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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보통 책에서 교훈을 찾는 편이 아닌데 이번 책은 정말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바로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자! 원어민 수준처럼!'
주인공 '진'이 세계대전 중 말레이에서 포로가 된 이후 일본군에게 끌려다닐 때, 잠깐 쉬는 곳마다 촌장이랑 일본군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고 심지어 나중에는 이슬람 촌장과 협상을 하는 걸 보면서 다짐했다. 역시 인간은 외국어를 배워야해.
진 패짓이란 주인공은 가상이지만, 이 이야기의 토대는 실화다. 일본이 수마트라 섬을 침공해 80명의 네덜란드 여인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고 2년 반 동안이나 섬의 곳곳을 이동하게 한 일이 토대다. 물론 진 패짓은 네덜란드인이 아니라 영국인이고 돌아다닌 건 1년도 채 되지 않지만. 어쨌든 진은 어디를 가던 '여자 수용소는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라는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 중년의 여자들과 함께 이동한다. 그 중에서 아이들은 이질에 걸리거나 감염이 되어 죽고 어른들도 견디지 못해 최종적으로 17명 정도만 살아남는다.
보통 2차 세계대전이라고 하면 일본군 성노예가 된 여자들, 아니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진 패짓은 이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에 가지 못한 사람들'
이 말이 준 충격이 너무 컸다. 생각도 못했다. 모든 이들이 잡히자마자 바로 수요오로 간 건 아니었을테니. 특히 이 여자들은 수용소로 가면 그나마 이 긴 여정을 끝낼 수 있단 희망을 갖고 걷고 걷지만 매번 좌절했다. 받아줄 곳이 없다는 핑계로 또 다른 곳으로 보내고.
수용소로 가지 못한 사람들. 그렇게 많은 2차 세계대전 피해자들의 글을 읽었지만 내가 모르는 역사가 또 존재한다는게, 그리고 그걸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슬펐다.
포로로 걷고 또 걸을 때, 진은 초반에 말레이 전통 복장인 '사롱'을 사서 현지인처럼 몸에 둘렀다. 현지인의 옷 답게 그 나라의 날씨나 온도에 딱 맞는 옷이었다. 그러나 다른 영국인 여자들은 그런 걸 어떻게 입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는 결국 진을 따라하게 되었지만.
진이 전쟁이 끝난 후 우물을 지어주러 말레이에 갔을 때, 그녀는 또 사롱을 입었다. 현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갔는데 이걸 또 고깝게 보는 눈들이 있었다. 참, 할많하않 ㅎㅎㅎ. 그깟 옷이 무슨 대수라고 국격을 떨어트리니 뭐니.......
그리고 이 문장. 진처럼 견디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이끌던, 어떻게 보면 16명의 영웅인 '진'에게 줄 수 있는 훈장은 없다는 것. 너무 슬펐다. 16명의 목숨을 살려낸 영웅인데도 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단 게.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더 못살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생각나서ㅠㅠ
두 권 합쳐서 이틀만에 다 읽었다. 정말 흥미진진해서 책에서 눈을 못 뗐다. 하지만 사실 진의 러브 스토리는 딱히 재밌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진이 말레이에 있던, 그 생활 얘기를 좀 더 했음 재밌었을텐데ㅠㅠ
하지만 진이 호주에서 척박한 도시를 '앨리스'처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러브스토리가 있어야 가능했던 거라 어쩔 수 없다.
인생을 진처럼 살고 싶다. 도움을 받았던 것을 간직하고 있다가 더 큰 선물로 보답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는 착실함과 성실함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차분함. 무엇보다도 엄청난 돈을 상속해준 외삼촌....... 나도 어디 없나. 엄청난 유산을 가진 멀고 먼 친척ㅠㅠ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