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의식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 틈새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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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의식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뇌의 활동인가, 아니면 뇌를 넘어서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자들만의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현대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되고 있다. 이번에 대담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에 관해 분석하고 깊은 고민을 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후안 호세 미야스와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공저의 <사피엔스의 의식>이었다. 지극히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우리의 두개골 안에 위치한 뇌는 실로 놀라운 기관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아 개념, 기억, 감정, 그리고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것까지 생성한다. 그러나 뇌 자체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신경과학자들이 종종 언급하듯, 뇌는 '검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오직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만을 해석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뉴런만의 활동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것인가? 저자는 소설가와 진화고생물학자의 독특한 대화를 통해 인간 의식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빌어먹을, 마술적 사고라니! 한번 살펴보죠, 아르수아가. 내가 성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물질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건 원자로 이뤄진 게 아니니까요." 이 격정적인 대화는 소설가와 과학자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적 충돌을 보여준다.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 철학에서 지속되어 온 심신이원론과 물리주의의 대립이다. 소설가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만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과학자는 이러한 생각을 "마술적 사고"라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정신적 현상들—기억, 감정, 사고, 꿈—은 단순히 뇌의 신경 활동인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인가? 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는 '퀄리아(qualia)'라고 불리는 주관적 경험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붉은색을 볼 때의 그 '붉음'의 감각, 통증의 '아픔', 사랑의 '느낌'과 같은 주관적 경험들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는가? 뇌의 활동을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으로 변환되는지는 여전히 '설명적 간극'으로 남아 있다.

아르수아가는 컴퓨터 비유를 통해 정신과 뇌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의 관점에서 정보는 항상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하드디스크나 메모리 칩과 같은 물리적 매체에 저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과 기억도 뇌의 신경 회로에 물리적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와 달리, 인간의 뇌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뇌는 정보를 저장하면서 동시에 그 구조 자체가 변화한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불리는 이 특성은 뇌가 경험에 따라 물리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사고와 기억이 단순히 정적인 저장소에 기록되는 데이터가 아니라, 뇌의 구조와 기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적인 과정임을 시사한다. 더욱이, 정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해석자가 필요하다. 컴퓨터의 데이터는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시스템 없이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뇌에 저장된 정보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누군가' 없이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정확히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를 의식의 수수께끼로 다시 이끈다.

​아르수아가는 기억과 감정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뇌의 진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와 같은 원시적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일부로, 인간의 기억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이러한 뇌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합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복잡한 진화의 역사를 가진 다층적 시스템임을 시사한다. 우리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인간 고유의 발달된 대뇌 피질이라는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파충류의 뇌에 해당하는 부분은 생존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고차원적 의식은 원시적 생존 메커니즘 위에 구축된 발전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설명이 의식의 주관적 측면을 완전히 포괄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렵지만, 의식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과학과 철학, 종교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현대 신경과학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지만, 주관적 경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어쩌면 의식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의식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순될 수 있다. 마치 눈이 자신을 볼 수 없고, 칼날이 자신을 자를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의식의 미스터리는 우리를 더 깊은 질문으로 이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경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인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쩌면 의식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탐구하며 경이로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소설가와 과학자의 대화가 최종적인 답변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의식의 탐구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자체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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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균, 죽이는 균, 서로 돕는 균 좋은균, 나쁜 균, 이상한 균 2
류충민 지음 / 플루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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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연 우리 안에는 어떤 균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살리고 죽이며, 때로는 손을 잡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을까? 이번에 관련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류충민님의 <살리는 균, 죽이는 균, 서로 돕는 균>이었다. 흥미로운 균의 두번째 이야기다. ^.^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은 불과 잠깐 등장한 손님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생물은 지구가 생명을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함께해온 오래된 주인이다. 우리가 발을 딛는 모든 곳, 숨을 쉬는 모든 공간, 심지어 우리 몸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생명체들이 없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미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것이다. 죽은 생물을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이다. 그들의 분해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을 가능하게 하고, 식물이 만든 당은 다시 동물의 에너지원이 된다. 이런 순환고리 속에서 미생물은 필수적인 연결고리다. 화성이나 달에 미생물이 없다면 음식물 쓰레기는 영원히 그대로 남을 것이다. 지구에서 유기물이 썩으면서 냄새를 풍기는 것도 미생물 덕분이다. 유기물이 분해되고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면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당을 생성한다. 동물이 이를 섭취하면 장내 미생물이 다시 분해하고, 동물의 배설물 역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이산화탄소가 된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을 제거한다면 지구의 생명체 대부분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미생물, 특히 세균의 놀라운 세계와 그 중요성을 탐구하는 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토마토의 풋마름병 연구부터 시작해 식물과 미생물의 복잡한 관계, 토양 미생물이 식물에게 '기억'을 전달하는 방식, 식물이 소리에 반응하는 현상, 미생물이 곤충의 변태에 미치는 영향, 장내 미생물과 정신 건강의 연관성, 항생제 개발의 도전과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또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나방 애벌레의 발견, 물고기를 이용한 암 연구, 마스크 여드름과 미생물의 관계 등 일상과 연결된 흥미로운 연구 사례들을 통해 미생물이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건강과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부담스럽제 않게 읽을 수 있다.

식물과 미생물의 관계는 깊은 상호작용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의 30퍼센트를 뿌리를 통해 토양으로 흘려보낸다. 왜 이토록 '낭비'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는 뿌리 주변 1밀리미터 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을 위한 것이다. 식물은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토양에 뿌려주는 자선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상호이익을 위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전략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식물이 해충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식물이 곤충에게 공격받으면 특별한 냄새를 풍겨 이웃 식물에게 경고한다. 이것이 바로 '곤충에 의해 유도된 식물 냄새(HIPV)'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생물에 의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미생물에 의해 유도된 식물 냄새(MIPV)'라고 한다. 식물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며 위험에 대비한다. 또한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특별한 물질을 뿌리에서 분비하여 유용한 미생물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끌어모은 미생물은 해충을 직접 죽이거나 식물의 면역력을 높여 해충의 공격을 방어한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만든 페놀 물질들이 토양으로 흘러나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미생물만 살아남아 식물과 계속 상호작용한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토양은 생명의 역사가 담긴 기억의 저장고다. 놀랍게도 식물이 받은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정보가 토양 미생물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된다. 작년에 식물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토양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문자를 갖지 못한 식물이 자손들을 위해 토양에 역사를 새겨놓은 오벨리스크와 같다. 우리가 땅 위를 걸을 때, 수만 년 동안의 기억이 발아래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대지와의 연결감이 새롭게 느껴진다. 토양 미생물은 식물의 '기억'을 유지하는 매개체로서, 세대를 넘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생명의 연속성을 위한 놀라운 전략이다.

과학적 발견의 과정은 종종 우연과 필연이 얽혀 있다.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능력을 발견한 것처럼, 어떤 현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이루어진다.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가 찾고 있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다는 '파랑새 증후군'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큰 몫을 한다. 꿀벌부채명나방에서의 또 다른 발견은 장내 세균과 변태 속도의 관계다. 그람양성 세균이 없어지면 변태가 빨라지고, 반대로 그람양성 세균인 장내구균을 더 많이 넣어주면 변태 속도가 늦어진다. 심지어 자연 상태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바실러스를 넣어도 변태를 비슷하게 늦출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들은 생명체와 미생물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

우리가 미생물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생명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더 겸손하게 재평가하게 된다. 지구 역사에서 인간은 가장 최근에 등장한 손님이지만, 미생물은 지구가 생명을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함께해 온 주인이다. 앞으로도 미생물은 지구 생태계의 건강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생명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수한 미생물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성장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미생물과의 공생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더욱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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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예쁘게 말하면 좋을 텐데
추지윤 지음 / 모티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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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힘을 가진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도 말이고, 가장 쉽게 상처를 남기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듣고, 말하며 살아간다. 어떤 말은 하루를 환하게 비추는 등불이 되고, 어떤 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된다. 말은 마음의 그림자처럼 드러나고, 사람의 본성을 비추는 창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예쁘게 말하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 말은 단지 언어를 아름답게 꾸미라는 뜻이 아니다. 말에는 마음이 담겨야 하고, 그 마음에는 존중과 배려가 깃들어야 한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결국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며, 관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말로 하루를 열고, 또 어떤 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있는가. 이번에 어떻게 하면 예쁘게 말을 전달할 수 있는지 여러 조언을 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추지윤의 <조금 더 예쁘게 말하면 좋을텐데>였다. 예쁜 말을 위한 기술과 저언을 기대해 본다...

말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그 태도는 결국 진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진짜 마음이 오가는 말은 많지 않다. 잘 말하는 사람보다, 곱게 말하는 사람이 더 큰 신뢰를 얻는다. 곱게 말한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를 쓰는 것이고, 경청으로 먼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좋은 대화는 말이 많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잘 들어주는 사람 옆에서 진심 어린 말이 터져 나오고, 그 말은 관계를 깊게 만든다. 듣는 태도에서 시작된 공감은 말의 온도를 높이고, 말투 하나 바뀌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말투에는 마음이 묻어난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딱딱한 어조와 차가운 눈빛이 더 앞선다면 그 말은 닿지 않는다. 반대로 평범한 말이라도 따뜻한 눈빛과 부드러운 말투로 건넨다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결국 따뜻한 리액션을 가진 사람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쳐주며, 상대의 감정에 반응하는 태도는 진심에서 비롯된 배려다. 그리고 그 배려가 말 속에 묻어날 때,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을 연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 감정을 추측하지 않고 묻는 사람,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중심이 된다. 말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전달되고, 반응을 낳고, 또 다른 말로 이어지며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이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말 한마디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같은 뜻이라도 ‘알겠어’와 ‘그래도 내 말이 맞잖아’는 전혀 다른 울림을 만든다.

갈등은 말에서 시작되지만, 위로도 말에서 온다. 말로 다툼이 일어난다면 말로 풀어야 한다. 말은 행동보다 빠르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그리고 그 도구는 연습을 통해 다듬어진다. 칭찬은 구체적으로 해야 하고, 감정 표현은 있는 그대로 해야 한다. “고마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같은 말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예쁜 말을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 셀프 대화는 자신감을 만든다. “나는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는 반복된 자기 암시는 불안을 이겨내는 말의 힘이 된다.

말은 세상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득하는 데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말은 곧 믿음이고, 그 믿음은 태도를 바꾸고, 태도는 삶을 바꾼다. 발표나 인터뷰처럼 중요한 순간에도 결국 말은 마음의 준비에서 시작된다. 완벽한 말을 준비하는 것보다, 따뜻한 말 하나를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울림을 만든다. 숫자를 넣어 구체적으로 말하고, 실수는 솔직하게 웃으며 넘길 줄 아는 여유는 결국 진심 어린 말에서 온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로 위로해주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여러가지 스킬을 잘 설명하고 있다. 매력자본이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와 이를 위한 연습 방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나만의 퍼스널 보이스톤을 찾기위한 스킬을 설명해 준다. 나만의 보이스를 찾기위한 방법이 재미있었다. 또한 대화하면서 필요한 리액션의 3요소(경청,동의/공감 리액션..), 아이컨택의 자연스럽게 하기위한 3개의 꼭지점 등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스킬들을 한아름 제안해주고 있다. ^.^

결국 말은 마음을 닮는다. 따뜻한 말을 한다는 것은 그저 공손하게 말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배려의 태도다. 예쁘게 말한다는 것은 표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곱게 전달하려는 의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준 적도 있고, 말로 큰 위로를 받은 적도 있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말은 조심해야 하고, 말은 연습해야 하며, 말은 사랑처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가. 혹시 나도 모르게 던진 말이 누군가를 지치게 하지 않았는가. 말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마음에 머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을 하기 전에 마음부터 담으려 한다. 따뜻한 말은 나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예쁘게 말하는 것은 곧, 예쁘게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나누는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그리고 나의 하루도 그런 말들로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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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 - DJ 래피의 인생수업 70
DJ 래피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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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왜 움직이는지는 모르는 채, 정해진 길 위에서 방향을 잃은 듯 살아간다. 정답을 향해 달리지만 그 정답이 무엇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그런 날엔 멈추는 것이 오히려 용기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고요해질 때, 그제야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 삶이 내게 가르쳐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한 페이지의 교과서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배워가는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하루를 살아냈는가이다. <배우다!>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사소한 것에서도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저자의 인생수업 70은 흥미롭다... 저자는 어디서 어떤 것을 배우고 또 기억하고 있을까?

처음엔 실패가 두려웠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었고, 넘어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실패는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넓게 바라보게 하는 창이란 것을. 무대 위에서 내려온 후에야 나는 객석의 온기를 느꼈고, 넘어진 자리에서야 땅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게 되었다. 오히려 실패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 순간들이 나를 인간답게 만들었고, 그 아픔이 내 안에 새로운 눈을 띄워주었다. 후회하고,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멈춰서며 나는 천천히 나를 알아갔다. 때론 눈물로 얼룩진 밤이, 가장 깊은 통찰을 안겨주었고, 그 통찰이 내가 내일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었다. 삶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계속해서 질문을 바꾸는 여정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잘 맞히는 것이 아니라, 잘 질문하는 것이다. 내 삶에 대해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가는 과정 속에 나는 조금씩 진짜 나로 자라가고 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면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나무는 서로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면서도 숲을 이룬다. 햇살은 그 틈을 지나며 생명을 틔우고, 바람은 모든 것의 틈새를 지나간다. 관계도 그러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거리에서 피어난다. 억지로 같은 걸 보게 하거나 같은 속도로 걷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걸 보는 걸 허락하고, 서로 다른 걸음으로도 함께 걷는 것이다. 고양이가 자신의 공간을 지키듯, 인간도 저마다의 울타리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 울타리를 존중해주는 것이 곧 사랑이며, 공존의 시작이다. 관계 속에서 배운 것은, 나를 너무 작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무조건 맞춰주기보다는, 나답게 존재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법.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래서 아름답다. 누군가와 다르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나는 다시 자연을 떠올린다. 제각기 다른 나무가 숲을 이루듯, 다름은 조화를 이루는 전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시간표로 살아간다. 내 시계가 조금 느리다고, 혹은 너무 빠르다고 해서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 계절이 순서를 지키듯, 나에게도 내가 피어날 계절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말로 서로를 연결한다. 말은 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벽을 세우기도 한다. 한마디의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빛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림자가 된다. 나는 이제 내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더 조심하게 되고, 더 따뜻하게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오늘도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그런 말이 쌓여 나를 안아주고, 다시 한 걸음 내딛게 해준다.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건네는 말로 하루를 견뎌내는 것이다. 스스로를 향한 말은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소리다. 그 소리가 따뜻할수록 삶은 덜 외로워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말을 듣는다. 칭찬도, 질책도, 충고도, 오해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모든 소리들 속에서도 나 자신을 향한 목소리를 지켜내는 일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그것이 삶의 모양을 결정한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한다.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위대한 일은 멀리 있지 않다. 10분 일찍 눈을 뜨는 것, 한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해내는 것. 그런 사소한 실천들이 우리의 삶을 바꿔간다. 많은 이들이 중간에 포기하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은 결국 해낸다. 천천히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속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완벽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진심을 담고 싶고,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나를 믿고 싶다. 완벽한 날보다 진심을 다한 날이 더 소중하고, 멋진 계획보다 작은 실천이 더 멀리 간다. 삶은 일종의 습관이다. 내가 반복해서 하는 것이 결국 나를 만든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도, 나에게는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의미는 크기에 있지 않고, 마음의 무게에 있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책상에 앉듯 하루를 마주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진심을 다해 살아낸 하루. 그 하루가 쌓여 내가 된다. 실수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고, 잠시 멈춰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배우는 중이니까. 인생은 끝없는 수업이다. 그리고 그 수업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답게 자라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조금 더 남을 배려하고, 조금 더 삶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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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체가 보고 싶은 날에는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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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의 시체가 보고 싶은 날에는>.. 제목이 참 강렬하다. 어떤 장르의 소설일지 궁금하다. 추리소설일까? 그러나 소설은 상실과 연대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힐링 소설이다. 즉,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구보 미스미의 소설은 삶과 죽음, 상실과 치유에 관한 섬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깊은 고독 속에서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어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따뜻함을 느낀 힐링 소설이었다.

소설은 낡은 아파트에서 피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주인공 미카게는 6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언니 나나미와 단둘이 살고 있다. 이 아파트는 '자살 명소'로 알려져 있을 만큼 죽음이 가까운 공간이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어린 두 자매를 남겨둔 채 집을 떠났다. 천식을 앓는 미카게는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야간 학교를 다니며, 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언니 나나미는 어린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밤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미카게의 세상은 좁고 제한적이다. 오래된 단지, 빵 공장, 야간학교에서 만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전부다. 그런 그녀에게는 하나의 특별한 꿈이 있었다. 바로 '언젠가 직접 두 눈으로 시체를 보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미카게는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듯하다.

​"나는 단지 경비원이야. 이제부터 너도 그 일원이 되는 거야."

​미카게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단지 경비원'을 자처하는 노인 젠지로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젠지로 할아버지는 미카게를 단지 경비원으로 임명하고, 함께 아파트 주변을 순찰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이 임무는 점차 미카게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경비원의 임무는 단순하다. "살아남은 자의 생존 확인! 아이들의 안부 확인! 여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없는지 체크!" 이 간단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미카게는 자신의 폐쇄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젠지로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미카게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또한 재일 한국인인 무짱과 말을 더듬는 구라하시라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미카게의 세계를 더욱 넓혀준다. 이들은 각자의 상처와 빈틈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빈틈을 따뜻함으로 채워주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체를 보고 싶어 했던 미카게는 젠지로 할아버지와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다. 단지 경비원의 활동을 통해 미카게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며,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언니에 대한 고마움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미카게의 죽음에 대한 관점도 변화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미카게는 죽음이나 시체에 대해 가졌던 초기의 호기심이 아닌, 보다 성숙한 이해를 보여준다. 오래된 단지의 철거 소식에 직면했을 때, 미카게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소설은 삶의 무게가 각기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의 온기를 통해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지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나름의 아픔과 빈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며, 서로를 탓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빈틈을 따스함으로 채워주며 '함께' 살아간다. 고독하고 메마른 공간에서 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대는 한 소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혀가는 이웃 간의 인사와 어울림의 중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시체'를 통해 죽음을 이해하려 했던 미카게의 바람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치유와 희망으로 전환된다. 구보 미스미는 미카게의 성장을 통해 삶이란 죽음을 넘어서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소설이 주는 따뜻한 위로는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람이 주는 온기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힐링 소설인 것이다.

소설은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구보 미스미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작품이다. 전작인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를 통해 상실을 겪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우리 삶의 어두움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불씨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결국은 삶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의 따뜻함에 대한 이야기다. 미카게의 성장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향한 두려움 속에서도 '살아있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이웃과의 인사나 어울림이 점점 줄어드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미카게가 젠지로 할아버지와 친구들을 통해 배운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기꺼이 자신의 아픔을 내보이고, 타인의 빈틈을 따스함으로 채울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내일은 더욱 희망찬 빛으로 가득할 것 같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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