴은 성격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두 눈에선 부드럽고 꿈꾸듯 하고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이 읽힌다.(책에서)

 

2차 대전이라는 시대적 암울함 때문일까, 아니면 집안 자체에 우울한 기운이 있는 걸까. 자신의 언니 사진에서 우울한 표정을 읽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도 몽상적이거나 우울하다.

 

버지니아의 아버지는 영국의 알려진 작가이자 비평가이자 등반가였다. 어머니는 미모의 자선활동가였다. 그리고 부모님은 둘 다 재혼이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평생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버지니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도 역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13세에 맞은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의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 된다. 이후 그녀는 신경쇠약 증세로 시달리기도 한다. 가족 모두에게 중심적인 축의 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죽음은 오랫동안 모든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열다섯 살이든 아니든, 예민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인해 뭔가를 예리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나의 어머니의 죽음은 잠복된 슬픔이었다. (책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감정이 미처 처리되지도 못한 채 2년 뒤 언니 스텔라의 죽음은 불안하고 보호받지 못한 소녀의 감수성에 더욱 충격적이었으리라. 앞의 강한 바람에 채 단련이 되기도 전에 연이어 불어 닥친 광풍 같은 시련처럼.

 

아직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흐린 상태에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이제 막 깨고 나온 자신의 껍질 옆에 앉아 파리하기 떨고 있는 나를 한 번 더 죽음이 강하게 내리쳤다.(책에서)

 

그녀에게 있어서 찬란하고 행복한 생의 순간은 유년의 시절, 그것도 어머니의 죽음 이전 이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후로 생의 위대함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는 버지니아 울프,

 

나에게 있어서 위대함은 언제나 긍정적 자질이었고, 울림이었고, 괴벽스럽기도 했으며, 나의 부모에 의해 의무적으로 이끌린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육체적 실재이며 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책에서)

 

이후 언니, 아버지와 형제들, 조카들의 죽음을 보며 그녀의 신경쇠약 증세는 반복되기도 해서 자살기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조카들을 먼저 보내면서 느꼈던 인생무상과 허무가 작가의 내면을 뒤덮고 있었을까.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존재의 순간은 충격이나 깨달음, 계시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으로, 개인의 실체를 온전히 느끼는 순간을 말한다. (중략) 버지니아에게는 뭔가 깊은 깨달음이 수반되는 것이 존재의 순간으로 여겨진 것 같다.(옮긴이의 글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독특한 글쓰기는 버지니아 울프를 20세기의 대표적 모더니스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글에서도 그녀만의 독특하고 모호한 형식이 빛을 발한다. 개인적인 체험 속에서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그녀만의 예리한 통찰력과 관찰력은 솔직해지기 위한 자기성찰일 것이다. 그녀의 의식을 따라가는 성찰은 섬세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렵기까지 하다.

섬세하고 예민한 그녀에게 인간관계, 일상, 자연관찰에서 문득 깨치는 강렬한 깨달음의 순간, 즉 존재의 순간들은 거의 매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감정들이 신경쇠약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을 텐데.

 

힘겹게 자신의 고통과 마주하는 시간,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내면과 오롯이 함께하는 순간들에 대한 솔직한 묘사들이 어렵지만 그녀만의 매력을 알게 한다.

그녀의 회고록을 보면 산다는 건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생존욕구, 그 너머의 의미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성적인 언어 이전의 의식을 흐름을 따라가며 삶의 깊은 내면을 보는 그녀의 의식 세계는 보통의 무딘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가족 간의 교감, 친구 간의 소통, 자연과의 교감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통찰이 자신의 존재를 실감나게 할 것이다. 오늘 하루, 그렇게 존재의 순간들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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