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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는 말
'놈 놈 놈'을 보고 나는 놀랐었다. 너무 늦게(!) 같은 이름의 미국 서부영화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 한국 사람의 과도 '섬세'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적 스케일이 아니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한국적 스케일을 나는 '궁중암투'에 민감한 감수성이라고 명명한다. '궁중암투'는 내 보건데, 동아시아 혹은,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절에만 있었던 감수성처럼 여겨진다. '궁중생활'을 해야 느끼는 감수성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궁중암투' 감수성에 민감하다. 그 이유를 나는 '과도한 인구' 탓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과도한 인구'라는 표현은 상대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릇 상상으로 빠진다. 인구의 몇 %는 감축해야 하지 않냐는 감수성인데, 맬더스의 사유에 닿아 있다.
1. 좋은 세상
맬더스는 왜 '인구의 몇 %는 감축'해야 한다는 사고를 바닥에 깔았을까? 당대 영국의 조건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태양왕 루이 14세의 번영속에 있던 무렵 영국은 그러하지 못했다. 물론 루이 14세 시기의 번영은 사실, 루이 15세 시기에 들어서 '낭비'로 사라져가는 추세였지만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무렵 맬더스가 활약했음을 상기해보자.
맬더스는 빈민 인구의 급증에 너무 놀랐다. 이는 사실 프랑스의 번영 종료, 영국의 번영 시작을 알리는 '증표'와 같았지만 '당장' 급한 문제처럼 보였던 것이다. 빈민인구가 너무도 급속 증가하여 걱정이 태산같았던 셈이다. 이런 사유의 한자락이, 마오리족보다 동물을 중시하는 사유의 한자락으로 이어져 있다. '사람'보다 '자연'과 '생태'가 귀중하다는 발상이라는 것인데 꺼내놓고 하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과잉인구처럼 여겨지는 시점이 도래하면 늘 나타났다.
바로 지금, 유럽, 한국과 일본 아닌가 한다. '상대적 과잉인구'는 괜잖다. 중국이 15억이지만 한창 산업화 시점이라 연 10%의 고도성장을 하면서 '과잉인구'의 문제는 살짝 가리는 것 처럼 보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지금이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서론'은 위에 소개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써내려온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영화 '놈 놈 놈'이었고, '놈' 앞에 붙은 '좋은, 나쁜, 이상한'이라는 수식어가 제목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인구는 실상 상대적 과잉이었다. 맬더스는 산업혁명의 초기에 머물렀고 그의 '우려'는 부분 진실을 담았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더불어 탄생한 인류 최초 '공장식 기계 사용 대량생산' 체제의 성립은 '과잉인구'를 과잉인구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한 시절을 낳았다. 산업혁명 초기는 '노동력'이 모자라서, 6세아동까지 일을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산업화된 지구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좋은 세상'이라 함은 한국과 같은 곳을 의미한다. 산업화된 지역이다. 얼마나 좋으면, '개인이 골방에서 음란물을 볼 자유'를 '자유'로서 논쟁하는 사회인가 말이다. 이런 '쟁점'이 아무데서나 생기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산업화 초기에는 너무도 '엄격'한 사회 분위기가 감돌았다. 장발족을 경찰이 단속할 지경이었으니 이게 웬! 난리였나! 복권과 도박이 성행하면서 '경제적 도덕'의 쟁점이 되는 세상은 확실히 좋은 세상이다. 더 좋은 세상에 이어지는 저자의 글은 아마도 '탄소 배출권 거래'에 관한 논란일 것이다. 왜냐하면, 도대체 지구상에서 '탄소 배출권 거래' 대상이 되는 국가조차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 나쁜 세상
바로 이래서 이제, 어떤 지역이 '좋은 세상'인 지구의 다른 어떤 지역은 여전히 '나쁜 세상'이다. 19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스웨덴은 '나쁜 세상'을 경험했다. 영국에서 석탄 연소후 발생한 오염물질이 북해를 건너 스웨덴에 도달했다. 스웨덴에 강력한 산성비가 내렸고 호수가 온통 산성화되었다. 스웨덴에게 '나쁜 세상'이 영국에게는 '좋은 세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온실 가스 배출권 거래'를 놓고 저자가 제기한 '환경 오염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도덕적 가치'의 차원에서 논란을 벌이는 것은 어떤 나라에게 매우 사치스럽다. 우리에게 제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오염을 시킬 수 있는(!) 공장이라도 좀 주세요!!
유엔 인간환경회의가 열린 1972년에 석탄연소에서 나온 오염물질에 국토가 온통 오염된 스웨덴과 달리, 한국은 이 시점에, 10월 유신을 하면서 동시에, '탄소 오염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포항제철을 건설하던 시점이었다. 당대에 초등학생들은 '뭉클 뭉클' 검은 연기 내뿜는 공장 그림을 자랑스럽게 그렸다! 아니, 스웨덴이 '이래선 아니되옵니다' 하면서 세계적으로 읍소를 위해 회의를 소집한 시점에서, 오염물질 내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니! 이런 불일치가 있는가?
당연히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를 저자가 아무리 '논점'으로 잡고자 해도, 이런 '거래' 대상국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잘 살펴 본다면, 지구상의 선진 산업국가들이다. 그나마 유럽국가들은 예외가 된다. 왜냐하면,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기술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술의 핵심은 해외이전이라던가. 가령 영국은 탄소 배출을 지난 10년간 엄청나게 줄였는데 이유는, 자동차 공업 같은 것을 전부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조선 공업은 일찌기 접은 바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협약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억울하다'고 언제나 방어적이다. 미국은 '난 몰라'하면서 빠지는 포지션이다. 그런다고 아무도 제재하지는 못한다. 한국은 언제나 '우린 개도국에요'하면서 납작 엎드리는 포지션이었다. 물론 환경운동은 '개도국 틀립니다' 선진국 '맞습니다'쪽이지만. 아무튼 경제부처 관료들이 잘(!) 해줬기에 배출권을 많이 따오는 결과를 내오기는했다.
3. 이상한 세상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저자가 말하듯 '누가 환경오염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이다. 이 '주제'는 국제적으로 논의해 볼만 하다. 왜나하면 지구는 실질적으로 '국경'이 사라진 경제 단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중일 3국은 '아시아의 공업단지'라고 할 만하다. 이 특화된' 공단'은 거저 된 것이 아니라 가령 미국의 중동부와 남서부 공업이 '옮겨온' 결과이기도 하다. 텍사스주 곳곳에는 '유물'처럼 석유정제공장이 남아 있는데, 아시아로 옮겨간 것이다. 특히 조선공업의 경우 아주 심하다. 영국에서 시작하여 스웨덴을 거쳐 미국에서 번성하더니 일본으로 왔다가 한국으로 와서 정점을 찍고 중국으로 가는 중 아닌가.
문제는 이 '한중일'의 아시아 공업단지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있다. 전세계 바다위를 떠다니는 배의 10척중 3척이 한국에서 제조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탄소를 많이 배출했다, 문제는, 그 배를, '구매'하여 이익을 내는 나라들이 전세계에 골고루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상한 세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탄소 배출권 하나만 봐도 그러하다. 왜 아시아의 공업지역에서 전세계 수요를 고려한 생산을 하는데, 탄소배출 관련한 '거래권'을 정부에서 구매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 '나라'의 세금으로 일종의 '탄소 배출세'를 내는셈 아닌가. 요컨대 한국의 울산에서 탄소 배출을 많이 한다고, '울산 시청'에 탄소배출 관련 비용을 전부 뒤집어 씌우는 모양이다. 그러면 울산 시청은 당연 항의하겠지! 우리가 언제 울산시만을 위해 정유공업을 한답니까?
그래서 이상한 세상으로 느껴진다. 한두가지 아니다. 미국에서 공립학교에서 이뤄지는 '아침 방송'시간의 '광고'이다. '광고'를 시청시키기 위해 일부러 아침방송을 한다는 느낌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맞아! 학교에 광고를 넣는다는 생각을 왜 못했나'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은 이런 점에서 정말 이상하다. 한국에서 이러면 당장 생난리가 나면서 여론이 죽끓듯 끓을 것이기에.
하지만 한국에서 '정작' 이상한 세상은 따로 있다. 학교에서 상업광고 같은 것을 하면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지만, 가령, '학비'가 연 2천만원인 고등학교가 등장한 것에 대하여는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상업주의는 한국에서 더 극심하다. 원조인 미국이 한국에 오면 울고갈 지경이다. 하바드 등록금이 아무리 비싸도 받은 것보다 더 학생 교육비로 사용한다는 이런 것은 일단 무시하고 보더라도, 한국의 대학들은 '입학 전형료'를 과다하게 받은 나머지, '시장원리'와 '자유'와 '자율'을 신봉하는 정부로부터 '강제'로, 입학전형료 적게 받도록 행정지도를 받았다.
나는 왜 정부가 등록금은 행정지도를 안하는가 의아할 뿐이다. 입시 전형료는 별것 아니다. 소위 말해 껌값이라는 것이다. 왜 한국에서는, '대학'의 등록금이 마냥 치솟는 이런 문제를 '도덕'의 테두리에서 다루지 않을까? 게다가 어째서 국립대 등록금 인상율이 더 높냐 말이다. 나는 몹시 의아하다. 미국에서는 중고교에 '광고방송'이 쉽게 인입하지만 그러하다고, 대학등록금이 일부 사립대학 빼놓고 마냥 치솟게 방치하지도 않는다. 물론 무슨 법인화니 민영화니 이런 것도 없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과 같은 작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 금지법' 위반 관련하여 유럽 업체들과 다투면서 정부의 조사를 받은 바도 있다. 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자유와 자율이지만 미국에서, '독점'과 '부패'에 대하여 엄격하다. 물론 사회경제적 지도층의 책임에도 민감하다. 대학도 '주립대학'은 저렴한 등록금을 유지하여 빈곤계층 자녀들도 다닐 수 있게 한다. 물론 '인상'추세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헌데 한국에서는 가령 등록금 폭등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들에 오히려 덤덤하다. 가령 치의학과 등록금이 수천만원으로 치솟았지만 덤덤하다!? 게다가 치의학 대학원이니 하는데 덤덤하다! 정말 이상한 것이다. 변호사 정원까지 변호사 협회에서 제한하려 드니!
이상한 것이 한국에서 한두가지 아닌데 잘 보면, 대부분 원산지가 미국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당연시되었던 것들이 뒤집어지면서 이상한 사태들이 빚어지고 결국 '도덕'이 문제가 됨을 알 수 있다. 저자가 그것을 일깨운다. 아직 교도소와 군대가 '민영'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맺으며
신자유주의 세상. 높은 생산력 덕분에 풍요롭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은 '마냥' 상승했다. 소수자 인권도 존중한다. 여성의 지위는 아폴로 로켓처럼 고공으로 치솟고 있다!
근데 왜 여자들은 계속 벗는 방향으로 가는 듯 보이는 거야? 한국은 아직도 여성 국회의원들이 보기 힘들다며? 최초 여성 장성이 뉴스에 뜨고 있는 것인가? 정말 나쁘고 이상하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에서 이런 것들을 본다. 여기서 도덕적 문제를 발견한다. '민영'교도소와 '민영' 군대의 탄생 같은 문제들이다. 그 극단은 예의를 '과대 평가된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의 출현일 것이다. 예의도 이제 '헐리우드 액션'으로 넘어 간다는 의미다!!
동양에서 예의의 '예'는 '극기복례'의 그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벤자민 프랭크린 시절에 그러했다. 그가 강조한 '미덕'이 바로 동양적 의미의 '예'였다. 이 고리타분한 '극기복례'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시점인 것인가? 그러기에 신자유주의 세상은 장점이 너무나(!) 많다. 의료가 하도 발달한 나머지 요새 애완견들도 10년은 너끈히 넘게 장수하는 세상이다. 그러기에 단점도 많다. 젊은층 일자리는 생기지 않고, 왜 그렇게, 자영업자는 살기 팍팍한 것인가? 이상한 것은 너무도 넘치고 넘친다. 여성들이 지위향상되었는데 왜 자꾸 벗는 쪽으로 가냐 말이다. 게다가 학생들은 어째서 '2천만원짜리' 자립형 사립고의 등장에 항의하지 않고, '머리길이'만 갖고 선생님들과만 다투려 들까? 인권이 머리길이인가?
결국 머리글로 되돌아간다. 이제 그만 '궁중암투'의 감수성을 버리자고 말이다. 이 작가의 글은 신자유주의라는 '좋은 세상, 나쁜 세상, 이상한 세상'을 도덕적 잣대로 들여다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극기복례'를 가진 동양적 감수성에서 볼때 이상한 것이 많아 보이는데, 한국이 미국보다 더 이상한 것을 많이 가지게 되었으니 부끄럽다. 하루 빨리 궁중암투에서 벗어나 지구 전체를 들여다보는 관점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큰 도움이 되는 책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