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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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화 변주곡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라는 작가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영미 문학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작가이죠하지만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닙니다오스카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작가입니다에세이동화소설희극 등을 집필했죠개인적으로는 그의 유일한 장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 을 읽어보았네요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책이었습니다.

 

  오스카는 그의 몇 가지 특성으로 인해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먼저 오스카는 사상적으로 유미주의(唯美主義혹은 탐미주의(耽美主義)의 대표 인물입니다. (영어로는 Aestheticism) 다소 쉽지 않은 개념이지만 가능한 간단히 말하자면 예술이 다른 것에 얽히거나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 Art for art's sake'이라는 표어로 압축할 수 있죠그런 오스카이기에 그는 아름다움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그 스스로도 매우 화려한 언변과 외견을 유지하며 사교계를 주름잡았었습니다하지만 그의 다른 특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지요.

 

  오스카는 결혼도 하였고 슬하에 자식도 있었습니다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기도 했죠하지만 오스카는 동성애자였습니다그는 알프레드 더글라스라는 동성 연인을 갖고 있었죠문제는 오스카가 살던 시대였습니다당시 19세기에 동성애는 죄였기 때문이죠오스카의 동성애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고그는 결국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이 재판에서 패소한 오스카는 수감 생활을 해야 했고 동시에 모든 재산도 잃게 됩니다이 당시 오스카가 보낸 편지가 따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할까요언젠가 인연이 된다면 그의 장편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 더 다뤄보고 싶네요.

 

  사실 오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다른 책 때문입니다우연히 중고 서점을 둘러보다 익숙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한 책바로 오늘 소개할 책은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 별에서 온 아이입니다.

 

  『별에서 온 아이는 오스카 와일드가 썼던 단편집 두 권을 묶은 책입니다파트 은 행복한 왕자 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로 그 안에는 행복한 왕자 The Happy Prince',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The Nightingale and the Rose', '자기만 아는 거인 The Selfish Giant', '헌신적인 친구 The Devoted Friend', '비범한 로켓 불꽃 The Remarkable Rocket' 총 5편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그리고 파트 는 석류나무 집 A House of Pomegranates으로 어린 왕 The Young King’, ‘공주의 생일 The Birthday of the Infanta’, ‘어부와 그의 영혼 The Fisherman and his Soul’, ‘별에서 온 아이 The Star-Child’ 총 4편의 이야기가 들어있죠.

 

  혹시나 목록을 보고 어라?’하시는 분이 있으실까요개중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품이 하나 섞여있는 것 같지 않나요저 역시도 우연히 책을 구매 후 읽고 나서 알았네요바로 행복한 왕자’ 이야기죠보석과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는 왕자가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에게 있는 값진 것들을 불쌍한 이웃에게 나눠주는 이야기죠어린 시절 동화책이든 뭐든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 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신기했네요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더 읽고 싶은 마음에 집었던 별에서 온 아이에서 행복한 왕자를 읽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어찌 보면 작가 이름은 모르지만 대부분 그의 작품 적어도 하나는 읽어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별에서 온 아이가 동화 단편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으실 수도 있겠습니다이미 성인이라면 더욱이 동화라는 장르에 손을 뻗기가 쉽지 않죠뭔가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저 역시도 동화에 쉽게 손을 뻗지 않는 거 보면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가 봅니다하지만 애초에 동화라는 장르임을 모르고 집었던 별에서 온 아이였습니다그래서 어떤 선입견도 없이 책을 펼 수 있었죠그리고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었어요동화라고는 예상도 못했었으니까요그런데 막상 읽다 보니 동화라는 장르 특유의 독특한 시선과 정겨움이 놀라울 정도로 반갑고 재미있었습니다이는 오스카의 독특한 시선과 유려한 문체 덕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동화는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지만은 않습니다읽고 나면 오히려 씁쓸해지거나 기분이 묘해지는 이야기도 있죠혹은 알쏭달쏭 한 이야기까지 있습니다마치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어린이 영화에서 예상치 못하게 울컥하게 되는 그런 경우랄까요제게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이 그랬습니다공감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오스카 와일드가 그의 아이를 매우 사랑했다는 이야기처럼 별에서 온 아이에는 아이들만의 독특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당시의 대다수 교훈조 동화들과 다른 위치에 서있다고 할까요게다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듯합니다어떤 이야기를 제시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여주고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화별에서 온 아이가 성인인 제게도 거부감 없이 그리고 의미 있게 읽힌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때로는 자신에게도 동화를 들려줘 보는 것은 어떨까요은연중에 외면했던 것에서 뜻밖의 재미와 감동을 그리고 의미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오스카 와일드 별에서 온 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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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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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격 외 소년 둘 과 소녀 하나, 그리고 삽살개 한 마리


  최근 읽었던 책 목록을 주욱 살펴봅니다이런저런 책을 읽었네요새로 읽은 책도 있고이미 읽었던 책도 있었습니다그러다 문득 편한 책을 읽고 싶었어요어려운 책은 이미 읽고 있고심각한 책도 이미 읽었으니까요그래서 집은 책이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였습니다작가는 얼마 전에도 소개했던 이치카와 다쿠지입니다온 세상이 비라면은 조금 어두운 색채가 짙지만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전혀 다릅니다그야말로 재미있는 이치카와 월드랄까요읽으면서 웃게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2007년에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일본 유명 여배우 나가사와 마사미(長澤まさみ)’가 주연을 맡았죠영화 역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하지만 언제나 책을 더 추천하고 싶네요표현 하나하나가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거든요첫 페이지부터 그렇습니다.

 

  그는 지독히 특이한 아이였다.

  마치 절멸의 길을 더듬어간 도도새의 마지막 한 마리처럼상실하고만 인간의 미덕일 터인 무언가를 달랑 혼자서 계승하고 있었다몹시 순수하고 그래서 대단히 상처 입기 쉬운우주 로켓으로 지구 둘레를 빙글빙글 돌았던 라이카 개처럼 그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떤가요독특하지 않나요그럴듯하면서도 재치 있고 유니크한 표현들이치카와 다쿠지의 책은 이런 재미들이 가득하답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규격 외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주인공은 크게 셋입니다사토시유지그리고 카린셋 모두 지극히 서툰 인간들이죠이 셋이 어린 시절 서로 친구가 된 것은 그래서겠죠솔직히 말하면 괴짜에 가까운 셋입니다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학급에서 '기타'로 분류될 그런 친구들이요.

 

  독자적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소수파다그들은 두세 명으로 코믠을 형성하는 일도 있지만대게는 단독으로 행동한다그리고 혼자라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만난 두 사람도 바로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나는…… 글쎄나 역시 그 괴짜 그룹에 속해 있었을까?

 

사토시는 물속 세계에 빠져있습니다버들말즘대가래물별이끼물괭이꼬리 등 각종 수초들의 이름을 외우고 채집하죠방과 후면 냇가로 달려가 물속에 얼굴을 박고 있는 아이특이하죠유지는 제 얼굴 크기에 맞지 않는 커다란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그런데 유지는 언제나 쓰레기만을 그립니다셋의 아지트 근처에 널린 쓰레기 산에서 유지는 언제나 쓰레기만을 그립니다그마저도 매우 독특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말이죠.

 

  그곳에 있었던 것은 600cc분의 놀람이었다말하자면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큼쯤 되는 양의 공기를 들이마셨다는 얘기다정말로 후흡 하는 소리가 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이를테면 잘 아는 친구가 여름방학 숙제로 공작을 했어라면서 제가 만든 것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만일 영구기관이거나 했다면역시 그와 똑같은 만큼의 놀람을 느꼈을 것이다.

  예상과 실제의 현저한 괴리그의 그림은 열세 살 소년이 그려낼 만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그는여드름과 막 돋아나기 시작한 음모 때문에 남모르게 고민하는 보통 중학생들보다는 오히려 렘브란트나 루벤스 같은 거장들과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카린도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카린은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머리를 짧게 자르고 언제나 넉넉한 군용 점퍼를 입고 다닙니다아주 더운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말이죠분명 흰 피부에 매우 아름다웠을 카린은 일부러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추듯 행동하지요이유야 나중에 밝혀지지만 역시 특이하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하겠습니다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카린이 트라슈(trash)’라고 이름 붙인 삽살개가 함께입니다트라슈는 언제나 휘유익?’이라고 울지요.

 

  이처럼 셋과 한 삽살개는 뭔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언제 어디서나 쉽게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규격 외로 분류될만한 존재들이죠그리고 그렇기에 셋과 한 삽살개는 더더욱 서로가 각별합니다.

 

  이야기는 사토시가 기억하는 그들의 어린 시절과어른이 된 사토시의 현재를 오갑니다사토시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습니다근사한 열대어 가게 주인이 되었으니까요재미있는 것은 그의 조그마한 아쿠아숍 이름이 트라슈라는 것이지요.

 

<사토시가 그린 가게 상표>

 

  여전히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토시지만이미 다른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긴지 오래입니다어찌어찌 어른이 되어 역시나 마이너하게 살아가면서도 사토시는 사토시니까요.

 

  하지만 인연이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지요먼저 카린을 시작으로 유지까지사토시는 결국 오랜 친구들과 재회합니다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예상치 못한 시기에 말이죠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라니.

 

  “이런 것을 두고 융이라면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라고 할 거야.”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이 인도하셨다고 할 거고.”

  “나라면 잘 만들어진 우연이라고 할 거다실제로 그게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모두는 연결되어 있습니다사토시유지카린뿐만 아니라 사토시의 엄마아버지 그리고 소중한 이들 모두가요이를 확인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 사토시입니다이토록 서툰 인간이 오래 걸려서라도 깨달았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요문득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도대체가 이렇게 나사가 하나 혹은 여러 개 빠진 서툰 존재들이 어떻게 여전히 작게나마 자신의 삶을 꿋꿋이 펼쳐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독특하고 마이너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까지 합니다세상의 풍파 속에서 자신의 독특함을 잃지 않고 끝끝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들사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게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그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주인공들과 그 곁의 존재들은 조금씩 규격 외에 위치해 있지요저 역시 스스로 어느 정도는 사회의 테두리 언저리를 배회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작품을 더욱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은 분명 그렇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사토시를유지를카린을 응원합니다트라슈의 휘유익?’을 듣고 싶어 하고요지독하게도 서툴고 마이너한 그들의 삶이 계속해나갈 수 있도록 작게 마음속으로 빌어봅니다그들이 만든 작고 독특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같이 소소하게 웃어 보이고 싶네요융이라면 싱크로니시티라고 말할 것이고종교를 믿는 이라면 신이 인도했다고 말할 것이고사토시의 아버지라면 잘 만들어진 우연이라고 할 기분 좋은 일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어서 오십쇼아쿠아숍 <트라슈>.”

  “그게 이 가게의 이름인가요?”

  “그래요.”

  “당신은 쓰레기를 팔아요?”

  “그게 아녜요, ‘트라슈라는 건 아름다운 것에 붙이는 이름이죠.”

  “그래요?”

  “그렇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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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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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한 것과 선택할 수도 있었던 것들


  그 언젠가 시간이 많던 시절영어 실력 향상을 도모하고자 원서를 찾던 때가 있었습니다원서를 많이 읽어야 하는 전공이었기에 미리 익숙해지려 했었죠외국인을 만난 경험도 드물고이야기한 적은 더욱 없었기에 영어는 익숙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습니다그래서 주변에 물어물어 쉬운 원서를 추천받았죠그리하여 추천받은 책이 The Giver였습니다국내 번역으로는 기억 전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요.

 

  정말 다행히도 원서는 어렵지 않았습니다어린이 추천 도서라는 말이 아주 적절하게 단어나 문장이 까다롭지 않았지요짧은 이야기였지만 흥미로웠고원서를 읽었다는 뿌듯함을 선사해주었던 책이었습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장르로 구분하자면 디스토피아(dystopia)’ 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스토피아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에 나오는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으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회상을 나타내지요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로는 기억 전달자조지 오웰의 198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등이 있습니다짧은 단편 하나를 추가하자면 기억 전달자와도 유사한 점이 있는 어슐리 르 귄의 The Ones Who Walks Away From Omelas(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가 있겠네요.

 

  『기억 전달자의 첫 부분을 읽다 보면 이게 왜 디스토피아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전혀 어두운 사회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12살 조너스는 부모님과 동생 릴리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부모님은 자애롭고 동생은 쾌활합니다아주 바람직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전형이지요매일 아침저녁 가족들은 모여서 이야기도 합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하는 아침 의식 시간에 대게 조너스는 그다지 말할 것이 없었다조너스는 거의 꿈을 꾸지 않았다때때로 밤사이에 꿈을 꾼 것만 같은 단편적인 느낌들이 떠다니는 채로 잠에서 깬 적도 있기는 했다.

 

  “오늘 저녁에는 누가 먼저 느낌을 얘기할까?”

  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물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서 그날 받은 특별한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서로 소통하는 정다운 가족의 모습처럼 보입니다하지만 보이는 것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이 사회에서는 꿈을 나누는 아침 가족모임과 느낌을 이야기하는 저녁 가족모임이 규칙이라는 것이지요그리고 규칙은 매우 엄격하며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규칙을 준수합니다심지어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꾼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역시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지요.

 

  이상한 점은 점점 드러납니다아이들이 12살이 되는 해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모여 직위 수여식에 참석합니다평생의 직업이 아이들에게 부여되는 날입니다이상하지요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선택되는 것입니다물론 임의의 직업을 마구잡이로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아이들의 성향과 행동을 오랜 기간 면밀히 관찰하여 최적의 직업을 부여하지요이게 가능한 이유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년 신생아는 50명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입니다이 사회에서는 산모도 직업입니다산모는 오직 3명의 아이를 낳게 되어있으며 그 이후에는 육체노동을 하게 됩니다이쯤 되면 눈치채셨을 수도 있겠습니다조너스와 릴리는 부모님이 낳은 자식이 아닙니다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배우자와 아이는 신청을 통해 얻을 수 있고노인들은 모두 노인의 집에서 관리합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도 규칙입니다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규칙입니다예를 들어 굶어 죽겠다라는 표현은 규칙에 어긋납니다이 사회에서는 철저한 관리하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고로 굶어 죽겠다는 표현은 거짓이 되므로 규칙에 어긋난다는 논리이지요.

 

  모든 일이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조너스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되지 않고 나아가 차이마저 언급해서는 안 되는 사회입니다사회 구성원들에게 불만이란 없습니다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요그야말로 행복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는 계기는 조너스가 특별한 직위를 부여받고 나서입니다조너스는 직위 수여식에서 한 시대에 한 명만이 존재하는 기억 보유자의 후계자로 선출되지요. ‘기억 보유자는 엄청난 영예를 얻습니다마을 모두가 존경하는 존재이지요게다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기억 보유자는 특별한 권리를 가집니다조너스가 받은 서류에는 이런 목록들이 있지요.

 

  3. 이 순간부터 당신은 무례함을 금지하는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어떤 주민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5. 이 순간부터 당신은 꿈을 이야기하는 데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7. 당신은 임무 해제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8.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로부터 기억을 하나하나 전달받습니다그리고 조너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지요조너스가 처음 받는 기억은 하늘에서 내리는 의 기억입니다조너스는 처음으로 하얀 눈을 보게 되고추위를 느끼게 되지요이 신기한 첫 경험에 조너스는 행복해합니다그리고 썰매를 타는 기억에서 조너스는 비로소 빨간색을 봅니다이 말이 이해가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말 그대로 이 사회 구성원들은 색을 보지 못합니다색을 보는 이는 오로지 기억 보유자뿐이지요조너스 역시 빨간색을 보기 전까진 친구 피오나의 머리색이 빨간색임을 알지 못했지요색에 대한 기억을 모두 뺏으면서 피부색 혹은 머리색 같은 차이를 없애버린 것이지요점점 이 행복한 사회의 뒤틀린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색깔뿐만이 아닙니다상실의 슬픔가족애극심한 고통 등수많은 기억을 기억 보유자가 홀로 짊어지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대가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은 어떠한 고통도 없이 주어진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요단 한 명만이 모든 짊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회시작에서 말했던 르귄의 The Ones Who Walks Away From Omelas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행복하게 살던 자신의 사회의 이면을 알게 된 조너스는 끔찍한 외로움에 시달립니다아무도 조너스를 이해할 수 없고오로지 홀로 모든 고통을 떠안아야 하니까요어떠한 결격사유장애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조너스와 기억 보유자는 이제 선택하기로 합니다언제나 그들에게 금지되어 있던 선택을요.

 

  자어떤가요행복해 보이던 사회가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이시나요조너스가 사는 사회는 단순히 기억만을 빼앗은 사회가 아닙니다. ‘기억을 뺏음으로써 개인의 선택 역시 빼앗았죠누구도 자신의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자신의 아이를 선택할 수 없고볼 것을느낄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모든 것은 주어질 따름이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그리고 우리는 자유라는 가치를 중시하죠인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락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가능한 많은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죠그리고 자유는 당연히 선택을 포함합니다안전과 잘못된 통일이라는 가치 아래 밟혀진 많은 선택들직위 해제되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그 아이들이 누렸을 수많은 기회들과 삶선택을 짓밟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짓밟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이의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삶을 짓밟는 것입니다.

 

  디스토피아 문학은 단순히 부정적인 사회를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그 진정한 역할은 그를 통해 우리의 사회를 반추하고 위험성과 개선 가능한 지점을 발견하고 나아가는 것이지요기억 전달자에서 조너스는 선택하지 못했었습니다조너스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죠하지만 진실을 마주한 뒤 조너스는 선택했습니다박탈되었던 만족감을 되찾았지요하지만 인간 역사에서 자유의 대가는 가볍지 않았듯 조너스의 선택의 대가도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럼에도되돌아간다고 하여도조너스는 여전히 선택할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이니까요. 선택된 행복, 기억 전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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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비라면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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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이 꺼진 놀이동산이라도 놀이동산이니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평소 일본 문학을 즐겨 읽습니다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아마 학창 시절에 읽었던 다양한 문학 작품 중에 맘에 들었던 것 중에 일본 문학이 있었기 때문일까요물론 다른 문화권의 문학 작품 역시 좋아합니다만어쩐지 일본 문학에는 친근한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작가를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다양한 작가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유명한 작가부터 지금은 작품 제목만 기억나는 작가까지요그래도 혹여나 이름을 물어보신다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츠지 히토나리(辻仁成)’,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등이 있겠습니다일본 문학을 읽어보셨다면 익히 들어보신 혹은 읽어보신 작가들일 수도 있겠네요갑자기 일본 문학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당연히 오늘 소개할 책이 일본 작가의 책이기 때문이겠지요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작가는 아닙니다상단의 작가들만큼 유명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개인적으로 언제나 즐겁게 읽고신간을 내주기를 기다리는 작가 이치카와 다쿠지(市川拓司)’입니다.



  제 생각이 틀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치카와 다쿠지는 그렇게 국내에서 유명한 작가는 아닙니다왜일까요조심스럽게 생각해보건대 최근 국내에 발간된 신간이 없다는 점 때문은 아닐까요마지막 신간이 2009년이었으니까요. ‘이치카와 다쿠지라는 이름을 아는 독자는 많지 않지만사실 알고 보면 많은 분들이 그의 작품을 알고는 있습니다국내에서도 유명하고 여전히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는 영화 <지금만나러 갑니다(いまいにゆきます)>의 원작자이거든요.


  ‘그 영화!’라는 생각이 번뜩 드시는 분들이 있으실까요따뜻하고미소가 지어지는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아리는 작품이지요. ‘이치카와 다쿠지는 많은 책을 쓴 다작’ 작가는 아닙니다하지만 그의 작품은 곧잘 영화화되곤 했지요다른 작품을 예를 든다면 조금 더 반갑게 느끼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널 사랑하고 있어(Heavenly Forest)>는 이치카와 다쿠지의 연애사진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Say Hello For Me)> 역시 이치카와 다쿠지의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원작이지요.

 

  어떤가요이미 읽어본 분도 계실 것이고혹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 터라 원작이 궁금하실 분도 계시겠지요감히 장담컨대 이치카와 다쿠지의 작품은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그의 책은 저 중에는 없습니다사실 읽어본 분도 매우 드문 책이라 생각돼요. ‘이치카와 다쿠지의 단편집 온 세상이 비라면입니다온 세상이 비라면은 세 개의 단편이 묶인 책입니다차례대로 <호박(琥珀)속에>, <온 세상이 비라면>, <순환 불안(循環不安)>이 실려 있습니다.

 

  ‘이치카와 다쿠지는 그가 내보이는 독특한 설정들로 그의 작품들을 이치카와 월드에 속한다고도 이야기하죠재미있는 별칭이 아닐까 싶습니다그리고 그의 최근작들은 이런 이야기에 맞게 정말 독특한 설정들을 가미하여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합니다마치 아주 독특한 놀이동산에서 갖가지 신기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앞선 그의 유명한 작품들을 생각하고 그쯤 비슷한 것을 기대하시고 온 세상이 비라면을 읽는다면 크게 당황할 수 있습니다온 세상이 비라면에 실린 작품들은 그의 초기작으로 아주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최근작과의 엄청난 괴리감에 당혹스러울 정도죠하지만 분명 이 책 역시 이치카와 월드에 속해있습니다독특하고 오리지널한 그의 설정들.


  여기서 세 단편의 모든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혹시나 읽어보고 싶어 하실 분들을 위해서 말이죠하지만 간략한 설정과 발췌 정도라면 괜찮겠죠간질거리는 호기심을 일으킬 정도만 말이지요.

 

  • <호박(琥珀)속에>

  먼저 <호박(琥珀)속에>입니다열일곱 살의 긴다는 같은 반의 후카자와라는 여학생을 좋아합니다사실 긴다만이 아닙니다대부분의 남학생은 후카자와를 좋아하지요마치 하나의 조형물같이 그녀는 아름답고 청초하니까요뭇 남학생들의 밤잠을 설치게 할 만한 여학생입니다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후카자와는 살이 찌기 시작합니다그녀 때문에 밤잠 못 이루던 남학생들을 무너져가는 후카자와를 보며 포기하기 시작하지요하지만 긴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긴다는 그녀 내면의 아름다움을 좋아했으니까요긴다에게는 살이 쪄도 후카자와는 여전히 후카자와였습니다우연한 기회로 같이 하교하게 된 긴다와 후카자와그날 집 근처 공원에서 둘은 키스를 합니다풋풋한 입맞춤이 아닌 조금은 농밀한 키스였지요그렇게 둘은 사귀게 됩니다그리고 숙맥이었던 긴다를 후카자와는 간단히 자신의 침대로 초대합니다그때부터 둘은 서로의 육체를 탐하기 시작하지요매일같이 후카자와의 집을 찾아가는 긴다유달리 쌀쌀한 집이상한 냄새천이 덮인 수조긴다는 자신이 발을 잘못 들였다는 느낌을 받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습니다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지요.

 

  그녀는 항상 그런 식으로밖에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불안에 떨면서 그녀는 항상 찾고 있었다떠나지 말고 내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며 그녀는 그때마다 자신의 몸을 사내들에게 내밀었다그들이 자신에게서 원하는 것은 오직 온기를 지닌 황금률뿐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녀는 알아주었을까내가 원했던 것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저 높은 하늘의 여신상 같은 게 아니라 그 안쪽에 있는 따스한 무언가였다는 것.

  얘후카자와.

  너는 이마를 찡그리는 일 없이 나를 만져주었지너는 나를 마지막까지 싫어하지 않았어너뿐이야그런 식으로 대해준 건그러니까 너를 위해 나도 뭔가 해주고 싶었어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네 곁을 떠나지 않는 것 정도밖에 없었어그래서 네가 이제 됐어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라며 다른 누군가에게로 떠나가는 그날까지 나는 내내 네 곁에 함께 있어줄 생각이었어.

  얘후카자와우리는 서로 사랑했을까?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둡고 눅눅한 장소에서 그 감정은 싹이 트고 아무도 몰래 커나갔어그건 몹시 뒤틀리고 목적도 미래도 갖지 못한 생명이었지만그래도 우리는 있는 힘껏 살았었지분명 앞으로도 이 마음은 계속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죽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어둡고 눅눅한 장소지만 그건 끈질기게 살고 또 살아갈 거야.

 

  • <온 세상이 비라면>

  ‘도가와는 왕따입니다그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수시로 괴롭힘을 받지요한때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지켜주기도 했었지만누나가 졸업한 이후로는 그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괴롭힘은 끝나지 않고마치 운명처럼 도가와를 따라다니지요그래서 도가와는 죽기로 결심합니다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도가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요그리고 그날 도가와는 평소와 다른 석연찮은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지만그의 부모님은 여전히 도가와에게 냉담합니다오직 누나만이 도가와를 진정으로 신경 쓰지요이상한 느낌에 도가와의 누나는 늦은 밤 동생에게 찾아가지만이미 불이 꺼진 방문을 두드리지는 못합니다그리고 자정에 가까운 시각 도가와의 방은 불이 잠깐 켜지고얼마 안 가 다시 불이 꺼집니다도가와는 성공했을까요?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가 말했다.

  “도망?”

  그렇게 묻자그녀는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그래요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도망쳐요그런 식으로 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이라고 나는 말했다.

  “온 세상이 비라면?”

  내 말을 듣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뜻밖에 어린 얼굴이어서 나는 그녀가 동생과 같은 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순환 불안(循環不安)>

  ‘오사무는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합니다그리고 이자와라는 컨설턴트는 오사무에게 이즈카라는 여성을 소개해주었죠비록 이즈카와는 잘 되지 않았지만오사무는 이자와 씨를 아주 좋게 생각합니다그녀가 다음으로 소개해준 아이코’ 씨가 매우 맘에 들었기 때문이죠사실 아이코 씨와도 그저 그렇게 끝날 뻔하였지만우연히 자신이 낸 용기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됩니다아이코 씨와 점점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어느 날이자와 씨가 오사무에게 찾아옵니다난데없이 찾아온 그녀는 오사무에게 이상한 소식을 전합니다.

 

  오사무는 4년간에 걸친 괴로운 나날들을 떠올리고이어서 아이코의 웃는 얼굴을 생각했다.

  이제 잠깐이면 꿈은 이루어진다.

  성공과 사랑그 두 가지를 내 손에 넣기 위해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똑똑히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엿한 한 몫의 사내라면 그것을 해낼 수 있을 터다.

  그렇지?

 

 

  어떤가요조금은 읽어볼 구미가 당기시나요분명 온 세상이 비라면은 이치카와 다쿠지의 최근작들과는 대척점에 있습니다분위기는 어둡고 칙칙하고묘사는 선정적이고 거침없으며소재는 충격적이지요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입니다어쩔 수 없는 이치카와 월드에 속한 작품이지요조금 색다르게 표현하자면 불이 꺼진 이치카와 월드가 아닐까요?


  욕망과 절망죽음그리고 사랑이치카와 다쿠지의 다른 작품을 읽고 맘에 드셨다면온 세상이 비라면』 역시 둘러보심을 추천합니다언제 읽어도 그의 작품은 잘 읽히고 재미있습니다어쩌면 저는 이미 이치카와 월드가 불이 꺼지건 말건 단골손님이 되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그가 어서 새로운 책새로운 놀이기구를 가지고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저는 두말 않고 티켓을 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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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18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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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몰래 팝콘을 뺏어 먹을 수 있다면?


  내 모습이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다들 한 번쯤은 상상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투명 인간이 된다는 상상이요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고내가 무얼 해도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투명 인간나이가 들어서는 투명 인간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어린 시절에는 분명 꿈꿔왔던 상상입니다그때는 투명 인간이 되는 상상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느껴졌어요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상상들이 그렇게 건전한 것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투명 인간이 되어 누군가를 돕거나 하는 상상보다는 몰래 장난을 친다는 등의 짓궂은 상상들을 했었지요. 개중에는 다소 야한 상상들도 있었겠지만뭐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상상 일뿐이니까요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투명 인간 혹은 투명해지게 만드는 기술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세상입니다하지만 아무래도 현실화되기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그러니 여전히 우리는 상상만 해봅니다최근에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광학미채를 사용하는 주인공역을 맡기도 했지요사실 개발된다고 하여도 일상용보다는 군사용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H.G. 웰스의 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입니다작가 H.G. 웰스는 지난번에 다른 작품 타임머신으로 먼저 소개한 바가 있죠역시나 지난 서평에서 말한 것처럼 투명 인간도 타임머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웰스가 살던 시대의 과학기술의 발달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이 작품에서도 투명 인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습니다어떤 실험의 결과로 투명 인간이 되었고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이야기는 한 낯선 남자가 아이핑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여 마차와 말이라는 여인숙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합니다여주인 홀 부인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합니다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에 아이핑에서 숙박하는 손님은 매우 드물고더구나 비싼 숙박료를 흥정 없이 바로 지불했기 때문이죠게다가 들어와서도 눈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벗지도 않고 있었지요.

 

  그는 장갑 낀 손을 등 뒤에서 맞잡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홀 부인은 아직도 그의 어깨 위에 흩뿌려진 눈이 녹아서 카펫에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자와 외투를 부엌에서 뽀송뽀송하게 말려 드릴까요?」 홀 부인이 물었다.

  「아니괜찮소.」 손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홀 부인은 손님의 대답을 들었는지 확실치 않아서질문을 되풀이하려고 했다.

  그때 손님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고 있는 게 더 좋소.」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홀 부인은 그가 곁창이 달린 커다란 푸른색 안경을 쓰고 외투 깃을 덮는 텁수룩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어서 두 볼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완전히 가려진 것을 알아차렸다.

 

  기묘하죠실내에선 당연히 모자와 외투를 벗는 것이 예의이면서 상식이지만이 낯선 남자는 그러지 않으니까요또한 객실에 들어선 이 남자는 햇빛을 극도로 싫어하고가능한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뉘앙스를 내비칩니다게다가 곧 그 남자 앞으로 도착한 수많은 유리병은 이 남자에 대한 소문을 증폭시킵니다넓은 도시에서야 누가 오고 누가 가건 신경도 쓰지 않지만아이핑은 매우 작은 마을이었고앞서 말한 것처럼 이 남자의 여러 면모가 매우 낯설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홀 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이 낯선 남자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이유는 간단합니다그가 돈을 제때에 잘 지불했기 때문입니다비용만 잘 지불한다면 홀 부인은 그가 누구든 방 안에서 뭘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지요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좀 다릅니다마을 주민들이 보기에 이 남자는 매우 비사교적이고특히 꽁꽁 싸매고 다니는 모습은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그러면 자연스레 소문이 돌기 시작하지요먼저 가장 흔한 추리범죄자일 것이라는 의견혹은 피부가 흑백이 어우러진 사람이라는 의견아니면 그냥 이 낯선 사내는 무해한 미치광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소문이 나돕니다물론 대부분의 소문이라는 게 그렇듯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지요이 낯선 남자와 면담을 가진 커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사제관에 달려와 번팅 씨에게 이상한 점을 이야기해도 번팅 씨는 믿지 않습니다그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였으니까요.

 

  「내가 소맷부리를 때렸을 때……분명히 말하지만그건 팔을 때렸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어요그런데 거기에는 팔이 없었단 말입니다팔은커녕 팔의 그림자도 없었다고요!

  번팅 씨는 그 말을 곰곰 생각했다그러고는 미심쩍은 눈으로 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그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해 보였다번팅 씨는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힘주어 말했다정말로 놀라운 이야기예요.

 

  당연히 믿기 힘들지만 이 낯선 남자는 정말 투명 인간이었습니다그리고 그가 투명 인간이라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요이 낯선 남자가 돈이 떨어져 방세를 내지 못하기 전까지요그리고 얼마 안 가 사제관에 도둑이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그리고 돈이 없다던 남자는 갑자기 돈을 지불하지요의심이 갈만한 상황입니다순경이 들이닥치자 낯선 남자는 결국 자신이 투명 인간임을 고백합니다하지만 순순히 끌려가지는 않습니다옷을 죄다 벗어 버리고 투명 인간이 되어 달아나버리죠.

 

남자는 무사히 도망을 쳤지만문제는 그대로 달아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투명 인간의 비밀이 담긴 자신의 비망록이 그대로 숙소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죠다른 것은 몰라도 비망록만큼은 확보해야 했습니다일단 상황이 진정되도록 도망친 투명 인간은 2.5킬로미터쯤 떨어진 도랑에 있는 마블이라는 사람을 발견하고이 사람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멈추었어나는 말했지. <여기에 나처럼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가 있구나이자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서서 너에게 다가갔어그리고…….

  「맙소사하지만 나는 지금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어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는데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지투명 인간!

  「옷과 거처를 구해야 하는데그걸 도와주었으면 좋겠어그리고 다른 물건들도내 물건들은 아주 먼 곳에 놔두고 왔거든네가 도와주지 않겠다면…… 좋아하지만 도와줄 거야도와주어야 돼!

 

  거의 협박입니다투명 인간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마블 씨에게 해코지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이러니 일이 매끄럽게 흘러갈 리가 없죠처음에 마블 씨는 두려움에 투명 인간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만언제나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그리고 결국 투명 인간을 따돌리고 순경들에게 도움을 구하죠이에 투명 인간은 격분합니다마블 씨가 자신의 소중한 비망록까지 들고 갔으니까요그리고 투명 인간은 마블 씨를 좇는 동안 순경들과 부딪히고 부상을 당합니다아무리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맨몸인 투명 인간이 여러 명을 상대하여 무사할 수는 없었죠.

 

  투명 인간은 몰래 어떤 집에 들어갑니다상처를 치료하고먹고 잘 곳을 구하기 위해서였죠우연히도 이 집은 켐프 박사의 집으로켐프와 투명 인간은 대학 동문이었습니다그리하여 투명 인간은 자신의 정체를 켐프에게 밝힙니다다소 거친 방법이지만요.

 

  「소리 지르면 얼굴을 때리겠어.」 투명 인간이 박사의 입에서 시트를 빼내면서 말했다나는 투명 인간이야어리석은 장난도 아니고 마술도 아니야나는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란 말이야그리고 자네 도움이 필요해자네를 해치고 싶지는 않지만자네가 미친 촌뜨기처럼 나오면 해칠 수밖에 없어나를 기억하지 못하겠나켐프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그리핀을?

 

  투명 인간의 이름은 그리핀입니다그는 빛에 매료되었었고투명 인간에 대한 연구를 했었죠그리핀은 켐프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어떻게 연구를 했었고어쩌다가 자신이 투명 인간이 되고 말았는지그리고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켐프는 처음에 그리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의 침실을 내어줍니다그리고 그리핀의 이야기를 들어주죠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관입니다그리핀이 저지른 일들은 방화강도도둑질 등이었으니까요.

 

  「그놈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는 중얼거렸다기사를 보면 분노가 광기로 악화되는 것 같아놈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무슨 짓을 저지를지그런데 그놈이 지금 위층에 있어공기처럼 자유롭게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배신행위가 될까예를 들어 내가……아니야.

 

  그리핀의 행동과 그 안에 담긴 광기를 보며 켐프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이후 켐프의 선택으로 그리핀은 극심한 분노에 휩싸이고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켐프의 선택이 너무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그리핀이 이후에 하는 말들을 보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인이야켐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인이라고?」 켐프가 되풀이했다이봐그리핀나는 자네의 계획을 듣고 있을 뿐동의하는 건 아니야그 점을 명심하게그런데 왜 살인을 해야 하지?

  「악의적이고 무자비한 살인이 아니라현명하고 신중한 살해일세문제는 투명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거야그리고 그 투명 인간은 지금 <공포 정치>를 확립해야 해그래물론 깜짝 놀랄만한 일이지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공포 정치투명 인간은 버독 같은 도시를 점령해서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지배해야 돼그리고 명령을 내려야 해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지종이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 넣기만 해도 충분할 거야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야 해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보호하려 하는 자도 모조리 죽여야 해.

 

  자이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갈까요결말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혹여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항상 무의식적으로 투명 인간이 된다는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고 생각했었어요하지만 웰스의 투명 인간을 읽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투명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외로운지 그리핀의 이야기는 몸서리를 치게 만듭니다가만 생각해보면 투명 인간이 돼어 해보고 싶은 일들 대부분은 범죄 가능성이 높네요그런데 어째서 그렇게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분명 제가 악한 인간이기에 그런 것은 아닌데 말이죠이래저래 유쾌하고 행복한 투명 인간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습니다누군가 혹 생각이 나신다면 제게도 조금 귀띔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역시나 투명 인간에서도 웰스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합니다막연한 상상을 그럴듯하게 현실에 적용해보고 생각해보게 만들지요물론 투명 인간에 대해 다르게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그리핀은 확실히 너무 성질이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면모가 있지요다른 과정다른 결말이 있을 수도 있겠죠그래도 이렇게 한번 가정해본다는 것그 자체가 흥미롭습니다여러분이 투명 인간이 된다면 어떨까요재미있을까요아니면 정말 힘들까요잠깐 한번 상상해보세요뜬금없지만 이런 상상을 서로 나눠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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