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괜찮다고 해야 괜찮은 거지 다른 사람이 지난 일이라고 덮으면 끝나냐고."

그 순간 가족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영웅이의 동물화는 아직 진행형이구나. 겉모습이 돌아왔다고 한들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동물화가 끝나지 않는구나.
다들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 묵묵히 밥만 먹었다. 그러나 영웅은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제 진심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이 동네, 이 가족의 쓰레기통은 아니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내가 한 일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덮어씌우고. 내가 한 잘못보다 더 큰 잘못에 내 이름이 붙어 있어도 입 다물었어. 내가 한 잘못도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실수로 물을 엎지른 거랑 남의 얼굴에 일부러 물을 끼얹는 거는 다르잖아. 그런 잘못까지 내가 뒤집어쓸 이유는 없다고."

"영웅아......."
"엄마는 무조건 사과부터 했잖아. 한영웅이 그런 게 맞냐고 먼저 물어보지 않고 그냥 죄송하다는 말부터 했어."
영웅의 씩씩거림에는 제 감정을 꾹 삭이려는 필사의 노력

이 배어 있었다.

이제야 듣게 되는 영웅의 진심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씩씩한 중학생인줄 알았던 녀석의 남모를 상처를 알게 된 순간,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다.

"영웅아, 그때는……………, 아니다. 미안하다. 네 마음이 그랬는지 엄마는 정말 몰랐어."

그 말에 영웅이 고개를 돌려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아. 내가 불고기를 안 좋아하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입이 짧아 반찬 투징을 한 건 태웅이었지 영웅이 아니었다.
늘 주는 밥을 군말 없이 먹고 제일 먼저 밥그릇을 싱크대 설거지통에 넣는 영웅의 입에서 나오리라 예상했던 말이 아니다.
"누나랑 아빠가 좋아해서 얻어먹은 거지, 내게 선택권이 있어서 먹은 게 아니야, 입맛은 부녀가 닮는 건데 나랑 태웅이는아니라고."

이 말은 뭐랄까, 반쯤 눈 감고 있던 불편한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각자의 아픈 곳을 동시에 찌르는 것 같았다. 모두가 뒤통수를 한 대씩 얻어맞은 듯 얼언했다.

영웅은 지금 이 집 자식 중 부모와 같은 피를 가진 자식은 누나뿐이라는 사실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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