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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에 읽은 책은 아이리스 장이 쓴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뻔할 것 같지만, “영어로 쓰여진 난징대학살에 대한 훌륭한 첫 번째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는 책으로 출간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이 책이 나오자 아이리스 장에게 협박전화와 메일 등을 보냈고, 우익세력들의 반발로 일본에서는 이 책이 출판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에 대한 비판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이리스 장은 2004년 숨진 채로 발견됐는데, 일본 우익세력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배경을 대략 알고 있었기에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난징대학살(아이리스 장은 이 책에서 ‘난징의 강간’이란 표현을 사용한다)에 대해 들은 적은 있지만, 이토록 끔찍한 일인 줄은 몰랐다. 히틀러는 몇 년간에 걸쳐 유대인 6백만 명을 살해했지만, 일본군은 난징에서 6주간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중국의 한 도시인 난징의 사상자 수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전역의 사상자 수를 능가한다.
그 끔찍한 대학살 가운데서도 고통 받는 중국인들을 구하려 애쓴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특히 욘 라베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아이리스 장은 욘 라베에 대해 “난징 시민들 사이에서 그는 영웅이었고, ‘난징의 살아 있는 부처’였으며, 수십만 명의 중국인을 구한 국제안전지대의 전설적인 지도자”라고 소개하는데, 욘 라베는 난징의 나치 지부 대표기도 했다. 욘 라베의 손녀 우르술라 라인하르트는 ‘욘 라베가 나치를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으로 생각했다’고 말하는데,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1937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이기도 하고, 나치가 사회주의를 모방한 면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역설적이긴 하다.
재미있게도 욘 라베가 나치 소속이라는 사실이 중국인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걸로 보인다. 난징 YMCA 간사였던 조지 피치는 “라베의 나치 완장을 들어대거나 나치 훈장을 가리키면서 이게 뭔지 아느냐고 물으면 언제든지 효력을 발휘했다”고 기록했다.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 내 논란을 다룬 마지막장도 흥미로웠다.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롯해 난징대학살을 부정하거나 학살 규모를 축소하려 했던 수많은 일본 우익인사, 호라 토미오-혼다 가츠이치가 이끄는 ‘학살파’와 스즈키 아키라, 다나카 마사키가 이끄는 ‘허구파’ 사이의 논쟁, 난징대학살을 참회하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사람들이 경험한 협박과 테러 등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게 됐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일본의 군국주의 등 난징대학살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고, 관점이 새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분명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