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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 - 가장 사적인 기록으로 훔쳐보는 역사 속 격동의 순간들
콜린 솔터 지음, 이상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평점 :
역사. 2음절밖에 되지 않는 단어임에도 웅장하다.
이 단어하나에 선사시대, 기원전, 기원후 수십만년의 인류의 이야기가 담겨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나의 조국을 넘어선 세계사라면 음절하나가 더해진 그 이상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내가 수학을 못함에도 이과의 길을 간 이유가 바로 역사라는 단어의 압박감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통의편지로읽는세계사 (#콜린솔터 씀 #현대지성 출판)을 보고는 역사, 세계사라는 것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스파르타와 마케도니아의 전쟁에 굴복하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라는 굴욕적인 편지에 ‘만약’이라는 단어만 적어보내는 스파르타의 패기, 국혼을 파기(이혼이라 하지)하려 가톨릭과 맞서싸운 헨리8세가 정인에게 보겐 연애편지 다발(바티칸에 보관되어있는 것이 더 신기하다), 자신을 믿기못해 목숨을 끊길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애인에게 남긴 유서가 되지못한 유서(어설픈 실력으로 모든 장기를 피해간 칼날, 그 칼날이 ‘악의 꽃’의 최대주주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쉽지않은 길이며, 심지어 끝이 밝지않음을 알고있으나 걸어가야만 한다고 고백하며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싶음을 전했던 불후의 화가 고흐, 그런 형에게 폭풍우에서 휩쓸려 좌초된 시간이 드디어 끝나 결국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평생을 응원한 동생 테오 둘사이의 편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 지는 베아트릭스의 ‘피터 래빗’의 시초가 된 아이들에게 보내는 귀여운 삽화가 그려진 편지, 마리아 퀴리에게 사랑을 고백해 마리 퀴리로 두개의 노벨상을 받게 된 미래의 남편이 보낸 편지, 타이타닉 호 승객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물에 젖었음에도 선명한 편지(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코트에 돌들을 넣어 물로 걸어들어가기 전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들이 세계사라는 이름아래 묶여있는 것을 보니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준엄하고 웅장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개하지 않은 전쟁과 정치에 관련된 정상들끼리 주고받은 서신이라던가 극비사항을 상대국에게 전하는 스파이의 글들도 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의 한 이야기일뿐이었다.
역사란 인간이 만들어 간 시간들이 쌓여있는 것.
사람 사이에 허심탄회한 둘만의 솔직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고 심지어 향을 고르기까지 하는 정성이 담겨있는 그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역사, 세계사와는 결이 다른 부분도 존재한다.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큰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큰 사건에도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소통은 존재했다.
결국 우리가 배운 역사는, 전체 역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전쟁이나 역사적 사건이 큰 의미일 것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사랑하길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울프가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큰 의미일 것이다.
개인마다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 역사가 다른 것이다.
그런 역사의 중요함의 우위를 누가 따질 수 있을까.
모든 역사는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는 역사를 배운다기 보다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나에겐 역사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역사라는 단어가 조금더 말랑말랑한 무언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편지들을 쓰는 사람들은 이 편지가 역사의 일부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평범한 것들이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겨질 수 있다. 아니 남는 것은 분명하다.
호승심은 아니지만 역사에 나를 남기고 싶어졌다.
이쁜 편지지와 펜이 필요해졌다.
역사에 남고 싶다면, 편지를 써보라.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서를 편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