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 인생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존철학 35가지
김봉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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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만화는 어른이 되기 전, 유년기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그때도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고, 학교 공부는 싫었지만, 만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처음에는 원피스, 나루토처럼 남들이 다 보는 만화를 보다가 나중에는 Yahoo, 환수의 성좌같은 다소 마니악한 만화까지 두루 읽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1000년이 도래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시간, 19991231일에서 200011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도 열혈강호를 쌓아놓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직장은 어른이 된 이후의 쉽지 않은 시간을 상징한다. 어른이 된 이후의 시간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거나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일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는 일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지치고, 피곤하고, 짜증 날 때마다 먹고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참았다.


그래서 인생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존철학 35가지라는 부제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내 머릿속에서 만화와 직장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좋아하는 만화의 명대사를 통해 직장인이 가져야 할 생존철학을 말하는 콘셉트가 흥미로웠고, 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불가사의한 소년이나 헬로우 블랙잭같은 만화책을 다루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과 내가 통과해온 시간들을 다시 돌아봤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그게 유독 심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는 만화를 즐겨 읽던 어른이 되기 전의 시간과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된 이후의 시간이 단절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전의 나와 어른이 된 이후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는 없고, 만화를 즐겨 보던 나와 직장을 다니는 나 역시 어딘가 모르게 이어져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직장에서의 삶을 견디기 위해 과거의 나, 과거의 내가 누려야 했던 즐거움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시절의 즐거움이 직장에서의 팍팍함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론, 내가 즐겨 읽던 만화가 직장 생활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유년기의 나를,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만화를 마음껏 그리워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뒤 오래전 내가 좋아했던,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만화책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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