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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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날씨가 추워진 오늘 하필이면 이 책으로 온 몸이 으슬거린다.

띠지에 나온 저자의 얼굴은 이 소설의 주인공 단아름다운만큼이나 고와 보이거늘 어찌 이리 섬뜩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긴 지금 세상이 소설속에 끔찍한 일들은 비일비재 하니까 충격적이라고 할 것도 없겠다.

살해현장을 청소하는 직업이라니..분명 누군가 하긴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한 번도 실제하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하루에도 몇 건아니 몇 십건씩 살인사건이며 자살사건이 벌어지니 아마도 이런 업체는 한 두군데가 아닐 것이다.

150이 조금 넘는 키에 못생긴 얼굴을 한 이경은 복권당첨에 목숨을 건 아버지의 허무맹랑한 꿈때문에 거덜이 난

집안에 외동딸이다. 그나마 몸마저 허물어져 엄마가 간병인으로 일하는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도 사치스럽다고 여길만큼 한 푼이 아쉬운 이경은 결국

아버지가 하던 특수청소업체에서 피비린내를 지우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끔찍한 피자욱과 역한 냄새에 구토가 올라오는 현장이 이경이 넘어야 하는 더러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이제는 그럭저럭 이력이 붙기도 했다.

 

 

늘씬하고 화려한 외모에 돈 많은 부모를 만나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단아름다운이 초라한 원룸에서 육신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채 발견된다. 값나가는 물건으로만 채워진 원룸을 청소하던 중 이경은 침대밑에 가지런히

모아져있던 스노볼하나를 집어들고 집에 온다.

그 날부터 이경은 희한한 꿈을 꾸게 된다. 곽씨 아저씨 말대로 죽은자의 영혼이 스노볼에 따라 붙은 것일까.

 

아름다운 엄마와 커다란 집에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던 다운이.

'엄마 나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 내가 키작고 못생기고 여자가 되어서 억세게 청소하는 꿈.'

이렇게 이경의 꿈에는 다운이가 다운이의 꿈에는 이경이가 실리면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해괴한 사건이 시작된다. 

 

다운은 염낭거미같은 다운의 엄마에게 자신의 화려한 삶을 위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미 뱃속에 잉태됨으로써 전과자가 될 엄마를 구한 아이였던 다운은 엄마가 죽지 않는 한 염낭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경이 일하는 청소업체의 남 사장은 오래전부터 다운의 엄마를 알고 있었다.

거짓말로 위장된 삶을 살면서 자신의 뼈와 살을 나눈 자식마저도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여인!

 

 

이경은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의 병원비를 위해 힘든 삶을 살면서도 악과 타협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자신의 사주를 공유한 다운은 어여쁜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엄마가 지닌 악이 숨어있었다.

서로의 꿈을 오가며 살인사건과 자살사건을 쫓던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못생기고 가난한 이경과 화려하고 부유한 다운은 지금 자신의 현실이 싫다. 수면제를 이용하든 우유주사를 이용하든

잠에 빠져들고 싶다. 이경은 자신이 살아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다운의 삶이, 다운은 이미 저질러진 자신의 악을 감추기 위해

맛있는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서로가 조금씩 잠식해가며 밝혀지는 비밀은 놀랍기만 하다.

 

무연고 시신이나 살해된 시신을 이용하여 만병통치약을 만들어내는 왕태봉과 고향친구인 남사장간의 공존과 배신.

특히 법을 전공한 사람중에 사기꾼이 많다더니 경찰출신의 남사장은 이 모든 사건에서 전직을 이용하여 악(惡)의 축인

다운의 엄마와 협잡하는 인간이다. 요즘 보도되는 경찰들의 범죄를 보면 권력이 악으로 작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남 사장은 자신의 악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고는 니들이 다 쳤잖아. 돈 몇푼 쥐여주고 살려달랄 땐 언제고, 지금 와서 나만 쓰레기 취급을 하는 거냐고?"

과연 살인을 한 이들이 남 사장보다 더한 쓰레기일까?

 

나도 가끔은 다운이처럼 아름다운 육체를 꿈꾼다. 어쨋든 인간들은 보이는 것만 보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경은 다운의 육체를 빌어 재생된다.

'어디로 가든 나는 쉬지 않고 짝짓기를 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알을 낳으리라 결심했다. 그 것만이 원죄를 잊지않은 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316P

 

글쎄 못생긴 육신을 하고 별볼일 없는 인생을 오랫동안 사는게 나을까

아니면 아름다운 육신을 하고 화려하게 짧고 굵게 살다 가는게 나을까.

이미 다운은 수많은 알을 낳아 번식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육신속에 숨어 우리들을 속이면서.

 

서로의 꿈으로 유형하기 위해 하품을 하던 이경과 다운의 하품은 맛있었다. 그 것만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때로 꿈은 인생을 버티게 하는 마법이다. 하품은 그 길로 들어가는 레드카펫같은 것. 나도 다운의 몸을 빌리고 싶다.

아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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