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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평점 :
‘오픈 엑시트'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한국 사회, 그리고 더 넓게는 동아시아 사회가 직면한 큰 위기들을 정말 명확하게 짚어주는 책이에요. 저자는 우리 전통의 ‘소셜 케이지’, 즉 가족부터 직장, 국가까지 우리를 둘러싼 구조가 인공지능이나 저출생, 이민 같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계에 다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서도 그 문제들을 단순히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탈’이나 ‘탈출’ — 즉,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엑시트 옵션’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도 제시하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책을 읽다 보니, ‘그렇지, 우리 기존 체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러면 이제 어떻게 다시 구조를 바꿔야 할까?’ 하는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전통적 위계와 경쟁이 강한 사회가 지금 마주한 여러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우리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책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강추합니다!!
*문장수집
[1]
소셜 케이지social cage 혹은 소셜 케이징caging은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이 소셜 케이지다. 다시 말해서 소셜 케이지는 내가 현재의 사회적 관계와 구조를 이탈exit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제도의 총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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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생 고용’은 해고를 어렵게 만드는 고용보호법과 노동조합에 의해 지탱된다. ‘내부 노동시장 기제’는 잘게 쪼개져 있는 진급 사다리와 때 되면 오르는 연공급과 각종 복지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둘이 작동되려면 평가 시스템 없이도 평가가 이루어지는 입사 시험 성적이나 학벌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의 상층 노동시장은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노동조합, 연공제, 학벌로 버텨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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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으로서의 여성에게 출산율 저하라는 공동체의 위기는―미안하지만―남의 일, 조금 좋게 이야기해도 이웃집 일이다. 출산율이 저하하건 말건,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스스로 먹고살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결혼이니 출산이니 하는 것은 사치재다. 필수재 마련이 먼저다. 그 필수재는 내가 (잠재적)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나의 존엄을 지켜야 할 때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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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출생도 문제지만, 출산의 계급화는 그에 못지않은 사회문제다. 상층과 정규직은 더 적은 수의 자식에게 교육 자본과 자산을 몰아주기 위해 출산을 자제한다면, 중하층과 비정규직은 아이들을 키울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출산을 자제한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인 개인과 가구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이 상층과 정규직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