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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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의 셰헤라자데처럼 혹은 시골집 할머니처럼 조근조근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같은 책이다.
한 여름이지만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어야 할 것같은 무시무시한 공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올 것만 같다.
88세대라느니 백조, 백수가 난무하는 청년실업의 시대에 신문방송학과를 막 졸업한 청년 김정우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사로부터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혹시 피라미드 다단계회사가 아닐까 싶을만큼 의심스러운 회사이지만 속는셈치고 찾아간 정우는 괴이한 피라미드 모자를
쓰고 콧수염의 편집장에게 "이름이 뭔가?"하는 질문에 이름을 대답하자마자 "합격!"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정기구독으로만 판매되는 '월간 풍문'의 기자가 된 정우는 과묵한 선배 대호와 함께 귀신이 산다는 목련흉가를 찾아가게된다.
해마다 한 번 모이는 '밤의 이야기꾼'으르 취재하기 위해서이다.



이야기꾼들은 모두 여섯, 하지만 깜깜한 방안에서 서로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짐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여만 한다는 규칙이 있을 뿐이다.
이 기괴한 모임에 이상한 기류를 느낀 정우는 방을 뛰쳐나가려 하지만 묘한 이끌림에 다시 방안으로 찾아든다.

K는 고고학과 출신으로 공무원시험에 낙방을 계속하다가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중학생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에 강사자리를 얻는다.
학원의 접수창구 경리직원인 S와 불륜의 관계가 된 어느 날 S가 사라져버린다.
S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녀의 흔적은 없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간 K는 조금은 맹하다가고 생각했던 아내에게서 환대를 받는다.
고집과 오만을 갑옷처럼 두르고 폭력이라는 무기로 아내를 괴롭히던 K.
아내의 고향에서 전해지는 기괴한 난쟁이의 전설. 이미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던 아내의 믿을 수 없는 복수가 시작된다.

과연 '도플갱어'가 존재할까? 세상 어디엔가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상대를 먼저 죽여야만
살 수 있다는 도플갱어를 만났다는 여자가 정신과병원에 찾아온다.
온 얼굴을 마스크와 모자로 가리고 나타난 여자는 자신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만났다고 주장하는데...
동네의 따분한 정신과의사는 이상하게 이 여자가 마음에 걸린다. 얼마 후 다시 나타난 그녀는 의사의 뒤를 쫓는다.
자신과 똑같은 상대와 닮은 것이 싫어 성형중독에 걸린 여자. 여자의 묘한 이끌림에 찾아간 그녀의 집에서는 방에 갇혀있는 또 다른
여자가 발견되고...정신병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결국은 정신병에 걸려 살인을 저지르는데..

가난했던 사내는 어렵게 장만한 집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사업실패로 날아간 집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한다.
새로 이사온 전업작가의 가족들은 자신의 집을 맴도는 전주인 사내의 존재에 미쳐버릴 지경이 된다.
이제는 남의 집이 되어버린 스위트 홈을 되찾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방법밖에 없다. 과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술주정뱅이아버지를 못견뎌 자살을 선택한 엄마. 폭력을 피해 숨어든 다락방에서만 유일한 안식을 얻는 소녀.
미친놈의 자식이라는 소문에 아무도 소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싸늘한 시선과 무수한 말의 폭력들만
소녀곁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유이한 친구인 삐에로 인형. 소녀는 삐에로의 가르침대로 처음에는 쥐를 고양이를, 개를
잡아다가 다리를 자르고 몸통을 나누는 놀이에 기쁨을 느낀다. 
학교에서도 왕따였던 소녀는 새로 전학온 잘생긴 소년 Y의 등장에 생애 처음 가슴이 설레고 삶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Y역시 누군가를 조종한다는 믿음을 가진 가학자일 뿐이다. 그런 Y의 관심이 사실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소녀는 끔찍한 복수를 시작한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오지의 설상리에서 전해내려오는 저주의 전설.
10년 마다 바쳐야 하는 제물이 된 얼음공주 설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수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이야기도 있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느 폐가에서 '밤의 이야기꾼'들이 모여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엄청난 모임에 충격을 받은 정우는 환멸을 느끼지만 사회를 보던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는 말을 듣는다.
과연 정우의 과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일까.
이미 잊었다고, 아니 잊고 싶었던 아픈 과거가 밝혀진다.

정신과에서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내놓은 것 부터 치료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덜어내지 못하고 고였던 아픔들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어둠의 세상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쓰게 된 정우는 갑자기 사라진 편집장으로부터 또 다른 사건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대호와 정우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늦더위를 가볍게 날리는 무섭고, 으스스하지만 아름답기도 한 '밤의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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