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체험판)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1
김은섭 지음 / 지식공간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서평]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즐겁게 독서하는 방법 (e-book)

 

 

 내가 재밌게 본 책을, 역시 재밌게 본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같은 책을 본 사람은커녕 애초에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사람마저 드문 일이니 당연하다. 어렸을 때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전날 재밌게 본 TV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듯이 책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나 스태디셀러 혹은 각종 기관에서 선정한 추천 도서나 고전 명작 같은 책들을 의무감으로 억지로 읽으니 대화가 잘 이루어질리 없다. 

 그래도 나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문예창작을 전공 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고 취향이 비슷한 동기나 후배, 선배 등이 소수나마 있다 (문예창작 전공임에도 책을 읽지 않는 학생은 굉장히 많다). 또한 군시절 헌신적인 독서 전도(?) 활동을 통해 독서의 세계로 인도한 몇명의 선후임 신도들이 있기도 하다. 더불어 서평 이벤트를 진행하는 여러 카페와 각종 온라인 서점 등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한 덕분에 온라인상으로나마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확보해놓을 수 있다.

 나처럼 많은 노력을 곁들이고 운이 따라준 경우가 아니라면 어떨까? 주위에 독서를 즐기는 친구가 없다면, 소통을 목적으로 탄생한 책이라는 컨텐츠를 외롭고 고독하게 집어들 수 밖에 없다. 또한 옆에서 응원을 보내고 좋은 책을 권장해주는 스승이 없다면 책 앞에서 그저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게 독서 현실이다. 책 앞에서 어색한 손짓으로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아… 많은 사람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다면….'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은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책과 전혀 인연이 없던 저자가 책과 떨어질 수 없는 단짝이 된 사연. 그것도 모자라 책과 인연을 쌓고 지내던 동생들에게 독서 습관을 들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들을 친절히 알려주며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처럼 독서를 권장하는 책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다. 저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이런 책들을 썼는지 심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에서 한자 한자 고민을 거듭하며 글을 썼으리라.

 

 그 방법들, 그러니까 선전적으로 책과 거리가 멀었던 제가 뒤늦은 나이에 책과 친해질 수 있었던 방법을 이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제 경험과 또한 많은 독서가들의 얘기가 옳다면 이 방법이 여러분을 활자 중독자로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P. 7

 

 많은 사람들이 책과 친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뭐야?" 라고 물어보면 크게 3가지 답변이 돌아온다. 시간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재미가 없어서' 라는 이유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유는 단순히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행동에서 비롯된 이유다. 돈이 없어서 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책의 우선 순위가 높다면 술을 마시거나 옷을 살 돈으로 책을 사게 된다. 

 결국은 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책이 재미없는 이유가 뭘까?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는 단 하나의 에피소드로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자네는 이제부터 1년 동안 책으로 공부하지 말고 놀도록 하게!"

 잉? 책을 보겠다는 제자에게 공부하지 말고 놀라니, 이 무슨 말씀이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교수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젊은 날,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에서 일주일간 머물 기회가 있었다네. 하와이가 어떤 곳인가. 세계적인 휴양지가 아닌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놀러오는 곳이지. 그런데 그들을 관찰하다 보니까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다네. 뭐 같은가?"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바로 책이었다네. 바쁜 일상을 잠시 떠나 고단한 마음을 쉬려고 경치 좋고 풍광 좋은 하와이 리조트까지 와서 하는 일이 서늘한 그늘을 찾아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것이었단 말이네."

 (중략)

  "그들은 과연 공부하기 위해 책을 읽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들에게는 독서가 세상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단 말일세. 그런게 바로 독서라고."

P. 25

 

 아주 정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태껏 책을 억지로 읽었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 입시 논술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전 명작을 붙들고, 남이 읽는 것은 나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베스트셀러를 집기도 한다. 읽고 나서 명백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일부로 어려운 책을 고르기도 한다. 자신에게 맞는 취향과 능력은 일절 고려조차 하지 않은 체.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은 책과 친해지기 위해, 독서 습관을 들이기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 내가 재밌는 책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야구 선수가 꿈인 아이에게 변화구부터 가르치지 말고 캐치볼부터 같이 즐기라는 말이다. 축구 선수가 꿈인 아이에게 무회전 프리킥부터 가르치지 말고 공놀이부터 하라는 말과 같다. 판타지든 무협지든 상관없다. 그저 독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선 자신이 재밌는 책을 읽길 권한다. 

 

 책을 입시 논술의 관문이나 자신을 뽐내기 위한 액세서리로 활용하는 현대인들에게, 독서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책과 전혀 친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사연을 밝히며 누구든지 책과 어울릴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쉬운 방법과 친절한 설명, 재밌는 묘사와 에피소드를 통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만약 당신도 책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이 책부터 집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의 책을 읽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즐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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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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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작지만 소중한 행복한 일상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 씨에게(이하 하루키 씨) 독일의 한 신문사에서 편지가 왔다. 독일에 있는 인기 텔레비전 문예비평 프로그램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다루었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레플러 여사라는 고명한 문학평론가가 "이런 책은 이 프로에서 추방해야 한다.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의 탈을 쓴 패스트푸드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했다. 그러자 여든 살의 사회자가 나서서 하루키 씨를 뜨겁게 변호해주었고, 결국 레플러 여사는 화가 나서 십이 년 동안 지켜온 고정패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무라카미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니까 원래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요, 정말로" 하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고해주고 싶은데.

P. 107

 

 사실 하루키 씨의 소설에 관한 '이런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긴 한다만 나에게 하루키 씨의 소설이란 매우 소중한 존재다. 문예창작과에 처음 입학해서 선배의 추천으로 읽어 본 「해변의 카프카」는 책의 세계로 인도시켜 준 아주아주 고마운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권만으로(상, 하 두 권이었지만) 하루키 씨를 찬양하게 되어 그 선배에게 열렬히 '하루키 세계'를 토론하며 노벨문학상을 언급 했을 때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음… 나도 하루키 소설을 정말 좋아하지만 아마 노벨문학상을 받는 일은 없을 거야." 그때는 그토록 하루키 씨를 찬양하는 선배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실 하루키 씨의 소설은 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고 이제는 조금은 그 뜻을 알 거 같다. 

 

 그런데 그의 에세이의 평가는 어떤가하면, 하루키 씨의 진가는 소설보다 에세이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의 독특하고 기묘한 세계의 본질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사물이나 일상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 아주 같은 생각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의 에세이는 삶의 소중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한 해에 한 번 정도 열리는 전국 고양이 회의에서, "이 혹독한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고양이들도 시스템의 재정비 및 과감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나? 같은 결의가 채택되어, 전국의 네코야마 씨들이 신사 정원의 한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그래, 그래. 그럴지도 몰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을까?

P. 27

 

 놀랍도록 기묘한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에세이,「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주말 예능과 같은 대우를 해주고 싶다. 그저 멍청하니 글을 따라 읽어내려가기만해도 하하, 후후 하는 여러 종류의 기분 전환이 된다. 조금 더 주관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인위적인 느낌이나는 개그 프로그램보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더 아껴보게 된다. 2~3개의 에피소드를 읽고 책을 덮은 뒤, 라랄라하는 발랄한 기분으로 다른 일을 한다. 계속해서 읽으려하면 몸이 견디질 못한다. 마치 일생에 남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소중한 재미를 가불 받아 써버리는 소모적인 느낌마저 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하나씩 꺼내 읽게 되는 복주머니 같은 에세이다. 또한 서점에 '진열된 하루키 씨의 책이 흐트러져 있으면 가지런하게 바로해놓는다' 라고 표현하며 팬을 자처한 오하시 아유미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주는 꺠알 같은 재미도 빠트릴 수 없다.

 

 굵게 만 김밥이란 정말 참 훌륭하다. 여러 가지 재료들이 모두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김밥 양끝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온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P. 75

 

 하루키 씨의 소설이 문학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는 논외로 접어두고, 그는 분명 많은 팬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작가다. 출간하는 책마다 대박을 터트리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간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면, 담배를 같이 피우거나,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그가 쓴 글을 읽어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글에는 반드시 쓴 사람의 채취가 뭍어있기 때문에 솔직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하루키 에세이는 하루키라는 독특하고 기발한 인간을 알기에 아주 좋은 글들임이 틀림없다.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분명 하루키 씨의 에세이도 사랑할 거라 생각한다.

 

 체크아웃하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차 시동을 걸고 (부릉!) 시가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수동변속기는 마치 따뜻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를 때처럼 부드러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아침을 한 다스 고르라 하면 아마 이날 아침이 그중에 들어갈 것이다.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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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알려준 것들 - 일상에서 건져올린 삶의 편린들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정선희 옮김 / M&K(엠앤케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인생이 알려준 것들」재해를 버티는 일상의 힘

 

 

리가 아는 개그우먼 정선희 씨가 번역을 맡은 가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다. 정선희 씨는 옮긴이의 넋두리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지금 이 도시에 차고 넘치는 따스하고 친절한 '힐링 도서'도 아니고, 카리스마 넘치는 '멘토'의 힘찬 메시지와도 거리가 멀다. 

P.12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이, 차고 넘쳐 나에게로 흘러들어 온 힐링 도서, 멘토의 메시지였다면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다. 내 입장을 말해본다면, 힐링과 멘토가 너무 지겹다. 얼마전에는 어느 분야에서나 마치 화장품 샘플을 끼워 넣어주듯 소셜(social)을 어거지로 집어넣더니 요즘엔 힐링과 멘토가 대세다. 이런 현상을 보고있노라면, 인생을 살면서, 마치 비를 맞듯이 어느정도 지니고 있어야 할 상처조차 전부 과도하게 반창고를 붙이는 것 같다. 눈 가리고 아웅하다가 멀쩡하게 성장해야 할 면역 체계를 파괴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어싱 구멍을 상처라 여겨 자꾸 '치유'해 버리면 곤란한 것처럼. 정선희 씨는 번역을 하며 느꼈던 고단함을 '힐링 도서'가 아님에도 가와카미 미에코와 함께 했던 시간 웃고 있었다고 말한다.

 


 

 참, 그건 그렇고 오래전에 티비에서 봤던 개그우먼이 번역을 했다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긴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선희 씨가 일본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보지만, 집에 티비도 없고 라디오도 듣지 않는 나로서는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번역이란 건 그냥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쪽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제 2의 창작이라는 게 정설인 모양이니 실로 어려운 일이라고 봐야겠다. 

 일본어로서 흘러가는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국어의 흐름으로 옮긴다는 일이 보통의 '일본어를 잘한다' 라는 모양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개그우먼 출신의 그녀가 그런 '창조적인 일'을 잘 수행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과 걱정, 그리고 관심과 호기심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 책은 초점이 너무 과도하게 '정선희 씨의 번역'으로 맞춰져 있다.

 


 

 가와카미 미에코 씨는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에다가 가수로서 앨범을 내고, 시집을 통해 문학상을 수상한데다가 영화배우로도 데뷔하여 신인상을 휩쓸었던 엄청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책이라는 구성물 중에서 꽤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뒷표지 부분이 온통 정선희 씨의 번역에 대한 지인들의 감상이라니…. 물건을 사러 갔다가 물건을 파는 누나에게 정신을 빼앗긴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출판사는 출판사 나름대로 정선희 씨의 프로필에 원저자와 번역자가, 삶, 생각, 유머감각, 성찰 등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고 변명을 하며 초점이 흐트러진 이유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책 내용 중 정선희 씨에 대한 어떤 모습도 찾아볼 수 없으니(당연하지만) 그녀들이 닮았는지 아닌지는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이건 아무리봐도, 상대적으로 국내에 인지도가 부족한 가와카미 미에코 씨이기 때문에 정선희 씨의 번역이라는 등에 업히려 했다는 상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뒷표지에 대한 아쉬움은 편집으로도 이어진다. 책 안에는 여기가 바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주는 듯이 글씨 색깔이 바뀌며 밑줄이 쳐진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거슬린다. 문제를 풀기 전에 답안지를 봐버린 느낌이랄까. 추리 소설을 읽다가 범인이 누군지 알만큼의 과도한 힌트가 노출된 정도의 느낌. 

 이런 과도한 친절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주제와 핵심을 찾아나가는 모험적 요소를 뺏어가는 셈이다. 이런 것은 인터넷 소설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일과 다를 게 없다. 만드는 이의 의도대로 작위적인, 글이 아닌 다른 무엇의 작위적인 수단을 첨가하는 것. 그것과 똑같이 거북하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책은 꽤 잘 읽힌다. 취향을 좀 탈 거 같긴 하지만 굉장히 재밌기도 하다. 아마도 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히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인상이 있다. 인생이 알려준 것들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대단하고 거창해 보인다. 어떤 철학적, 문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인가 두둥! 이런 느낌이다. 인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인생의 방점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 영광의 날 같은 손꼽을만한 이벤트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일생에서 맛 본 소소한 에피소드, 거기서 알아 낸 작은 행복감들을 이야기 한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대부분은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알아가고 배우고 느끼는 것 대부분 역시 일상에서 우러나온 것! 과도한 업무나 부담스러운 경제 상황, 거북한 인간관계 등이 마치 재해처럼 다가오는 삶이지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상을 통해 그것을 버티는 힘을 말한다.

 


 

 일상의 이야기는 그렇게 흐르고 흘러 3월의 기억,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에 대해 말하며 절정으로 흐른다. 기승전결이라는 일반적인 구조에 부합하는 4개의 챕터 중 3번째에 위치하고 있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지진이라는 재해의 극악무도함과 일상이라는 평온함을 극명히 대조시키켜 하이라이트에 적합하다. 

 '우리들을 덮치는 느긋한 그 무엇' 이야기에선 지진피해를 겪음으로 걱정할 수 있는 정상성 바이어스1와 게슈탈트의 붕괴현상2을 이야기 한다. 가만히 읽으며 '아, 역시 지진이란 무섭구나. 대륙판이 느긋한 나라에 살아서 다행이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우리의 평소 삶이랑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걸 느꼈다. 

 게슈탈트의 붕괴 현상. 우리 지금 사회도 돈, 돈, 돈이나 성공, 성공, 성공, 스펙, 스펙, 스펙을 대뇌이다가 대상에 대한 정의를 잃어버린 붕괴 사회가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한 판단을 느슨하게 내버려서 당황하지 않는 정상성 바이어스를 느낄정도의 충격적인 사회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지진이라는 큰 재앙을 겪지 않았음에도.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만 일상, 결국 삶'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대재앙에 대한 아픔도, 사회에 대한 아픔도 결국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가와카미 미에코 씨는 아마도 일상으로 되돌아 가려는 사람들의 힘을 느끼고 이런 마무리를 짓지 않았을까. 그녀의 인생이 알려준 것들은, 재해와 같이 닥쳐오는 아픔들과 그것을 버티는 일상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를 추진해온 거대한 엔진 중의 하나는 이러한 영문 모를 수수게끼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싶다. 종교도 과학도 전쟁도 사랑도 철학도, 결국 '생을 유지하는 것=죽음에의 공포, 그것에 대한 해명과 극복'을 원동력으로 날마다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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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물에 대한 판단을 느슨하게 내려버려서 오히려 당황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심리 상태
  2.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대뇌이다 보면 그 대상에 대한 정의를 잃어버리 게 되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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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e’s ILLUSTRATION POSTCARD BOOK - 먼지의 일러스트 엽서 북 munge’s INTERIOR ITEM BOOK series 3
munge(박상희)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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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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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디자인 페이퍼 북 2명
먼지의 아트웍 포스터북 2명
먼지의 일러스트 엽서 북 2명

* 이미지를 포함한 서평이 가능한 분들만 신청해주세요.

 

▶이벤트 기간 : 7월 1일~7월 7일
▶당첨자 발표 : 7월 8일 

▶책을 받으신 분들은 인터넷 서점(알라딘, YES24, 교보문고, 인터파크),
위즈덤카페, 네이버 개인블로그에도 리뷰를 올려야 완료로 봅니다~!


 

 

 

INTERIOR ITEM BOOK series

 


item #1 munge’s DESIGN PAPER BOOK
A2 size (folded in A4 size) | 60 x 45cm | 20 sheets
그래픽 위주의 문양이 아닌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로 패턴을 만들어 제작한 디자인페이퍼입니다.

특히 각기 다른 문양이나 컬러의 디자인페이퍼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고려하여 만든 제품으로 다양하게 조합하여

사용하면 훨씬 더 멋진 결과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item #2 munge’s ARTWORK POSTER BOOK
B4 size | 25.7 x 36.4cm | 16 sheets
집이나 사무실, 작은 카페와 같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밀 수 있는 일러스트 그림 포스터로

 액자에 넣어 작품처럼 전시하여 갤러리 느낌을 살려주거나

포스터 그대로 벽에 붙여 아티스트의 작업실 풍경처럼 연출할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입니다.

 



 

#3 munge’s ILLUSTRATION POSTCARD BOOK
A6 size | 10 x 15cm | 100 sheets
vintage coffee illust 36점과 cafe signs 36점, coffee supplies silhouettes 14점,

 toy cameras 14점, 총 100장으로 구성된 엽서세트입니다.

구성별로 모아 크게 A1 사이즈로 레이아웃하여 소파 위나 벽면에 큰 포스터처럼 연출하거나,

사이드 테이블이나 책상 위 공간에 일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붙여도 멋진 데커레이션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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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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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좋은 글 쓰는 꼼수

 

e-book을 통해 읽은 책입니다. 페이지가 종이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책 제목부터 조그만 꼼수가 들어 있다. 베껴 쓰기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방대하게 담겨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정보가 담겨 있긴 하지만 총 30강 중 단 1강만을 차지한다. 다만 각 장의 끝에 훌륭한 작가들의 글을 실어 베껴 쓰기 교본으로 엮어 놨다. 이는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이라는 제목에 '난 속인 적 없는데?'라고 변명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작은 꼼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베껴 쓰기 교본과 베껴 쓰기에 관한 1개 강의을 제외한 29개 강의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작가가 몇 해 동안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얻은 노하우를 적어 놓았다. 1강을 볼까? 1강의 주제는 행갈이와 들여쓰기의 중요성이다. 이것만 해도 확연히 숨통이 트이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어쩐지 꼼수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합법적인 꼼수는 살아가며 편의를 주는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특히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한두 가지의 꼼수가 '승리'를 챙기기 위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확실한 효과가 있는 꼼수를 내 지식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 때, 그건 곧 노하우가 된다.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은 치밀한 이론이나 단단한 원칙보다는 쉽고 재밌게 활용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을 말한다.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먼저 줄 바꾸기를 해야 한다.

 '속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대한 원칙을 배우고 글을 더 잘 쓸 수 있다는 선전 문구에 속아 책을 집어 들고 보니 처음하는 이야기가 줄 바꾸기를 해라? 차라리 좋은 필기구를 사라구 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 (중략) 

 글쓰기의 기본은?  '예쁘게 쓰기'다. 글씨를 예쁘게 쓰라는 말이 아니다. 문장의 처음 칸은 비우고, 세 줄이 넘어가면 되도록 줄 바꾸기를 하라. 의미에 따른 줄 바꾸기가 아닌, 길이에 따른 줄 바꾸기를 하란 말이다. (중략)

 우리가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일까? 우리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닐까? 우리 글을 읽어 줄 사람을 위해 쓰는 것 아닐까? (중략)

 줄을 바꾸는 것도, 문장의 첫 칸을 비우는 것도, 모두 읽을 사람을 위해서다. 형태를 바꿔주면 읽기 훨씬 편하다. 

P. 16

 

 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베껴 쓰기 교본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반을 버리는 것과 같다. 베껴 쓰기는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독서의 유산이다. 한자 한자 모든 역량을 쏟아 기록한 책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과정은 글을 쓰는 사람의 필수 코스가 됐다. 책에선 직접 손으로 노트에 베끼는 수작업을 강조했다. 반드시 '손'으로 해야 하나?

 예전이야 타자가 발명되지 않았고, 발명된 후에도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은 직접 원고지에 글을 쓰곤 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 웬만한 기성 작가들조차 컴퓨터를 통해 저술 활동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호흡과 리듬을 읽는 과정을 컴퓨터로 하는 게 맞는 일 아닐가? 굳이 힘들여 수작업으로 베껴 써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베껴쓰기에 관해 항상 품고 있었던 의문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꽤 많을걸? 이런 의문은 아래의 인용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소설가이면서 영문학 교수인 스티븐 골드베리는 <글쓰기 로드맵>에서 말했다.

  "즐겨읽는 책에서 두 쪽을 필사해보라. 먼저 펜으로 옮겨 쓴 다음 컴퓨터 키보드로 입력해보라. 베껴 쓰기는 천천히 한다. 구두점 하나까지 원본 그대로 베껴야 한다. 이 연습의 목적은 저자가 의도한 정신적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데 있다. 글쓰기를 음악으로 생각한다면 그리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교향곡을 직접 작곡하는 게 아니라 대가의 작품을 음표 하나하나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다. 이런 기계적 학습은 세포에 기억을 심으려고 암호를 각인하는 것과 같다. 한 번 베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다면 계속해 보는 것도 좋다. 여러 작가와 여러 장르의 글을 베껴 보라. 

 사람들은 '나도 J. K. 롤링1처럼 쓰고 싶다'고 말한다. 롤링처럼 쓰고 싶다면 먼저 롤링의 글을 베껴라. 마법처럼 당신 앞에 문이 열릴 것이다.

P. 43

 

 글쓰기에 지름길은 없다고 하지만 어느정도의 쉬운길, 효과적인 길은 베껴 쓰기로 알려져 있다. 그 이상의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조언으로 도달할 수 없는, 혼자서 가야만 하는 경지가 아닐까? 그 경지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그래. 이제 베껴 쓰기 좋은 글도 얻었다. 베껴 쓸 노트도 충분하다. 몇 가지 노하우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치 가장 중요한 절정이 후반부에 나오듯,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의 후반부의 내용에서 작가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역량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작가는 꾸준해야 하고 일상적인 인내심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베껴 쓰고 밥 먹듯이 메모해야 한다. 놓치기 쉬운 기본적인 요소들을 일상적으로 행해야 한다.

 

 기업사 전문작가 유귀훈은 그의 저서 <유귀훈의 기록노트>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글쓰기의 재료는 무엇일까? 우리의 경험과 생각이다. 생각은 매일 오전 11시에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떠오른다. 이때 스쳐가는 생각을 잡는 법은 단 하나, 적어놓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적어 놓기 전까지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메모해라. 메모를 모아야 기록이 되고 기록이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된다. 스콧 피츠 제럴드, 앤 라모트, 조지프 헬러 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늘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놓기 위해서다. 아이디어는 적어놓지 않으면 3분 뒤에 도망간다.

P. 288

 

 '시'라는 특수한 장르를 제외하고는(쓸 생각도 없다) 전부 해댱되는 기본 원칙이다(물론 시인들도 항상 열심히 공부하지만 다른 작가들에 비해 나태한듯한 이미지는 나만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특출난 재능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다. 거북이처럼 단단한 노력이 작가를 만든다.

 며칠 전 다녀왔던 국제도서전에서 보았던 조경란 작가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할 것'이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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