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승아 씨는 그제야 아저씨의 행동이 단지 자신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키호테』 번역은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돈키호테』 이거 일이 년 해서 될 게 아닙니다. 평생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내가 영어 강사로 탑이긴 했지만 번역은 다른 문제더군요. 나는 번역보다 중요한 돈키호테의 꿈을 배웠어요. 이제이 책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려고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곤 빙긋 웃어 보였다. 


"아빠한테 반항하느라 그렇게 된 건 아니고?"
"뭐, 그런 것도 있겠지. 이후로도 아빤 계속 가난해서 나한테 제대로 뭐 한번 사준 적도 없으니까. 지금도 그렇고."
녀석이 혼자 잔을 비웠다.
"한빈아. 아빠가 너 방학마다 돈키호테 비디오에 데려와 같이 지내서 우리 라만차 클럽도 만난 거 아냐? 그리고 얼마 전에 내가 서랍에서 아저씨가 쓰던 가계부 발견했거든. 거기 네 양육비 꼬박꼬박 보낸거 적혀 있던데, 그 정도면 아빠 수준에서 해줄 수 있는건 다 해준거 같은데?"
"시끄러!"
•시끄러? 얘가 발동 거네. 그래, 따져보자. 

‘부자 되세요‘ 인사들해서 우리나라 사람 다 부자 됐니? 
돈이 최고라는 시대가 지금인데 그래서 사람들 행복하니? 

돈만 앞세우는 게 왜 문제냐 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우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어이구, 돈키호테 따라다니더니 돈키호테처럼 군다. 괜히 하소연하다 뺨 맞는 꼴이야 됐으니까 그만해라 쫌."
한빈이 또 혼자 잔을 비웠다. 더 취하면 안 될 것 같아 자리를 정리하려고 일어서는데, 녀석이 내 팔을 잡고 매달리다시피 했다.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은 그가 레판토 해전과 포로 생활이란 고초를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전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그는 상이군인이었고 전쟁포로였으며 한물 간 소설가였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부 요인으로 신대륙에 가일하고 싶었으나 고작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 징수원으로 고용됐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며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횡령죄를 선고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꿈꿨다. 신대륙에 가는 바람을 이루기는커녕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는, 장애인에다 전과자에 불과한 늙은이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꿈꿨다. 바로 이곳에서.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크게 허리를 숙여 
그의 동상에 인사한 뒤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감옥에서도 꿈을 꾼 자의 영혼을 위해 건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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