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승아 씨는 그제야 아저씨의 행동이 단지 자신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키호테』 번역은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돈키호테』 이거 일이 년 해서 될 게 아닙니다. 평생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내가 영어 강사로 탑이긴 했지만 번역은 다른 문제더군요. 나는 번역보다 중요한 돈키호테의 꿈을 배웠어요. 이제이 책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려고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곤 빙긋 웃어 보였다. 


"아빠한테 반항하느라 그렇게 된 건 아니고?"
"뭐, 그런 것도 있겠지. 이후로도 아빤 계속 가난해서 나한테 제대로 뭐 한번 사준 적도 없으니까. 지금도 그렇고."
녀석이 혼자 잔을 비웠다.
"한빈아. 아빠가 너 방학마다 돈키호테 비디오에 데려와 같이 지내서 우리 라만차 클럽도 만난 거 아냐? 그리고 얼마 전에 내가 서랍에서 아저씨가 쓰던 가계부 발견했거든. 거기 네 양육비 꼬박꼬박 보낸거 적혀 있던데, 그 정도면 아빠 수준에서 해줄 수 있는건 다 해준거 같은데?"
"시끄러!"
•시끄러? 얘가 발동 거네. 그래, 따져보자. 

‘부자 되세요‘ 인사들해서 우리나라 사람 다 부자 됐니? 
돈이 최고라는 시대가 지금인데 그래서 사람들 행복하니? 

돈만 앞세우는 게 왜 문제냐 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우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어이구, 돈키호테 따라다니더니 돈키호테처럼 군다. 괜히 하소연하다 뺨 맞는 꼴이야 됐으니까 그만해라 쫌."
한빈이 또 혼자 잔을 비웠다. 더 취하면 안 될 것 같아 자리를 정리하려고 일어서는데, 녀석이 내 팔을 잡고 매달리다시피 했다.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은 그가 레판토 해전과 포로 생활이란 고초를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전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그는 상이군인이었고 전쟁포로였으며 한물 간 소설가였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부 요인으로 신대륙에 가일하고 싶었으나 고작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 징수원으로 고용됐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며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횡령죄를 선고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꿈꿨다. 신대륙에 가는 바람을 이루기는커녕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는, 장애인에다 전과자에 불과한 늙은이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꿈꿨다. 바로 이곳에서.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크게 허리를 숙여 
그의 동상에 인사한 뒤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감옥에서도 꿈을 꾼 자의 영혼을 위해 건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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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성하여서는 병도 많았네.
중년에는 어쩌다가 학문을 즐겨 했고 만년에는 어찌 벼슬을 받았던고,
학문은 구할수록 아득하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몸에 얽히네(중략)근심 속에 즐거움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서도 근심은 있었네.
천명으로 살다가 돌아가니 이 세상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퇴계 이황이 쓴 「자찬 묘지명」 중에서

억울함을 벗은 김정호와<대동여지도> 목판왜곡된 역사의 희생자

학생 시절 받게 되는 기초교육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어른이 되어도 기본적인 사고와 가치관의 대부분은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초중등학교 어느 무렵인가,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해 배우면서 그 슬픈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세상에 뛰어난 지도 제작자가 있었지만 조선의 권력자들은 그 재주를 알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가두었으며 목판을 불태웠다는 이야기. 놀랍게도 이러한 이야기가 백년 가까이 진실이라고 전해져 왔는데, 어떤 근거로이런 이야기가 생겼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감정

學校朝鮮語讀本호의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는데, 최초의 글은 바로일제가 제작한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 수록되어 있었다.(도판 57) 

이책에서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그리하여, 다시 십여 년의 세월
 「조선어독본 표지.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하여 일제강점기 때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을 걸려서, 이것도 완성하였으므로, 비로소 인쇄하여, 몇 벌은친한 친구에게 나누어 주고, 한 벌은 자기가 간수하여 두었었다.
(중략)그러나, 대원군은 다 아는 바와 같이, 배외심이 강한 어른이시라. 이것을 보시고 크게 노하사 "함부로 이런 것을 만들어서,
나라의 비밀이 다른 나라에 누설되면 큰일이 아니냐." 하시고, 그 지도판을 압수하시는 동시에, 곧 정호浩 부녀를 잡아 옥에가두셨더니, 부녀는 그 후 얼마 아니 가서, 옥중의 고생을 견디지 못하였는지, 통탄을 품은 채, 전후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아아, 비통한지고, 때를 만나지 못한 정호...... 그 신고苦와 공로功勞의 큼에 반하여, 생전의 보수가 그같이 참혹할 것인가.
-조선총독부 편찬, 「조선어독본」(1934) 중에서

평생을 걸쳐 만들어 낸 <대동여지도>(도관 58과 50)의 가치를 몰라주는 조선 조정과 대원군, 그리고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모함을 받은 채 원통하게 죽어 간 위대한 지식인의 모습. 참으로 드라마틱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영화를 보는 듯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1990년대까지도 어떤 비판적 분석 없이 이 이야키가 학생들의 교과서에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도 중장년층에게 김정호는 조선 정부의 무지에 의해 희생된 인물로 기억되는경우가 많다. 옥사 설이 부정되었고 관련 자료가 나오고 있으나,
새로운 연구 성과가 어린 시절 학습된 기억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인것이다. 그러던 차에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대동여지도>의 목판이 발견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남겨진 11장의 목판이 말하는 진실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지도를 조사하던 학자들은1995년 수장고에서 11장의 목판을 확인했다. (도판 59의 아래) 목판에는책을 찍기 위해 글자가 빼곡히 채워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나무판에는 지도로 추정되는 기호와 지명, 산줄기가 그려져 있었다.
목판 가운데 한 면에는 큰 글씨로 ‘대동여지도‘라는 제목이새겨져 있었는데, 그 자료를 보면서도 최초 발견자들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모두들 <대동여지도>의 목판이 불태워졌다고 어릴 적부터

학습받아 왔기에, 실물이 눈앞에 있어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 목판이 후대에 복제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주장은 점차 힘을 잃어 갔다. 이목판이 원본이라는 증거가 계속해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대

동여지도>를 만들 당시의 목판 일부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김정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점들이 있었다. 일단목판의 두께가 너무도 얇았다. 일반적으로 목관은 오랜 세월 찍어 내기 위해 두꺼운 판목을 사용하지만, 김정호는 얇은 피나무 판을 사용하여 앞뒤로 빼곡히 지도를 새겼다. 그리고 남은 여백에는 또 다른 지역을 새겨서 이중 삼중으로 판을 이용했는데, 이러한 점을 통해 김정호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면적을 담은 목판을 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이전 버전과는 달리 수정된 지명 등이 발견되었는데, 만일 이목판이 후대 사람의 복제본이라면 이런 부분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 이전까지 숭실대에 한 장의 목판이 남아 있었으나 이렇게 대량으로 <대동여지도>의 목판이 나오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고민해야 했다. 과연 우리가 믿고 있던 사실은 어디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였단 말인가? 그리고 일제는 왜 의도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날조했던 것일까? 여러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남겨진 사람들의 몫김정호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료가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무슨 생각을 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남겨 놓은 지도와

지리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위대한 지도학자에 대해 추측해 볼뿐이다.
<대동여지도> 목판이 발견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김정호가 백두산을 여러 차례 올랐다는 것도, 목판이 불태워지고 감옥에서죽었다는 것도 거짓이라는 것이 차츰 상식으로 자리 잡고,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일제의 부당한 왜곡을 딛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그에 대한 자료가 너무 없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그가 그린 지도 한 장, 목판에 새겨진 칼자국 하나가 그에 대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의 서문에 해당하는 「지도유의 말미에는 <대동여지도>에 대한 김정호의 바람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사람과 우리 땅을 진심으로 사랑한 인문학자의 고귀한글귀에서 학문의 진정한 목적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자문하게 된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 지도를 이용해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악한 무리를 없애도록 할 것이며, 평화로운 시절에는 이 지도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을 보살피는 데에 보탬이 되도록 하라.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지도유설」 중에서

부록-우리 고지도에 관한 저자의 추천 정보추천하는 책한영우·안휘준. 배우성 지음.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효형출판, 1999.
미술사와 고지도 연구자들이 함께 쓴 책이다. 우리나라 옛 지도에 대한 예술적 아름다움과 지도학적인 중요성에 대해 다루었다.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는 책으로, 곳곳의 문장에서 고지도에 대한 저자들의 애정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오상학 지음, 한국 전통 지리학사 (한국의 과학과 문명 002), 들녘, 2015.
고지도 연구자인 제주대학교 오상학 교수가 한국의 전통 지리학을 망라하여 정리한개론서이다. 일반인이 읽기에는 분량이 두껍고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한국의 지리지와 고지도의 역사에 대해 현재까지 이처럼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게 정리된책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지도에 관심이 생긴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도편 최선웅, 해설 민병준 해설 대동여지도 진선출판사, 2017.
평생 지도 제작에 매진해 온 최선웅 선생은 고지도와 지도 제작에 대한 다양한 칼럼과 논문을 집필한 바 있다. 이 책은 기존에 나온 <대동여지도> 영인본과는 다르게. <대동여지도>를 한글화하고 페이지마다 주요 지역에 대한 특징과 설명을 수록했다. 나는 이 책을 자동차 뒷좌석에 두고 여행 갈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편, 지도예찬, 국립중앙박물관, 2018.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특별전 전시 도록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내가 아는 한에선이제까지. 그리고 이 전시 이후로 다양한 곳에 소장된 지도가 이렇게 한꺼번에 전시될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전시를 보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한번 보러 갔다. 도록은 고지도 개론서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시대, 주제별로주요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한 권쯤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고지도의 매력에한 발자국을 들인 셈이다.

추천하는 온라인 사이트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문 검색 서비스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지도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 사이트에는 고지도 항목이 별도로 있어 규장각에 가지 않더라도 고해상도 이미지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리지 종합정보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고지도뿐만 아니라 방대한 분량의 조선시대 지리지도 소장하고 있다. 현재 시대별, 지역별로 지리지를 구별하여 데이터를 구축해 놓았으며, 원문 열람과 텍스트 검색이가능하다. 조선시대 역사 연구에 빠져서는 안 되는 사료인 지리지를 직접 검색해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한국학자료포털 고지도 검색(김정호의 동여도)조선시대 전국 지도 가운데 가장 상세한 지도는 김정호의 <동여도>를 들 수 있다. 개별 군현 단위로 제작된 지역별 지도가 이보다 상세하긴 하지만, 전국을 한 번에 아우르는 것으로는 <동여도》만 한 것이없다.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도 <청구도> 또는 <동여도>를 추천하는데, 특히 김정호의 가장 완성된 지도 형태의 최종본이라 할 수 있는 <동여도>를 추천한다. 이 사이트에서는 한국 고문헌을 권역별로 수집하는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옛 문헌의 참고 자료를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동여도>를 고해상도로검색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하고 있다. 대형 고지도의 웅장함과 디테일을 확대, 축소를 통해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이뮤지엄은 전국 박물관의 연합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키워드 검색으로 사진과 유물 설명을 통해 어느 기관에 어떠한 유물이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고지도 자료가 규장각,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만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박물관에도 수많은 고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한국의 다양한 고지도가 어느 박물관에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에 빠지다보면 자신만의 고지도 전시회를 기획하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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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찮다고 해야 괜찮은 거지 다른 사람이 지난 일이라고 덮으면 끝나냐고."

그 순간 가족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영웅이의 동물화는 아직 진행형이구나. 겉모습이 돌아왔다고 한들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동물화가 끝나지 않는구나.
다들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 묵묵히 밥만 먹었다. 그러나 영웅은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제 진심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이 동네, 이 가족의 쓰레기통은 아니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내가 한 일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덮어씌우고. 내가 한 잘못보다 더 큰 잘못에 내 이름이 붙어 있어도 입 다물었어. 내가 한 잘못도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실수로 물을 엎지른 거랑 남의 얼굴에 일부러 물을 끼얹는 거는 다르잖아. 그런 잘못까지 내가 뒤집어쓸 이유는 없다고."

"영웅아......."
"엄마는 무조건 사과부터 했잖아. 한영웅이 그런 게 맞냐고 먼저 물어보지 않고 그냥 죄송하다는 말부터 했어."
영웅의 씩씩거림에는 제 감정을 꾹 삭이려는 필사의 노력

이 배어 있었다.

이제야 듣게 되는 영웅의 진심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씩씩한 중학생인줄 알았던 녀석의 남모를 상처를 알게 된 순간,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다.

"영웅아, 그때는……………, 아니다. 미안하다. 네 마음이 그랬는지 엄마는 정말 몰랐어."

그 말에 영웅이 고개를 돌려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아. 내가 불고기를 안 좋아하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입이 짧아 반찬 투징을 한 건 태웅이었지 영웅이 아니었다.
늘 주는 밥을 군말 없이 먹고 제일 먼저 밥그릇을 싱크대 설거지통에 넣는 영웅의 입에서 나오리라 예상했던 말이 아니다.
"누나랑 아빠가 좋아해서 얻어먹은 거지, 내게 선택권이 있어서 먹은 게 아니야, 입맛은 부녀가 닮는 건데 나랑 태웅이는아니라고."

이 말은 뭐랄까, 반쯤 눈 감고 있던 불편한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각자의 아픈 곳을 동시에 찌르는 것 같았다. 모두가 뒤통수를 한 대씩 얻어맞은 듯 얼언했다.

영웅은 지금 이 집 자식 중 부모와 같은 피를 가진 자식은 누나뿐이라는 사실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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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청나라의 침입 이전까지의 어수선한 세월 속에서 정말 있을 법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최척전은 하 수상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서글펐는지를,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두 비슷하다는 점을 다시금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작자 조위한(1567~1649)은이이야기를 쓰게 된 경위를 소설의 끝에 기록해 놓았는데, 이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대목 같기도 하다.

아! 부모 자식, 부부, 시아버지와 장모, 형제 등 온 식구가 네 나라에 흩어져 20여 년간 한스럽게 살았고 적의 나라에 살면서 위험한 상황을 몇 차례나 겪었지만, 마침내 다시 모여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과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도다! 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될 일이겠는가! ()

내가 남원 주포에 살고 있을 때 최척이 때로 찾아와 자기가 겪었던 일을 말해 주며 그 사연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 그가 겪은 기이한 일이 혹시 잊히거나 잘못 전해질까 염려하여 대략 줄거리를 기록하였다. 1621년 2월에 조위한 쓰다.

「최척전」 

중에서행복을 원하고 살기를 바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늘 이상과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겪는다. 아마도 부조리라는 것은 그러한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리라.
최척은 본래 남원 사람으로,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글을 배우러 간집에서 아름다운 여인(옥영)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결혼하게 되고, 이후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며 첫 아이 몽석을 얻는다. 그러나 1597년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입하는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최척은 피란길에서 아내와 아들 동석을 잃어버리

게 된다. 최척은 명나라 여유문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아 함께 중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중국을 유람하기도 하며 다른 삶을 살아가던 최은 주우리는 친구와 함께 배를 타고 무역 일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한편 최척의 아내 옥영은 남장을 한 상태에서 포로로 붙잡혀 살아있었다. 돈우리는 일본군 병사의 포로가 되었는데, 그는 옥영을 죽이지 않고 자신의 집안일과 무역 일을 돕도록 부탁한다. 일반적인 임진왜란 이야기에서는 일본군의 잔학한 면모만 부각되는 것에 비해, 『최척전은 당대에 쓰인 책이면서도 일본인 병사 중에도 인간적이고 착한 사람이 있다는,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 준다. 옥영과 돋우는어느 날 무역을 위해 멀리 안남, 지금의 베트남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 최척도 안남에 무역을 하러 들르게 되고 울적한 심정에 평소 자신이 부르던 노래를 피리로 연주하는데, 저 멀리 정박한 배에서그에 맞추어 조선말로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는 신혼 시절옥영이 지었던 것으로, 두 사람은 설마 하는 심정에 다음 날 서로를찾아 나서고, 결국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후 중국에 정착하여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꿈에서 신선을 보았다 하여 몽선이라 이름 지었다. 첫째 아들 몽석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몽선을 아끼는 그들의 마음은더욱 컸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몽선은 성인이 된다. 이때 동네에 살던 홍도라는 중국 아가씨가 몽선과의 혼인을 간곡히 부탁하는데, 그

곡절 역시 안쓰럽다. 그의 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로 조선에 출정하여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기에, 조선 사람과 결혼한다면언젠가 아버지가 묻힌 땅을 가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홍도의 깊은 뜻에 최척 일가는 그녀를 며느리로 맞이하고 다시 삶은 계속된다.
이후 1618년, 최척은 군대를 따라 나중에 청나라가 되는 후금의 세력을 막기 위해 만주에서 전투를 벌이다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몇 개월이 지나면서 안면을 익힌 한 젊은이에게 자신의 기구한 인생사를 말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청년이 바로 자신이 잃어버린 첫아이 몽석이었다. 

포로로 재회한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조선 땅에 도달하지만, 심한 병에 걸린 최척은 생사를 헤매게 된다. 이때 침술을 할 줄 아는 나그네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겼는데, 통성명 끝에 그가 며느리 홍도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한편 중국에 머물고 있던 아내 옥영과 며느리 홍도, 그리고 아들 몽선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마음을 굳게 먹고 조선 땅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작은 배를 타고 조선으로 출발한 그들은 해적을 만나고 배가 난파되는 등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도착하여 남원에 이른다. 30년 전의 옛 동네 모습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회한에 젖었는데, 최척의 옛집을 보고 혹여나 하여 방문하게 된다. 

문을 여는 순간 최척과 옥영, 두 아들, 그리고 홍도와 그 아버지 진위경은 극적으로 상봉한다. 너무나도 기이한 이 사실을 남원 부윤이 임금께 고하고, 그들 모두는 남원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여생을 마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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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자는 관리가 될 수 없습니까?"
"여인으로서 관모에 손댈 수 있는 자는 오직 초선뿐이란다."
"그러면 저도 초선이 되겠습니다."

<폐월: 초선전>은 딸이나 아내, 혹은 첩이나 종으로 살다 죽은 젊은 여자의 생을 되살려낸다. 
마치 그녀의 때 이른 죽음이 몹시 부당하다는 듯, 그러한 서사는 그녀의 몫이 아니라는 듯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하거나 신적인 위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이 소설이 하려는 바가 아니다. 초선은 죽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연이 부여한 명을다하고 순리대로 죽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어금니가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늙어가다 
이내 명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한 인간이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지위이기 때문이다. 
박서련이 그녀에게 주고자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인간됨의 시간이다. 
---전승민(문학평론가)

선과 악, 사랑과 폭력을 모두 경험하고 그것을 남김없이 세계의 일부로 받아든 인간의 존엄한 자기 탄생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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