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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슬플 거라고 예상은 했었더랬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슬프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준비된 마음을 너무나 간단히 무너뜨렸다. 책을 붙잡은 채로 흐르는 눈물을 숨죽여 닦은 적이 얼마 만이던가. 독서 모임과 서평을 위해 다시 읽을 때마다 속절없이 차오르는 감정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실로 아름다웠다. 달리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여 아름답다고 말하련다. 그날 그 기간 어린 새의 날갯짓처럼 연약하게, 작은 촛불처럼 파르르 떨렸을 이들의 영혼, 그 죽음이 아름다웠다는 말이 아니다. 죽음이 어찌 아름답겠는가.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다만 진정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그들의 삶이었다. 생전의 평범한 일상과 그들이 누리지 못한, 누릴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동호. 동호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중학생의 동호. 짧게 깎은 상고머리에 앳된 얼굴의 동호. 친구 정대를 찾아 상무관에 왔던 동호.
혼자 남은 너는 상무관 출입계단에 걸터앉았다. 검은색 마분지로 앞뒤 표지를 댄 장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 아래로 느껴지는 시멘트 계단이 차가웠다. 체육복 위에 걸친 교련복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단단히 팔짱을 꼈다.
은숙 누나가 쥐여준 카스텔라와 요구르트를 허겁지겁 먹던 동호. 원래대로라면,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중간고사를 봤을 너였다. 그리고 정대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을 너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너는 알고 있다. 앞으로 더 이상 정대와 배드민턴을 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는 정대를 떠올린다.
정적 속에서 너는 정대의 얼굴을 떠올렸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가 꿈틀거리던 모습을 기억한 순간, 불덩어리가 명치를 막은 것같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려고 너는 평소의 정대를 생각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정대를 생각했다. 여태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 자란 정대. 그래서 정미 누나가 빠듯한 형편에도 우유를 배달시켜 먹이는 정대. 정미 누나와 친남매가 맞나 싶게 못생긴 정대.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그런데도 귀염성이 있어서, 그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만으로 누구든 웃겨버리는 정대. 소풍날 장기자랑에선 복어같이 뺨을 부풀리며 디스코를 춰서, 무서운 담임까지 폭소를 터뜨리게 한 정대. 공부보다 돈을 벌고 싶어하는 정대.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는 정대.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정대. 초겨울부터 볼이 빨갛게 트고 손등에 흉한 사마귀가 돋는 정대. 너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칠 때, 제가 무슨 국가 대표라고 스매싱만 하던 정대.
너는 어째서 상무관에 남았던 걸까? 엄마에게 정대를 찾으면 돌아가겠다고 말하던 너인데. 해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다 같이 저녁밥 묵자고 엄마와 약속도 했으면서, 아니 그것보다 사실은 정대가 이미 죽었다는 걸 네 두 눈으로 봤음에도, 어째서 정대를 찾겠다고 말하며 너는 상무관에 남았던 걸까. 넌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정미 누나가 너를 때리면, 너는 얻어맞으며 용서를 빌고, 그 언젠가 정미 누나와 스스로에게 용서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너를 때리며 원망해줄, 언젠가 용서해줄 정미 누나는 이미 없었고, 그리고 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너는 남았던 것일까. 엄마와 약속을 하고도 죽은 정대를 찾아 상무관에. 그해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채.
너에게 카스텔라와 요구르트를 쥐어주던 은숙 누나는 그해 여름을 건너왔다. 하지만 그해 여름을 건너왔다고 하여 전과 같은 일상이 펼쳐질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건너왔건만, 그 날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이후 그녀가 형사에게 맞은 일곱 대의 뺨처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래, 그녀는 너의 마지막을 잊지 못한다.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물었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장전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던 청년 앞으로 그녀는 끼어들었다. 이 애는 중학생이에요. 집에 보내야 돼요.
불현듯 떠오르는 너에 대한 기억은 광장에서 솟구쳐 오르는 분수대의 물 같기도 하다. 그녀는 그 솟구치는 푸른 물길을 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다 잊지도 못하였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벌써 분수대에 허연 물길이 솟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너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를 때리던 형사의 손바닥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 든 여사무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동호야. 너를 비롯한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한발 나아갈 수 있었다. 희생. 아니다, 너를 포함한 이들의 죽음을 희생이라고 말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나.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네가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것일까. 그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진수 형에 대해 증언하던 그 사람이 말하듯 나도 잘 모르겠다. 너의 중간고사보다, 정대와의 배드민턴 한판보다 중요한 것이었을까.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어쩌끄나, 젖을 뗄 적에 너는 손톱이 종이맨이로 얇아질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는디.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고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방이 좋아. 암것도 아닌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여름밤 마당 평상에서 느이 아부지하고 삼형제하고 같이 수박을 먹을 적에. 입가에 묻은 끈끈하고 다디단 수박물을 네가 혀로 더듬어 핥을 적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너를 언제고 기억하는 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가 느끼는 것은 가슴 저릿한 슬픔이다. 우리가 그토록 긴 시공간을 떨어져 있건만, 네가 지나오지 못한 그해 여름에 누렸을지도 모르는 삶과 결과적으로 네 어머니가 느끼는 슬픔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이 되어 우리 마음을 적신다. 그래, 정말이지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안 됐었다. 그런 끔찍한 일은, 네가 당한 그 고통은 정말 언제고 온몸을 다해 반대해야 할 그런 것이다. 나는 다만 그런 고통에 반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여름날의 중간고사, 배드민턴 한판, 늘어지는 낮잠, 이런 것들이 무사히 여름을 지나올 수 있도록.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진실이 묻혔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5.18 민주화 운동은 더 이상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손쉽게 해당 사건의 참혹함과 규모, 과정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년이 온다』는 마음을 울립니다. 미리 찾아보고, 마음을 먹어도, 그래도 마음을 울립니다.
어째서일까요?
그 사건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세세히 묘사해서일까요? 그들이 겪은 폭력, 고문 등을 이전의 다른 작품보다 잘 표현해서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울리는 것은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등을 비롯한 평범한 이들의 삶이 정말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이 특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은 우리의 삶과 다를 게 없었죠. 그러나 그 다를 것 없는 삶이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는 것, 그러한 삶이 그해 여름을 지나오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 우리와 다를 것 없던 평범한 삶이 그렇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립니다.
인간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반복적으로 티비에서 생중계되는 다른 나라의 고난에 채널을 돌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든 타인의 고통을 접할 수 있지만, 객관적이고 거리가 느껴지는 화면 속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이지 나의 고통이 아니니까요. 그러한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무언가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지는 고통은 위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아니죠. 지금도 우리 곁에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 고통입니다. 위치뿐만 아닙니다. 책을 읽노라면 이들의 삶에 거리를 두기 힘듭니다. 때로는 1인칭으로 때로는 2인칭으로 책을 읽는 독자는 그들의 삶에 밀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그들이 겪은 고통은 우리의 고통으로, 그들만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되는 것이죠. ‘개인적 서사로 보여주는 고통의 무게’는 어찌나 무거운지요. 고발하는 글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증언하는 글. 스스로도 집필하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던 한강 작가. 큰 소음,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작은 목소리, 그 가냘픈 숨결에 집중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작가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해 여름은 건너오지 못한 이들의 아름다웠던, 아름다웠을 삶에 조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