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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 - 김재원 힐링 에세이
김재원 지음 / 달먹는토끼 / 2025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 한켠에 스며드는 특별한 온기가 있다. 그 온기는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위안으로 우리 삶에 스며든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엄마의 얼굴'은 말 그대로 엄마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상실과 애도, 그리움과 치유에 관한 사색적 여정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세 살, 아직 세상을 다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저자는 제대로 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는 법도 모른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엄마의 부재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함께했지만, 그 시간은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자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물리적 시간의 길이로 측정할 수 없는 영원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상실의 아픔은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우리 내면에 미해결된 감정으로 남는다. 저자는 장모님의 별세를 지켜보며 비로소 자신의 미완성된 애도를 발견한다. 아내가 엄마를 보내며 보여준 슬픔을 통해, 자신이 열세 살에 경험했으나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그 감정의 깊이를 깨닫게 된 것이다.그리움은 오래된 애도입니다. 저자는 상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리움이라는 형태로 우리 안에 잔존한다. 그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이자, 끝맺지 못한 대화이며, 전하지 못한 사랑의 말들이다.
저자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는 언어가 소통의 도구를 넘어 삶을 형성하는 씨앗임을 강조한다. 겨자씨처럼 작은 말 한 마디가 자라서 누군가의 삶에 그늘을 제공하는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이 아니다. 그것은 씨앗이 되어 자라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또 다른 씨앗이 되어 세대를 이어간다. 언어는 인격에서 비롯되고, 인격은 사람의 근본에서 오기에 말은 곧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또한 우리에게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고통으로 찾아오지만, 점차 둥글게 마모되어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 삶을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 된다. 히말라야의 밤하늘에서 본 별똥별처럼, 상실의 기억은 우리 삶의 궤적을 그리며 흐른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제시하는 북두칠성과 같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자의 삶을 비춰준 그 별빛은 엄마와의 짧았지만 깊었던 연결의 증거다.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는 현재성. 이것이 저자가 추구하는 삶의 자세다. 양궁 선수가 환호나 야유에 상관없이 오직 과녁만을 바라보듯, 우리도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활'을 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실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해 준다. "엄마, 정말 정말미안해하지 마세요. 엄마 없이 마흔다섯 해가 넘어도 엄마와 함께한 13년 덕분에 아직도 이만큼 행복합니다." 이 고백은 저자 자신을 향한 자기 치유의 언어이기도 하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도 그 사랑으로 단단하게 성장해 온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꿈에서 라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은 상실의 아픔이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그리움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애도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가 남긴 사랑과 기억은 영원히 저자의 일부로 남아 살아간다. 산문을 읽었지만 시의 향기가 난다는 정승호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 울림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미완의 애도를 깨우고, 상실 너머의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엄마의 얼굴은 결국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다시 사랑을 배우며 성장한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