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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최근에 나는 아들 아서(열 살)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아빠, 삶의 목적은 말이죠. 죽음이에요. 무엇이든 결국에는 죽으니까요. 하지만 아빠, 죽음의 의미는 삶이에요. 죽음 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으니까요.” P.9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P.17
우리는 더 나은 세계를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불평할 이유도 없다. 세계는 이미 좋은 상태이거나 가능한 한 최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P. 27-28
인간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갈구한다. 산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이고 모든 욕망은 부재(혹은 부재한다고 느끼는 것)를 전제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한 부재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다시 다른 무언가를 갈구한다. 우리가 더 강렬히 욕망하면 할수록 우리가 겪는 고통은 더 커진다. 하지만 욕망하지 않는 것 역시 실행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 첫째로는 인간 일반에게 욕망하지 않는 능력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특정한 욕망의 부재 역시 나름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P.30
삶이란 부존재non-existence에 맞선 끝없는 투쟁이다. P.32
그런 사람은 우리가 부여한 지식으로 무장하여 시간의 날개를 타고 돌진해 달려오는 죽음을 무신경하게 맞이할 것이다. 오히려 죽음을 허약한 사람이나 겁먹게 만들 뿐 자신이 곧 의지이며 의지가 객관화된 형상이 세계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거짓된 형상이자 무력한 망령이라고 여길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에게 삶은 언제나 확실하고 의지가 나타나는 적절하고도 유일한 형식인 현재도 확실하다. 그런 사람은 과거나 미래를 공허한 환영이자 마야의 베일로 볼 것이므로 자신의 존재하지도 않는 무한한 과거나 미래에 겁먹지 않는다. 태양이 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듯이 그런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사실 인간은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뉜다. 다시 말해 번식이 주목적인 복종하는 사람들과 나폴레옹처럼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인 사람들로 나뉜다. 진정한 인간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기꺼이 법을 초월하고자 하며 그렇게 하더라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명분으로 현재를 파괴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세상을 움직인다. 그들에게는(그리고 오직 그들에게만) “모든 것이 허용”된다. P.154
“삶은 나에게 오직 한 번만 주어질 뿐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난 앉아서 보편적인 행복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살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P.156
우리 안에 내재한 욕구, 즉 삶을 향한 의지는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겉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설령 온전한 행복을 포기해야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완벽히 합리적이기를 거부한다. 결국 우리는 행복보다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만약 우리의 삶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삶을 벗어나고 파멸에 이르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에 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P.163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연민을 가리키며 연민이란 “전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존재 법칙”이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P.178
“세상은 좋은 곳이에요. 우리 인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세상은 좋은 곳이에요.” P.179
— 『왜 살아야 하는가: The Meaning of Life and Death』, 미하엘 하우스켈러 저, 김재경 옮김, 추수밭 펴냄
언젠가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어느 발랄한 커플이 옆에 와 책을 고르며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이건 너무 비싸. 만 오천 원 이하로 고르자.” 충분히 한 끼에 삼사만 원을 쓰며 맛있는 걸 먹을 사람들이었다. 밥 한 끼에 몇 만 원을 쓰면서, 책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업그레이드해 주고는 다 읽고 되팔 수도 있는 데다 면세까지 되는 책에 몇 천 원을 더 쓰는 게 아깝다니. 밥은 맨날 먹고 사라져 버린다. 이 책은 주석을 제외하고 435쪽인데, 이 분량이 담는 생각의 질과 깊이는 18,000원밖에 되지 않는 책값이 그저 너무 감사하여 저자와 번역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다. 이 책은 사람으로 태어나 나의 인생의 시간을 더 잘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책에는 숲을 파괴하는 쓰레기 책이 있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 있으며, 나를 바꿀 위대한 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단연 위대한 책이다.
이 책은 459페이지의 분량에 그 판형과 두께가 내가 쓴 『영어책』과 크기가 비슷하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여, 『영어책』보다 무겁고 분량이 적다. 『영어책』은 541페이지이고 세로로 조금 더 크며 무게는 더 가볍다.
책이라는 물건은 이를 만듦에 들어가는 업무의 양과 깊이에 비해 보상은 적다. 특별히 지식이나 전문 기술도 없이 남의 재산을 사고팔며 수수료를 받는 사람들보다, 출판업계의 성실하게 오래 신경 쓰며 일하는 지성인들이 훨씬 적은 연봉을 벌 것이다. 이는 세계 어디나 그렇다. 그래서 더, 난 책이 좋다. 책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닐지라도) 돈보다는 그보다 성스러운 가치, 영적인 가치를 위해 인생의 시간을 사용한다.
나는 작년 가을에 삶과 죽음에 대한 에세이 『죽어도 살자』를 써 출간했다. 그 책을 내고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죽음에 대해 충분한 리서치를 다 하고 책을 썼다고 생각한 판단에 겸허해졌다. 그랬던 이 책을 출판사에서 협찬을 받아 리뷰할 수 있게 되어, 나에겐 더욱 특별한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