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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천국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동 1965년
최성철 지음 / 노란잠수함 / 2017년 1월
평점 :
1960년대를 추억하며 쓴 에세이집, '놀이의 천국'입니다. 저자는 유년기를 보낸 동소문동에서의 일들을 세세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 중간에 나오는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이 의외로 글과 잘 어울립니다. 파리의 거리 구석구석이 옛날을 떠올리게 해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게 더 쉬워집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어 책 읽는 시간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년기의 아이들은 생기가 넘칩니다. 친구들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놀던 개구쟁이 남자아이의 풋풋한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계속 웃게 됩니다.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법이니까요.
살고 있는 동네를 샅샅이 훑고 다니는 걸로는 모자라 다른 동네를 구경하는 걸 즐기고 시간 날 때마다 구슬치기와 자치기를 하며 수영장에 가 온 몸이 퉁퉁 불 때까지 수영을 하던, 지칠 줄 모르는 저자와 그 친구들. 꼭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습니다. 몇 십 년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그 생기발랄함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어릴 때를 추억하며 그립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추억하면 할수록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저자나 저나 매한가지입니다. 책을 읽으며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노는 어린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동네 공터에서 고무줄놀이와 땅따먹기, 허수아비, 가끔은 남자아이를 끼워 구슬치기도 하며 실컷 논 다음에는 구멍가게로 쪼르르 달려가 불량식품을 사먹곤 했었지요. 불에 구우면 쫀득해지는 쫀드기, 설탕을 녹여 납작하게 만들어 먹던 달고나, 색소를 뿌려주던 얼음 빙수 등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 먹어도 맛있을 것 같네요.
가끔 떠오르는 어린 시절은 언제나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늘 뛰어다녔습니다. 친구들과 가까운 산 어귀로, 야트막한 언덕으로, 골목길을 누비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놀고 있을 때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두부 한 모나 콩나물 한 봉지를 얼른 사다놓고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놀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놀라고 해도 기운이 달려서 못 놀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신나게 놀다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었지요. 집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밥이 꿀맛일 수밖에 없었겠네요.
가끔 고향으로 가면 어릴 때 놀던 동네를 지나가게 됩니다. 산과 언덕, 골목길은 모두 사라지고 높다란 건물들만 가득해 가끔은 섭섭해지곤 합니다. 동네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바뀌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쳐도 한 군데 정도 그리운 장소가 남아있으면 추억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요. 다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해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이렇게 잔잔한 수필집을 읽으면 쫓기듯 살다가 휴식을 취하는 듯 느긋해지는 기분이 들어 참 좋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생기 가득한 유년의 동네를 추억하며 행복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