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불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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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안식처는 필요하다

동심과 유년시절의 추억은 동서고금,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토록 가치롭게 평가되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에게나 안식처는 필요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대체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갓난시절부터 아동기까지, 한정없는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처럼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허용되는 경험은 이후 낙심의 순간 스스로를 놓지 않도록 인간성을 지켜주는 방파제 또는 안전지대의 역할을 한다. 특히 조부모의 사랑이란, 부모의 것과는 다르게 마냥 넉넉해서 이에 대한 경험은 더욱 값지다. 바로 그런 사랑의 추억을 건드려 의식 저편의 잠자던 그리움을 깨운다는 점에서, [겨울 이불]은 특별하다. 시골집과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겨울잠이 한창인 동물친구들이 등장하는 그림동화 [겨울이불]은 훈훈했던 이전 세대의 향수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심과 조건없는 사랑의 재경험으로 이끄는 따끈한 초대장이다.




온돌바닥과 이불

겨울이불은 눈까지 함빡 내린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푸근하다. 이야기는 아이가 눈에 잠긴 집의 마당에 들어서며 시작된다. 엄마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고 툇마루에서 방안으로 건너오며 발을 딛는 순간 주인공은 "앗, 뜨거워!" 비명을 지르고 만다. 이는 첫 번째 마법의 주문이다. 온돌 장판의 뜨거움이란 지글지글 끓는 정도라서, 온도조절에 실패하면 까맣게 태우기 십상이다. 아이의 외침은 저도 모르게 발가락을 움찔하게 될 정도의 온도에 맞춰진 바로미터다. 이 부름에 독자 중 온돌장판을 겪어본 이라면 예외없이, 몸에 새겨진 기억이 순식간에 소환될 것이다. 곧이어 할머니의 겨울 이불, 커다란 진분홍 꽃송이의 문양이 독자들의 추억 중추를 톡톡 건들기 시작한다. 가장 뜨끈한 아랫목에 펼쳐져 있는 이불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며 아이가 차례로 벗어던져 놓은 겉옷들처럼, 우리도 아이의 행적을 따라 점차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불을 들치고 내복차림의 몸을 밀어놓는 아이와 함께 작가가 초대하는 동화세상 속으로 동반입장하고야 마는 것이다.



계란 한 판과 식혜

할머니의 이불 속은 현실과 동화가 뒤섞인 유쾌하고 다감한 세계이다. 개구리와 너구리, 곰과 거북이가 어울리며 밀감을 까먹고, 수다를 떠는 찜질방의 풍경은 낯선 듯 익숙하다. 뜨끈한 바닥 이편저편 뱀과 고슴도치, 다람쥐와 두더쥐가 동면하듯 널부러져 있다. 가장 안쪽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식혜와 고구마를 간식삼아 즐기며 '우리 강아지'를 반겨준다. 찜질방의 대표 먹거리인 식혜를 쭈욱 빨아들이는 조부모의 확대컷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이처럼 독자의 입 안에도 단숨에 침이 고인다. 미각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훌륭한 도구이다. 식혜의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혀끝에 감도는 듯한 착각이 드는 순간, 초대의 지평은 단숨에 계란장수가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얼어붙은 강 위에서 썰매를 타고 놀던 이전 세대로까지 넓어진다. 카운터의 곰이 지키고 있는 구운 계란 한판은 바둑판처럼 촘촘한 골목길로 변해 그 사이를 계란차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누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다 떠는 동네 주민들이 모퉁이에 자리한 그 모습은 정겹다. 흰곰이 식혜를 떠 주려고 젖힌 이불깃 아래에서 등장하는 것은 밥알이 눈송이처럼 떠다니는 얼음강이다. 식혜 옹기 안의 작은 세상에서 심연의 가라앉았던 다정함과 그리움을 길어올리듯 국자가 마법같이 길어지며 얼음층 아래에서 달큰한 음료를 쑥쑥 퍼올린다.



혼자가 아니다

간식을 먹고 나누는 자리는 웃음꽃이 만발한다. 아이는 제입보다 먼저 배고픈 다람쥐의 입에 간식을 물려주고, 할머니가 다정스레 까내어 아이의 입에 쏙 물려주는 흰 달걀의 말랑함만큼이나 이불 속 찜질방의 분위기는 부드럽고 명랑하다. 배도 부르겠다, 따뜻한 바닥에 누워 무릎베개를 한 아이의 이마를 거슬한 할머니의 손이 쓸어준다. 사락사락하며 할머니의 손과 아이의 머리칼이 마찰하는 소리가 네컷으로 전개된 페이지에서 독자들은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을 듯 하다. 안녕달 작가는 부드럽고 푸근한 그림체 속에 수많은 실마리를 숨겨놓았다. 모든 힌트는 독자들이 저마다 소중히 간직해 온 추억의 유산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돕는 안내 장치이다. 그렇게 그림책 한 권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든든하고 푸근한 심정이 되길 바랬던 것이 아닐까. 잠들기 전 마지막 아이의 시선에 가득했던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가 안녕달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같기도 하다. 가만가만 쓸어주는 할머니 손의 촉감과 동물친구들의 어우렁더우렁 함께 하는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이런 합창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모든 사람은 혼자일 수 없다. 혼자가 아니다라고.



온기는 번진다

겨울의 한기는 현실적인 삶의 온도와도 같다. 열심과 경쟁이 당연시되는 생계 현장의 기온은 냉랭하다. 그렇게 하루를 차게 보낸 후 추위를 거슬러 연기와 불빛이 배어나오는 집 마당에 들어선 아빠가 방안에 들어서자, 바람 냄새가 코끝을 휘감는다. 그런 아빠에게 할머니가 내미는 것은 아랫목 포근한 이불 속에 묻어 놓은 밥 한공기이다. 앉은뱅이 상위에 펼쳐진 염려와 다정함은 뜨끈한 밥 한술 위에 할아버지가 슬쩍 떼어 올려놓은 고등어 살 한 점처럼 배부르게 기름지다. 일터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고령의 부모가 던지는 "밥은 먹고 다녀야지"라는 심상한 한 마디는 안쓰러움, 듬직함, 염려, 고마움과 격려의 마음이 그득 눌려 담겨있다. 잠이 폭 든 아이에게 점퍼를 둘러씌워 업고 가는 아빠의 모습이 포근포근 내려앉는 눈송이와 하얀 입김 덕분에 시려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아이가 품고 있는 애정과 녹아내린 아빠의 심정이 하나가 되어 이윽고 독자들에게까지 내려앉을 것이다. 아빠의 마지막 한 마디에서 알 수 있듯이 온기란 번져나가는 것이기에, 나 역시 마지막 장을 펼치며 독백을 따라해본다.

애가 몸이 참 따끈하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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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을 걷는다 - 느리게 산책하는 사람의 사색 노트
이영란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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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요?


여상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세상이 언뜻 다가와 제 무게를 당신에게 열어보이는 놀라운 찰나 말입니다. 예컨데 빨래를 널다 보풀 인 겨울내복을 집어드는 순간 갑자기, 웬수같던 막내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입 밖으로 내던 날이 떠올라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펼쳐지는 그런 때요. 이러한 우주적 만남의 순간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고 또한 물러가지만, 종종 마중물을 부어 지하수를 길어올리 듯 각자 개성에 맞춘 특정한 의식을 통해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혹자는 '물멍'이니 '불멍'이니 하는 느긋한 휴식의 때에, 혹자는 일기를 적는 시간에, 그리고 저자는 새벽의 산책시간에 세상과 마주하는 거지요.


새벽을 걷는 한 사람의 사색노트, [오늘도 새벽을 걷는다]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

작가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불완전함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부분이며 당연한 것이라, 서로 기대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따뜻한 온정이 필요한 곳, 돌봄이 필요한 곳이 사람이 있을 곳이라고요. 그래서일까. 한강 둔치의 취객이 남기고 간 쓰레기에서 어여쁜 흔적을 잘도 찾아내었습니다. "감정의 찌꺼기들은 한강 둔치에 홀로 남아있다(p.32)"는 표현이 다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사물이 아닌 사람의 사정을 봅니다. 소풍조차 과업처럼 허둥지둥 수행하고 서둘러 자리를 뜨느라 미처 단도리 못하여 흘리고 간 감정 조각들을, 타박치 않고 안쓰러이 여기는 시선을 품었습니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고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스스로에게 기댄다

(p.53)



제자리에 앉는 것도 

달리기가 필요하다

(p.55)



저자를 따라 문장마다 흩어져 있는 개성과 기억의 파편을 들어 맞춰봅니다. 어설프게나마 작가가 너저분한 자리조차 다정한 시선으로 훑을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쓰라린 시간을 보낸 게 아닐까 유추하면서요. 사람에게 기대다가 스스로에 기대며 단단해지기까지 '달리기'하는 맘으로 새벽을 걷고 관찰하고 적는 날들이 켜켜이 쌓여 다져지고, 숙성되어 '다감'이라는 보드라운 맛이 되었으리라 그렇게요. 새벽을 걸으며 저자는 단단해지는 법도 터득했을 뿐 아니라 비우는 요령도 얻은 듯 합니다. 물길에는 상한 마음 흘려보내고 경사를 오를 때는 숨 차서 생각을 덜어낼 수 있기에 물가도 걷고, 산도 올랐나 봅니다.




오늘의 고단함이

내 마음에 고이지 않기를

(p.134)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망각의 산을 오른다

(p.209)




속이 시끄러울 때, 우울한 기분이 들 때 저자가 전해 준 방법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물길에는 시끄러운 감정과 고단함 흘려보내고, 뒷산이 멀다면 하다 못해 동네 언덕길을 오르며 헐떡여봅시다. 잊고 싶은 것은 잊어봅시다. 한마디 얹자면, '걷는다'는 행위는 실제로도 신경계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어 신체 건강 외에도 마음 건강, 뇌 건강에 매우 이롭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는 책을 읽는다


저자는 새벽을 걸으며 다정한 글을 차곡차곡 쌓아왔겠지요. 저자가 눈에 담아 온 것은 애초에 산책길 새벽 풍경이었는데, 새벽 길 기록이 모여 '사람'에 대한 노래 한 권이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뒷부분에 수록된 시 "사람이라는 책을 읽는다(p.223)"가 가장 마지막에 위치했어도 괜찮은 결말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사진집 같기고, 일기 같기도, 에세이 같기도 하고, 산책 중 끄적인 메모 또는 시 같기도 합니다. 솔직하고 소탈합니다. 화려하거나 현학적인 수식어를 두르지 않아 책장이 훌훌 넘어갑니다. 세상을 건네보는 시선에 뾰족함이라고는 없습니다. 표지는 이 책을 '느리게 산책하는 사람의 사색노트'라고 소개하였습니다만, 저는 사람이 읽히는 책이라 안내하고 싶어요.



서재 한 켠을 시선집으로만 채워놓은, 한 때의 시인 지망생으로서 시집에 대한 욕심만큼은 지대하기에 시집 한 권 추가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도 새벽을 걷는다'에서 시보다는 사람, 수줍어 하면서도 뜨거운 마음 지닌 한 사람이 언뜻 읽혔기에, 소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될 듯 합니다.


한 사람이 써내려간 사람이라는 책에서 "사람을 읽었습니다"


세상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은 영혼을 영글게 합니다.

흘려보내지 마시고, 24시간 중 어느 때 만큼은 그런 순간으로 채우는 호사 누리시기를, 부디.



*이 글은 바른북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제가 직접 읽고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포스팅입니다.


길에 사람을 심는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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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Viktor
자크 마에스.리서 브라에커르스 지음, 심선영 옮김 / 고트(goat)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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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품인 동물의 가죽을 입고 무리의 일원이 된 빅토르. 다정함을 겪으며 공감을 배우고, 사냥이라는 행위의 무게를 깨닫는 만큼 마음이 깊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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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살자
아우레오 배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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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살기로 했다.

나 또한 언젠가 죽겠지만, 살기로 했다.

나 자신을 죽일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낳아 위대한 사랑으로 키워 주신 부모님을 위해서.

언제나 나를 믿는 가족들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살기로 했다.


죽느니 살기로 했다


저자는 오랜 기간 죽음을 생각해왔다 했습니다. 다만 미처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의 마무리 때문에, 이것만 끝나면, 하며 죽음의 순간을 유예하였을 뿐 삶을 끝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인의 죽음, 그 후 주변인들에게 휘몰아친 흔적과 고통을 목도하고는 살기로 합니다. 가족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을 위해서. 그를 사랑해 준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적어내려간 죽음과 삶에 대한 글 모음이 에세이집 '죽어도 살자'입니다.



저자는 죽고 싶은 사람인 동시에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던 할머니의 죽음 뒤에 남겨진 외로운 소년, 함께 전시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던 지인의 죽음 뒤에 남겨져 코로나로 텅 빈 전시장을 빈소 지키 듯 지킨 작가... 아우레오 배. 그의, 작가의 선택이 '삶'이었기에, 죽음에 대한 에세이가 종국에는 생에 대한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 유독 고마웠던 이유는, '죽으면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어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안되는 이유"와 "못하는 이유"가 넘쳐나 넌덜머리가 나 있는 요즘이었거든요. 그는 되려 살아온 이야기와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죽고 싶은 사람은 그 누구보다 제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어요.




 그렇게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로 '우로보로스' 즉 자신의 꼬리를 주동이에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네요. 여는 글에서 저자 아우레오 배가 밝힌 재생과 영원, 자기 의존의 상징 외에도 우로보로스는 변화이자 완전함 그리고 현자의 돌을 상징합니다. 삶의 궤도 밖으로 투신하지 않는 한, 실수와 결핍, 고통을 당신의 힘과 매력으로 체화시킬 기회는 여전한 겁니다. 돌덩이와 납덩이를 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의 비기, 현자의 돌. 현자의 돌은 물질일 수도, 방정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 에세이집은 저자가 간직하고 있다 건네는 현자의 돌입니다. "죽어도 살자, 우리."라며 저자가 늘 말아 쥐고 있던 주먹을 펴 체온이 남아 아직 따뜻한 돌멩이 하나를 턱, 손에 쥐여주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살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다


저자는 결핍과 상실, 실수와 실패의 쓸모를 이야기합니다. 살기 위한 방법을 전합니다. 모자람이 인간을 아름답게 하고, 아픔이 그를 더욱 인간답게 하며, 불편함이 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요. 힘든 경험은 이를 경험한 이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켜 타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니, 결국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추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자유로움이 찾아오고 오히려 선택의 영역이 넓어진다고요. 그렇게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갖춰가며 저마다의 영혼에 새겨진 소망을 따라 살아나갑니다.



"인간이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은 마음을 굉장히 자유롭게 합니다. 모른다고 생각할 것도 없어지고, 안다고 생각할 것도 없어지지요. 무엇이든 그냥 해 보게 됩니다. 자연의 진리는 몇 가지 없고, 그런 자연의 법칙은 모든 것에 적용되니까요. 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면, 지금 하세요. 일단 하기 시작하면 배우게 됩니다.(61p.)"





역설적 관점으로 불편함을 재조명하는 것이 생을 빛나게 하는 연금술의 제1 방정식이라면 제2 방정식은 '숨은 의미 찾기'입니다. 저자는 과연 예술가여서, 인생의 어떤 요소도 허투루 대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현상으로 여기면 이유를 찾게 되고, 현상의 원인을 알면 그 의미 또한 달라지지요. 의미에 따라 대상의 값어치는 변합니다. 맛이 아닌 번거로운 그 과정이 목적이라 모닝커피를 굳이 드립으로 내리는 제게 그 일련의 과정은 모닝커피를 준비하는 시간 이상의, 아주 만족스럽게 보낸 하루와도 맞먹는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요.



ж생의 연금술 _제1 방정식


"'망가진다'라는 건 관점의 차이입니다. 어떤 그림을 누군가는 낙서로 보고, 다른 이는 명화로 봅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64p.)


"실수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함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65p.)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정말로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72p.)


"우울감과 우울증을 경험하며 저와 닮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에요."(114p.)


"잠은 불멸의 초능력입니다. 만족하는 삶은 적절한 휴식으로 얻은 가장 맑은 상태로 삶에 임하여 이룰 수 있습니다." (189p.)

"잠은 불가피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나를 재생하는 초능력입니다. 아픔과 슬픔과 힘듦도 시간과 함께 줄어듭니다. 그래서 버티면 이깁니다."(190p.)



ж생의 연금술 _제2 방정식


"영어를 할 줄 알게 되며 깨달은 점은, 인생은 노력이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점입니다." (87.)


"공감은 당신과 나의 삶을 살 만하게 해요." (113p.)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을 좋은 의도로 대합니다. 때때로 이유 없이 불친절한 사람은 그 사람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내가 화라는 독소를 내 몸 안에 생성할 필요까진 없게 되지요." (162p.)


"세상이 나에게 압력을 가했을 때 그 압력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탄성은 나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185p.)



우리는 세계의 일부이다


우주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사진 찍기가 취미이던 소년이 어느 날 찍어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됩니다. 저자에게 이는 강렬한 경험이 되어, 인물사진으로 작가 생활과 본격적인 커리어에 돌입하지요. 책에서 저자는 그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창조적 에너지의 뿌리임을 고백해요. 그 사랑이 뿌리가 되어 그는 독선이 아닌 더불어 살기를, 우주의 일부로서 사랑을 나누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원하게 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요. 그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 할머니의 사랑과 존재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군요.


마이클 온다체는 그의 장편소설 고양이 테이블에서 태피스트리의 뒷면을 뒤집어 뒷면의 무늬가 더 아름답고 색감이 강렬함을 보이며 깊이와 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힘은 배면에 존재하죠." "아마도 백 명 이상의 여자들이 일 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렸을 거예요. 그들은 이 일을 할 기회를 잡기 위해 싸웠죠.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었을 테니까. 이 작품은 1530년대의 그들을 지켜주었어요. 플랑드르의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에요. 이 감상적인 작품에 깊이와 진실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이죠." (마이클 온다체, 고양이 테이블, 다산책방, 326p.)



작가가 이야기하는 우주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방법은, 환경의 오염을 최소화하는 것 외에도 '같이 먹고사는 삶'에 있습니다. 나의 활동과 생산성이 타인에게도 먹고 살 길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거지요. 저자는 일찌감치 사업을 통해 고용주가 되고,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가정을 꾸릴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정부에게 지원만 받는 예술가는 지양하고자 합니다. 좋은 상품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리는 것이 좋은 상품이라고, 좋은 성과를 통해 세금을 많이 내고 싶다고 이야기하지요. 저러한 기업, 예술품에는 진정성과 깊이라는 '힘'이 깃들 것입니다. 이렇듯 저자는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 우리를 살리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영역을 넓혀갑니다.




아름다운 문장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은 이의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은 하나의 우주인 것 같아요. 사람이 없어지면 세상이 없어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아이는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우주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지성은 상상력이니까요. 사랑을 통해 인간은 타인에 공감하는 도덕성과 삶을 살아갈 자신감을 얻습니다.

-아우레오 배 (25p. 글자체와 색으로 강조 표시는 반짝풍경이 함.)



날카롭고 비판적인 사람도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친절한 사람이 됩니다. 죽음이라는 같은 종착역을 향해 가는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는 여행객이니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결국 죽는데, 서로 친절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아우레오 배 (71p. 글자체와 색으로 강조표시는 반짝풍경이 함.)



Pain and suffering are always inevitable for a large intelligence and a deep heart.

The really great men, I think, must have great sadness on earth.

-Fyodor Dostoevsky(114p.)



Pepole cry, not because they're weak. It is because they've been strong for too long.

-Johnny Depp (116p.)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52p.)

그래요, 죽어도 살아요 우리.

더 이상 괴짜인 나 자신이 부끄럽지도 사람들로부터 숨고 싶지도 않아요. 연약함이 아니라 그저 내 모습일 뿐이라 털어버리고 나니, 이제 살 생각이 납니다. 진정 마음이 너무 닮아 물 만난 고기 마냥 희열하며 친구와 대화로 밤 지샌 듯한 연말연시였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선 채로 서성이며 한차례 단숨에 읽어내리고, 드러누워 다시 읽고 들고 다니며 또 읽고 실컷 읽은 후에야 이렇게 작가의 에세이집을 벗이 보낸 편지로 여겨 서평으로 벗에게 답장을 씁니다 :)


우린 모두 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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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eo 2022-01-1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감동적인 리뷰, 감사드립니다.

반짝풍경 2022-03-01 15:4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
 
죽어도 살자
아우레오 배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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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삶의 궤도 밖으로 투신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에세이가 삶에 대한 글이 되었다. 표지의 이미지 ‘우로보로스‘는 현자의 돌을 상징한다. 죽어도 살자는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주는 삶의 연금술 비기, 현자의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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