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관계, 그리고 행복
최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나가 결혼한 뒤에도 한동안 같이 살았다. 불과 몇 달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남편이 외국에 있어서 혼자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누나가 대학원까지 다니니 감당이 안 됐다. 야근을 못 하니 집까지 일거리를 들고 갔고, 일하다가도 조카의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은 뒤에는 씻기고, 조카가 울면 달래줘야 했다. 당연히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누나는 자기 욕심 때문에 조카를 제대로 못 돌보는 것이 아닌지, 차라리 대학원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웠다. 누나가 아이를 위해 자기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희생하는 것 같아, 자기 잘못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많은 것을 희생할 자신이 없었고, 그래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읽으며 한동안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때론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 책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여성 18명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그런 삶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아이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아이 없는 삶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보다 넓은 범주의 이야기-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정상이니 보통이니 하는 범주 밖에도 다양한 삶이 있고, 그 모든 삶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다 보면 흔들리고 불안할 때가 있겠지만, 남들이 얻지 못한 즐거움과 의미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때 지나치게 움츠러들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선택하면 된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이 책을 읽으시길.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신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와 조언이 이 책에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생처음 킥복싱 -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난생처음 시리즈 1
황보름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내 인생에서 발차기를 정확한 자세로 잘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그런데도 그냥 잘하고 싶은 거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향해 나아가는 자체가 좋다.”-<난생처음 킥복싱> 178쪽 중에서

 

킥복싱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 뜬금없게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딱히 중요하진 않지만, 잘해도 별로 득이 될 일이 없지만, 그래도 잘하고 싶은 것. 정말 좋아하는 것. 저자에게 그게 발차기(킥복싱)라면 나한테는 노래다.

뭔가를 잘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생업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내 인생에 크게 필요하지도 않은 취미 생활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려면 그 취미를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취미를 위해 그만큼의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게 쉽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랬다. 2년 전에 두 달 전쯤 보컬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다. 그냥 노래를 좋아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려니 만만치 않았다. 언제 숨을 쉬고, 어디서 가성을 써야 하는지를 계속 신경 쓰면서 부르다 보니 노래를 즐길 수가 없었고, 딱히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작 두 달 만에 보컬트레이닝을 그만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후회가 남는다. 이 책의 막바지에 나오는 저자의 친구처럼 당시의 나도 회사에서 일에 관련된 대화가 아니면 말 한마디 안 하고, 무표정으로 일만 하다가 퇴근 후에야 처음 웃을 때가 많았다. 저자의 친구가 체육관에서 웃었다면 나는 음악학원에서 웃었다는 작은 차이가 있지만, 나는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노래 선생님이 가끔 내게 노래를 잘하려면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입꼬리가 내려가 있냐. 회사에서는 웃을 일이 없냐고 물었는데, 실제로 회사에서 웃을 일은 거의 없었다. 웃을 때라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것 정도일까. 노래는 어렵고, 잘 느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그 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시간이었다.

노래도 별로 안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노래방을 함께 간 주변 지인들은 노래가 왜 이렇게 늘었냐. 나도 그 학원 다닐까 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원하던 만큼은 아니어도 노래가, 특히 성량은 확실히 늘었다는 걸 나도 느낀다.

원래 뭔가를 잘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한순간에 눈에 보일 만큼 실력이 급격하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력하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게 된다. 그러니까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단기속성으로 자격증을 따는 일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긴 시간의 기다림과 부단한 버팀이 필요한 일”(225)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모든 일에는 기다림과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견뎌야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모두 그 기다림과 버팀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그 일을 좋아할 때 이야기다. 다시 노래를 배우고 싶은 걸 보면 나는 노래를 그만큼은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취미를 갖는 건 꽤 피곤한 일이고, 때론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시작했다가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감수할 만큼 그 일을 좋아한다면 기꺼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취미는 팍팍한 일상에 자그마한 웃음을 주고, 아주 조금이나마 나 자신이 성장할 기회를 주기도 하니까. 킥복싱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취미를 갖는 건 우리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니까. 그러니까 나도 올해는 다시 노래를 배워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 인생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존철학 35가지
김봉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만화는 어른이 되기 전, 유년기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그때도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고, 학교 공부는 싫었지만, 만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처음에는 원피스, 나루토처럼 남들이 다 보는 만화를 보다가 나중에는 Yahoo, 환수의 성좌같은 다소 마니악한 만화까지 두루 읽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1000년이 도래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시간, 19991231일에서 200011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도 열혈강호를 쌓아놓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직장은 어른이 된 이후의 쉽지 않은 시간을 상징한다. 어른이 된 이후의 시간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거나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일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는 일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지치고, 피곤하고, 짜증 날 때마다 먹고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참았다.


그래서 인생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존철학 35가지라는 부제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내 머릿속에서 만화와 직장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좋아하는 만화의 명대사를 통해 직장인이 가져야 할 생존철학을 말하는 콘셉트가 흥미로웠고, 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불가사의한 소년이나 헬로우 블랙잭같은 만화책을 다루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과 내가 통과해온 시간들을 다시 돌아봤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그게 유독 심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는 만화를 즐겨 읽던 어른이 되기 전의 시간과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된 이후의 시간이 단절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전의 나와 어른이 된 이후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는 없고, 만화를 즐겨 보던 나와 직장을 다니는 나 역시 어딘가 모르게 이어져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직장에서의 삶을 견디기 위해 과거의 나, 과거의 내가 누려야 했던 즐거움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시절의 즐거움이 직장에서의 팍팍함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론, 내가 즐겨 읽던 만화가 직장 생활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유년기의 나를,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만화를 마음껏 그리워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뒤 오래전 내가 좋아했던,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만화책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한국사회를 가리켜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역동적이어서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지고,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모두가 흔들리며 좀처럼 중심을 잡기 힘든 사회. 그 속에서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신념을 견지하는 지식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될 것,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존재한다. 이 책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자주 놓치고 가는 것들,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홍세화 작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 사유와 비판의 날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전작보다 더 깊은 사유와 날카로운 비판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기득권의 생각을 주입하는 교육과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생각의 좌표>보다 예리하고,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의 현실-가난을 엄벌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시적인 아포리아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는 날카롭게 벼린 칼날 같은 사유가 담긴 책.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왼쪽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진보지식인 홍세화 선생님의 책. 오랜만의 신작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