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사람의 십 년
펑지차이 지음, 박현숙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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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과 기사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작 그게 뭔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일으켰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쓴 펑지차이는 자신이 문화대혁명 피해자로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수백 명을 인터뷰해 그 중 29편을 묶어 이 책을 썼다. 한국어판에는 17편이 실렸다. 


여기 묶인 이야기는 한편 한편이 한권의 소설 이상으로 파란만장하고, 문화대혁명이 사람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한다. 문화대혁명 피해자들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용이 많이 겹칠 만도 한데, 나름대로 안 겹치도록 신경썼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이 책을 봐도 여전히, 아니, 보면 더욱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왜 저질렀을까?'하는 의문이 커진다. 뒤에 연보가 실려있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건의 인과관계와 문화대혁명에서 인물들이 맡은 역할을 알기 어렵다. 물론 이 책 자체가 이론서는 아니지만, 문화대혁명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평가를 짧게라도 실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아쉬운 건, 문화대혁명에 대한 관점 자체는 새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새로운 관점을 위해 사실을 희생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알던 이야기를 다시 듣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역사학자는 비극의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는 반면, 문학가는 비극을 겪은 사람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는다.-9쪽

파시스트 폭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체를 남겼다면, 문혁이 남긴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겹겹의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무수한 영혼들이다.-10쪽

숭배는 자신을 다 퍼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감정입니다. 그가 그것을 마음대로 버리거나 읽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당신은 빈껍데기만 남게 되고 그것으로 끝일 거예요.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요.-31쪽

그렇게 나는 다시 그를 만나기로 결정했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결혼식은 1967년 12월 1일에 올렸어요. 우리의 신혼 첫날밤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어요. 우리 두 사람은 밤새도록 서로 껴안은 채 통곡을 했더랍니다.-46쪽

그 당시까지 나는 손톱만큼도 고민하지 않았어요. 문혁 초기에 우리는 나이 많은 교사 한 명에 대해 비판 투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교장이었는데 반우파 투쟁 당시 우파로 분류되어 학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문제를 자백하라고 강요하면서, 짓궂은 친구 몇몇이 마늘을 한 주먹씩 계속 먹게 했답니다. 교사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구두약을 섞어서 같이 먹으라 했고, 흙탕물을 적신 포도 잎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그때 우리는 사람을 박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영웅적이고 정의로우며 혁명적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의식이 그랬어요.-76쪽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붕에서 두들겨 맞는 시간은 대부분 깊은 밤이었어요. 횃불을 든 홍위병들이 갑자기 문을 열고 쳐들어와서는 때리려는 사람 머리에 포대 자루를 씌우고 두들겨 패곤 했어요. 아니면 등 뒤에서 뺨을 때렸는데, 그렇게 하면 누가 때리는지 볼 수 없는 거죠. 이렇게 맞다 보면 두 귀가 멍해지고 눈에서 불꽃이 번쩍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어요.
`뒤에서 때리는 것은 우리가 볼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지. 너희는 파시스트보다 못한 놈들이야. 파시스트들은 앞에서 때리거든. 너희는 얼굴을 숨기고 때리지. 겉으로는 당당한 듯해도 사실은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고 있어서 마음에 걸리는 거지. 구호는 하늘을 찌르지만 사람을 때릴 때는 천하의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98~99쪽

인간성에 소멸된 시대에, 인간성을 표현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방식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122쪽

나는 어땠냐고요? 그 거대한 폭풍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다치게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평온합니다. 과거에 좋은 일을 조금 했고, 조국과 인민에게 떳떳하며, 지금도 내 원칙을 끝까지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맡은 직분을 다하고 있고요. 비록 문혁 때 받은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마음 밑바닥에 적당히 묻어 둘 수 있습니다. 국가가 내게 어떤 분부를 내리든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국가가 부르기만 한다면 말이죠.-140쪽

하지만 역사는 늘 유명한 사람들을 편애하지요. 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민중과 울분을 참고 있는 수많은 대중을 만나고 싶었습니다.-371쪽

그때부터 나는 몰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운명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사형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명과 지명을 모두 외국 이름으로 바꾸고, 시대 배경도 20세기로 바꿨으며 토마스 만, 알렉산데르 쿠프린, 앙드레 지드, 존 스타인벡 같은 외국 작가의 이름을 써 넣었다. 발각되면, 예전에 외국 소설을 베껴 쓴 것이라고 둘러댈 참이었다. 그리고 숨기기 편하게 작은 종잇조각들에 나눠서 썼다. 다 쓰고 난 다음에는 바로 땅에 파묻거나, 벽돌 밑 혹은 벽 틈이나 화분 안, 솜이불 사이에 숨겼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강력 풀로 붙인 다음, 겉에 마오 주석의 어록이나 문혁 포스터 등에 붙여 벽에 걸어 놓았다. 나는 온갖 궁리를 짜내어 그 대역무도하고 `반동적이기 그지없는` 글들을 숨겼다. 하지만 물건을 숨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숨기는 방법과 장소가 교묘하고 은밀할수록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게 된다.-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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