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빈스의 100세 혁명
존 로빈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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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노년의 생활에 대해 고민을 자주 한다. 필자는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고 최근에 아기를 낳았다. 그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쯤 필자는 60살이 된다. 아마도 그 때까지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 부모 세대도 60-70대 임에도 일을 할 수 있음을 감사로 생각하니 필자가 60세에 은퇴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거기다가 필자의 아이는 이 때까지도 공부를 하고 있을 지 모른다.  60대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현대 의술은 인간의 수명을 70-80대로 연장시켰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75세 정도이다. 아마도 필자가 노인이 되는 시기에는 80세 정도까지 연장이 될 것이다.  60세에 일을 그만두고 20년 가까운 세월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있고 현대의 노년기는 삶을 위해 밥벌이를 해야 상황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건강의 노년의 삶은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젋음에 대한 애착과 소비문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고통을 가지게 된다. 인생에 희노애락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언젠가 죽게 된다는 사실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 시작했다. 결코 즐거운 사실이지 않고 심한 경우 견디기 힘든 괴로운 사실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죽음을 제거한 것처럼 살고 있다. 노년의 삶은 사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과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노년의 삶도 자신의 삶에서 제거해 버렸다.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 처럼 산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현대인들이 노년의 삶을 거부하고 노인을 무시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배제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즉, 죽음을 자신의 삶에서 배제하려면 죽음에 다가가는 노년기를 무시하고 외면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결국 노년기를 무시하고 그 가치를 애써 격하시키게 되었다. 반대로 젋음에 대해 종교수준의 찬미와 젋음에 대한 매달림은 서구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거대한 소비문화를 만들었다. 서구 자본주의가 팽창하면 할 수록 젋음은 더욱 숭배되고 심지어 어림에 대한 왜곡된(영계문화 등등...) 시각까지 만들었다.
 
이렇게 점점 노년에 대한 무시는 우리 사회를 매우 위험한 세상으로 만들었다. 노년에 대한 무시는 결국 노인에 대한 잘못된 비난, 무시, 경멸에 이르고 미국같은 초서구적인 사회에는 대부분의 노인이 요양원에 갖혀서 사회과 가족들에게서 격리되어 삶을 마감한다. 


 

생존을 위한 노년의 건강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년의 삶은 세상과 격리되면서 노년기의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과 아울러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한다. 저자가 책의 후반에 잠시 언급했듯이 노인에 대한 무시와 사회적 격리는 노년기의 신체적인 질병을 더욱 가중한다고 본다. 서구 대부분의 노인들이 사회에 분리되어 살지만 소수의 건강한 노인들은 죽기전까지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가족과 교류한다. 이 대조적인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노년의 건강이다. 계속 언급했듯이 노년의 건강은 이전의 정신적 건강에 큰 영향을 받는다. 건강한 노년은 결국 외롭지 않은 노년을 맞을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저자의 책에 전반부를 통해 예로 들어진 오키나오를 비롯한 4곳의 장수촌의 예에서 그곳에서 장수하는 노인들이 죽는날까지 자신의 역활을 하며 구성원들로 부터 존경을 받으며 사는 것이 장수의 주요 요인임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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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킨을 삼촌으로 라빈슨을 아버지로 본 저자는 젋은 나이에 자신의 상속권을 포기하고 보통은 삶을 거부했다. 아버지나 사회가 준 삶을 거부만 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세계적인 프렌차이즈 업체인 베스킨 라빈슨의 경영자가 되어 부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나 가족의 부가 아닌 더 큰 이상을 펼치는 것에 삶을 던졌고 젋은 날의 경제적 궁핍이나 사회의 단절을 보상이라도 받듯 지금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자신의 삶을 모델로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변화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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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피하는 방법



우리가 건강한 노년을 보내려 한다, 다른 모든 요인에 앞서 가족이나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활을 수행할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면 자신의 역활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존재임을 보여야 하며 사회구성원들도 노년에 대한 나쁜 인식에서 벗어나 인생을 관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노인에 대한 나쁜 인식들이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고 우리중 누구도 영원히 살지 못하면 그렇게 되서도 안된다면 죽음과 노화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나의 젋음이 영원할꺼라 믿는 바보가 있다. 하지만 그런 착각은 5년, 10년만 지나도 깨진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이런 왜곡과 과장한 매스미디어가 퍼트리는 마인드 바이러스는 20대 중반만 되어 무기력해지는 연약한 젋은이들을 만들어 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모든 문화가 자기들 중심으로 들어가다가 20대 중반이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지면서 주류 소비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난 자신들 발견하고는 절망하게 된다.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렇듯 남들 하는대로 자본주의가 시키는대로 아무 생각없이 살다보면 30대 이면서도 정신이 죽은 사람이 된다. 아직 살아갈 날이 50년도 가까이 남았는데 남은 인생을 이런 절망과 패배감에 사는 사람이 많아진다. 인류는 전멸할 것이다. 생기가 사라지고 파괴적 성향이 남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당장에 아이크림을 줄이고 햄버거나 콜라를 먹는 횟수를 줄이며 산보를 시작하여 살이 빠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만으로 책을 읽은 수고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다, 하지만 저자가 후반에 주장하 듯이 당장에 보이는 물리적인 변화뿐 아니라 우리는 자신의 삶과 사회 구성원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야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걱정하듯이 죽음이라는 두려운 문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 두려움과 고통을 노년을 보내며 그 노년까지도 두려워 하면 일생을 살 수도 있다. 그런 삶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지만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냥 따라 가는가? 내가 어떻게 그걸 바꾸냐 의심하는가? 삶은 아주 긴 구간을 달리는 마라톤이다. 나의 현재는 나의 과거의 중간합니다. 노년에 행복하려면 자금 부터라도 바꾸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최소한 자신을 바꿀 능력은 있다. 그리고 인지 못하는 사이에 내 주위를 변화시킬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태양 아래서 움직이며 자신의 몸을 돌보도록 해라.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보다 귀한 음식을 먹어라. 식사와 건강관리에 공을 들여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투자를 해라. 늦은 때는 없다. 60대 관절염 환자가 역기 운동을 하면서 지팡이를 버리고 90세 할머니가 자신의 소신을 내보이려고 미대륙을 도보로 횡단하기도 한다. 내 자신이 대단하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런 역량이 숨어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를 살리는 것이다. 또 내가 속한 가족과 확대가족,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 표현을 해라. 그것이 당장에 나에게는 피곤함이 되더라도 그 혜택은 나와 내 가족과 전체사회 구성원이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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