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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ㅣ 마카롱 에디션
생텍쥐페리 지음, 허희정 옮김, 윌리엄 리스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삶을 계속하게 하는 것일까요? 잠시 생각해보세요. 어떤 대답이 떠오르시나요? 그야말로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요. 사랑. 아름다움. 행복. 쾌락. 어떠신가요? 이 중에 있을까요? 혹은 다른 답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삶이 가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어느 하나에 온몸의 끝자락까지는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고,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게는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을 뿐입니다. 어쩌면 제가 삶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여기 한 의견을 소개하려 합니다. 어느 조종사의 의견이지요. 그는 갖은 비행의 경험과 사막 한복판에 떨어져 조난을 당했던 경험을 생생히 전합니다. 그로부터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제가 비록 그의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말은 분명 가슴에 울리는 바가 있습니다. 그의 꾸며내지 않은 열정적이고 순수한 목소리 때문일까요. 가슴 벅차오르는 생의 고백과 통찰.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입니다.
회색빛 파멸 앞에서의 자문
인간의 증오, 우정, 기쁨이라는 위대한 연극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가! 아직도 식지 않은 용암 위에선 듯이 위태롭고, 후일 덮쳐 올 모래와 눈보라에 여전히 위협받는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서 이 영원의 맛을 찾아낸 것일까? 인간의 문명은 부서지기 쉬운 금박에 지나지 않는다. 화산이, 새로운 바다가, 모래바람이 그 금박을 지워 없애 버리니까.
‘우리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 이 외침은 질문이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는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죠. 우리가 쌓아놓은 공든 탑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위시하던 하나의 주된 가치가 무너지고, 수많은 새로운 가치가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가 처참한 폐허였고요. 인간은 회색빛 파멸 앞에서 자문합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제 인간은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희망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 난 왜 이런 순교에 집착하는 것일까?”
자네가 세상에서 평온해지려면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지. 이 세상에서 바위, 얼음, 눈을 지워버리려면 말이야. 그 기적 같은 눈꺼풀을 감자마자 타격도, 추락도, 갈기갈기 찢긴 근육도, 타는 듯한 동상도, 황소처럼 끌고 가야 할 수레보다 무거운 그 삶의 무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테지.
생텍쥐페리의 동료 기요메는 비행 중 안데스산맥에서 조난을 당합니다. 험난한 지역에서의 조난은 지금도 처리하기 어려운 일인데 당시의 조난은 죽음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죠. 냉혹한 추위에서 그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짧았고, 애당초 그는 등산하러 갔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손발을 비롯한 온몸이 얼어붙고, 한 걸음 한 걸음은 고통이었습니다. 구조의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했죠. 눈을 감아 잠에 빠지면 모든 고통이 사라졌을 그 순간에. 기요메는 어째서 사력을 다해 걸었던 걸까요?
자네는 유혹을 견뎠네. 자네는 내게 말했지.
“눈 속에서는 생존 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 이틀, 사흘, 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이렇게 말이야.”
기요메는 죽음의 순간에 아내를 떠올립니다. 아내가 받게 될 보험금을 떠올리죠. 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아내가 보험금을 지급받는 시일이 상당히 느려지게 됨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체가 그나마 잘 보일 수 있는 곳을 향해 기요메는 걷습니다. 아내를 위해, 자신을 믿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납덩어리를 허리띠에 꿰맨 천사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사막의 비행장에서 노예로 잡혀 일하는 바르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생텍쥐페리에게 자신을 탈출시켜달라고 부탁하죠. 그의 끈질긴 부탁은 생텍쥐페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는 모금으로 거금을 모아 바르크인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탈출 시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고향에 갈 수 있도록 적당한 지역에 내려주고, 여비를 지급하죠. 바르크인은 자유를 느낍니다. 이제 그를 구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는 자유롭습니다. 그러던 바르크인은 갑작스레 자신이 받은 여비를 모두 털어 선물을 사고 몰려드는 꼬맹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적지 않은 돈이었음에도 모두 털어 다시 빈털터리가 되죠. 왜일까요? 그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일까요? 그렇지 않겠죠.
하지만 그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유로 인해 그는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던 끈이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지나갔고 바르크는 아이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방긋 웃었다. 그 아이는 사람들이 아부를 해대는 주인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그저 바르크가 쓰다듬는 연약한 아이, 방긋 미소 짓는 한 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르크를 일깨웠다.
지난날이 노예 생활이었다고 하지만, 당시의 바르크인은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자유의 몸이 되고 낯선 타지에 오니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완전한 타인이 된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씁쓸한 자유. 바르크인은 고독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가 낯선 아이의 볼을 쓰다듬고, 그 아이가 바르크인에게 방긋 웃어주는 순간, 바르크인의 고독은 사라집니다. 낯선 아이의 미소로 바르크인은 그 아이와 연결됨을 느끼죠. 깃털처럼 가벼운 몸을 이끌고 천사가 되어 날아가던 바르크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끌어내려 고된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연결됩니다.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벵가지로 비행하던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땅에 부딪힙니다. 큰 충돌에도 둘은 가까스로 살아남죠. 하지만 진정한 절망은 그들이 살아남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그곳이 사막 한복판이었고, 그들이 가진 것은 포도주 조금과 오렌지 두 개뿐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조난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쯤에서 조난당했는지 알 길이 없었고, 멀리 있는 그들의 동료들 또한 알 리 만무했죠. 더구나 사막 한복판이라니!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걷습니다.
한 번 더, 우리는 깨닫는다. 조난자는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난당한 이들은 바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침묵으로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실수로 인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듯 고통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기요메 역시 안데스산맥에서 돌아오면서 나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자신은 조난자들을 향해 달려갔노라고! 그것이야말로 보편적인 진리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나는 그냥 뻗어버렸을 거야.”
프레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기루와 온갖 환영을 보며, 갈증과 피로로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그들은 기적적으로 한 아랍인을 발견합니다.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요. 이후 생텍쥐페리에게 그 아랍인은 개인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 총체로서 생텍쥐페리에게 다가오죠.
당신은 고귀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마실 물을 줄 권능을 지닌 대영주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내 모든 친구들, 내 모든 적들이 당신을 통해 나에게로 걸어온다. 그러니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극한의 절망을 헤쳐 나온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강력한 ‘유대감’, 생텍쥐페리는 생명을 사랑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늘의 별, 땅의 별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찾으셨나요? 아니면 아직 찾지 못하셨나요? 생텍쥐페리의 대답은 어떠신가요? 칠흑 같은 어둠 속 하늘을 비행하며 보게 되는 반짝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별들. 지상의 별 하나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조종사의 충족감. 어쩌면 같은 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 느껴지시나요?
우리 외부에 있는 공동의 목적에 의해서 형제들과 이어질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