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1997 - 하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유부녀의 비밀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좀 놀아본 언니들의 고백서이다.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비밀을 밝혔지만 아주 많은 부분이 논픽션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청담동 근처에 가면 영동대교 못미쳐 휘황찬란한 호텔과 나이트클럽을 눈길을 끈다. 아주 오래전 신사동이나

역삼동의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이 청담동쪽에 자리를 잡으면서 실제 '줄리아나'란 나이트클럽이 옆에 '보스'와

함께 트렌디한 나이트클럽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92학번 이대생 5명이 줄리아나에 죽순이로 활동(?)하면서 뜨거운 청춘을 불태웠던 시간들을 보내고 17여 년이 흘러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기까지의 각기 다른 색깔의 삶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리아나 오자매의 자전적 소설로 공모전에 출품하여 당선되었던 지연과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 정아, 영문과를 졸업하고 가정주부로 정착한 세화, 광고회사의 에디터로 자리잡은 은영, 그리고 이름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는 황진희.

이렇게 자신의 삶을 포함한 다섯 여자의 삶을 소설속에 다시 등장시키는 기법으로 살려낸 그녀들의 과거는 우리들이

지나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촌 네거리에 자리한 '가을비 우산속'이라는 디스코텍을 드나들던 처녀들은 앞선 오자매들처럼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있고 그녀들 못지 않은 총천연색 사랑을 품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면서 그렇게 늙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몇 번의 사랑이 지나가고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남자를 골라 엄마의 말처럼 남편 밥 얻어먹고 사는게

제일 좋은 팔자라고 믿고 살아왔던 지연은 아주 오래전 공모전에 당선되어 선보인 자신의 소설 '줄리아나 1997'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 초대되고 프로그램 폐지에 따른 뒤풀이에서 자신의 운명을 뒤흔드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잘 나가는 잡지 '트렌디'의 편집장인 진수현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치료차 떠난 일본에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자라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거대출판그룹의 사위가 된 남자이다.

멋지고 매력있는 수현에게 끌린 지현은 다섯 자매중 유일하게 노처녀인 은영은 소개해주려고 나갔던 자리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하게 된다. 그 키스가 수현과 지현을 폭풍속으로 이끈 기폭제가 된 것일까.

아니 책을 덮고 보니 이미 오래전 그 들은 이미 폭풍속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다만 자신들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녀의 유일한 작품인 '줄리아나 1997'에 담긴 글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랑과 태풍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유없이 생긴다. 막기 어렵다. 경로를 예측하기 힘들다. 모든 걸 휩쓸어버린다....'

하긴 그러니까 사랑이지. 제 아무리 거세도 결국 소멸한다....겨우 유통기한이 3년이라던가.

그래도 '하나가 지나가면 또 하나가 온다.'하는 말에 희망을 느껴야하나...아님 상처가 생길까봐 외면해야하나.

 

 

명망있는 법조계에 몸담은 아버지밑에서 태어난 정아는 연기자의 꿈을 접고 사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지만 서울대

법대 출신의 남편과는 섹스리스의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 사시에 합격하지 못한 남편의 열등감은 부부사이에 큰 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엄청난 미인이기도 한 그녀에게 대쉬하는 남자들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이혼도 다른 남자와의 연애도 하지 않는다.

 

 

대학시절 자신의 삶에 철저히 가두려한 남자와 4년내내 연애를 했던 세화는 선을 보고 딱 3번 만난 남자와 전격적으로 결혼을 감행한다.

돈만 많은 집안에 장남인 남편은 여자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다. 하지만 세화는 아들 둘을 낳고 시부모에게 사랑받는 철저한 며느리로

살아간다. 그녀에게 남편은 아이들의 아버지일 뿐, 결혼이란 건 사랑없이도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비록 외롭지만.

 

 

'천하의 황진희'라고 이름 붙은 진희는 가난하고 비루한 어린시절이 싫어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자신을 추앙하는 남자들에게 쉽게

몸을 내어주는 여자였다. 오로지 그 때만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걸레로 소문나기도 했지만 자신의 곁을 지켜준 웨이터 '조용필'을 마음에 받아들여 정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타고난 끼는 어쩌지 못하고

두 어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시크한 자신의 삶을 크게 흔든 남자를 만나 사랑을 꿈꿨지만 결국 헤어지고 술집을 경영한다.

이대나온 여자는 술집내면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가장 굴곡 많은 삶을 사는 인물이다.

꽃이 너무 예쁘면 벌과 나비가 끊이지 않는 법. 그녀의 끼를 잠재우고 평범한 삶으로 이끌어 줄 남자는 정녕 없는 것일까.

 

 

세상에..천연기념물이라고 칭하는 숫처녀로 마흔을 넘긴 은영은 좀 놀아본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싫어 남자 경험이 많은 것처럼 떠벌리곤

했다. 하지만 드디어 진짜 자신의 남자를 만나 일을 치르지만 요염한 진희에게 눈길을 주는 남자 민석을 어떻게 주저앉혀 자신의 남자로

만들지 고민중이다.

 

 

 

'언제 만날지 모를 사람을 그리워하면 슬퍼진다....' -분문중에서-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는 마음이 들어 괴로웠던 기억들이 내게도 많았던 것같다.

 

참으로 통속하다. 어려서 읽었던 연애소설보다 더 화끈하고 읽다 보면 진짜 온몸이 뜨거워진다.부끄 부끄..

마흔에는 연애 못하냐고? 섹스를 못하냐고? 외치는 지연은 양반이다. 쉰을 넘어도 여자는 여자고 사랑은 사랑이다. 암.

대한민국은 불륜이 넘치고 내가 하면 다 로맨스인 그런 시대가 되었다.

내가 지현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다시 찾아온 사랑을 택할텐데...그게 참 쉬운일은 아니지.

유통기한 넉넉한 사랑은 없을까?

 

 

읽는 내내 마이클 잭슨의 팝송이 흘러나왔던 디스코텍(그 때는 나이트클럽이라기 보다 이렇게 불렀다)에서 열심히 몸을 흔들던 나와

친구들이 떠올랐고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던 사랑과 이별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이런 불륜소설이..하며 탄식할 지 모르지만 실제 뒤늦게 시작된 사랑에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봤고 이별혹은 이혼이라는 

결단을 한 경우도 봤기에 절대 남의 일이라고 소설이라고 웃어 넘길 수 없었다.

분명 이 소설속의 이야기들은 절대 허구가 아님을 나는 200% 믿는다. 소설이 아니고 일기라는 것을.

인생은 이렇다. 남의 사랑은 자로 재고 무게를 달 수 도 있지만 내게 온 사랑은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그래도..시들어가는 인생에 이런 사랑쯤 한 번 다시 찾아와주기를 바란다면....너무 응큼한 생각일까.

그렇다면 소설 속에 들어가 지연이가 되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수 밖에. 수현이 품에 안겨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문득 곁에서 늙어가고 있는 남자가 안타깝다. 그 남자도 한 때 내겐 뜨거운 남자였는데 말이다. 동지애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많은

부부들이여 당신의 인생에 있는 '줄리아나'을 깨울지어다. 몸이 좀 푸짐해졌어도 허리가 잘 안돌아가도 마음 속 추억은 늘 푸릇하다면

말이다. 지금은 사라진 디스코텍 '가을비 우산속'에서 젊음을 태우던 청춘들은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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