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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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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아니고 남길 곳이 없어 여기에 남깁니다.
책 소개에 왜 목차가 없나요?
읽을만한 책인지 판단하는데 목차가 중요한 기준이라 생각하는데...
제가 못 찾은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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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20-11-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문의하신 도서 (ISBN 9788932472959) 정보를 업데이트하였습니다. 도서 정보는 제작사/공급사에서 전달 받은 그대로 게재되며, 서버 업데이트 완료 후 웹페이지에 반영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외에도 궁금하신 점을 1:1 상담 창구로 문의하시면 확인 후 속히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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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의 서술자인 '나'는 책과 글에만 파묻혀 살아온 자신에 대한 친구의 비난을 계기로 직접 부딪히는 삶을 경험해보고자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 탄광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누추한 차림새이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낯선 이와 동행을 하게 되는데 이가 바로 조르바이다. 조르바는 '나'와는 전혀 다른, 본능적이고 직감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나'가 찾기 위해 떠나온 바로 그런 삶이라 할 수 있다. 조르바에게 세상의 모든 사물, 사람, 일 등은 신비이자 기쁨이며, 그에게 하찮은 것이란 없다. 그는 책에서 뭐라뭐라하는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들보다 자신이 직접 부딪혀 체험하고 느낀 경험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것이 그의 가치관이자 판단의 기준이 된다. 반면 주인공 '나'는 먼저 책을 통해 알게 된 점이나 자신의 이성을 중요시하고 그것들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 그래서 조르바의 행동은 언제나 빠르고 '나'는 거의 행동하지 않는다.


나의 삶의 방식은 '나'의 삶의 방식과 유사하다. 주로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많이 얻고, 좋은 말로 하면 신중한 것이지만, 소심하여 쉬 결정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일단 부딪혀보고 겪어보고 느끼는 조르바와는 정 반대이다. 이러한 나의 삶의 방식은 나에게 위험요소나 실패는 적게 가져다주었지만 그에 비례하여 기쁨이나 성공도 적었을 것이다.

조르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행동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부딪힘이 있었다. 살인도 해보고 많은 다툼과 싸움, 아픔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르바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맞는 삶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조르바에게 꼭 기쁨이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르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거리낌없이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만족감이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술자인 '나'는 책과 글에만 파묻혀 살아온 자신에 대한 친구의 비난을 계기로 직접 부딪히는 삶을 경험해보고자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 탄광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누추한 차림새이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낯선 이와 동행을 하게 되는데 이가 바로 조르바이다. 조르바는 '나'와는 전혀 다른, 본능적이고 직감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나'가 찾기 위해 떠나온 바로 그런 삶이라 할 수 있다. 조르바에게 세상의 모든 사물, 사람, 일 등은 신비이자 기쁨이며, 그에게 하찮은 것이란 없다. 그는 책에서 뭐라뭐라하는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들보다 자신이 직접 부딪혀 체험하고 느낀 경험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것이 그의 가치관이자 판단의 기준이 된다. 반면 주인공 '나'는 먼저 책을 통해 알게 된 점이나 자신의 이성을 중요시하고 그것들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 그래서 조르바의 행동은 언제나 빠르고 '나'는 거의 행동하지 않는다.


나의 삶의 방식은 '나'의 삶의 방식과 유사하다. 주로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많이 얻고, 좋은 말로 하면 신중한 것이지만, 소심하여 쉬 결정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일단 부딪혀보고 겪어보고 느끼는 조르바와는 정 반대이다. 이러한 나의 삶의 방식은 나에게 위험요소나 실패는 적게 가져다주었지만 그에 비례하여 기쁨이나 성공도 적었을 것이다.

조르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행동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부딪힘이 있었다. 살인도 해보고 많은 다툼과 싸움, 아픔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르바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맞는 삶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조르바에게 꼭 기쁨이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르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거리낌없이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만족감이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듯 감정에 충실한 삶의 태도는 '나'에게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나는 인간의 고통에 따뜻하게, 그리고 가까이 밀착해 있는 이들을 존경했다. 오르탕스 부인이 그랬고, 과부가 그랬고, 슬픔을 씻으려고 바다에 용감하게 몸을 던진 창백한 파블리가 그랬고, 양의 목을 따듯이 과부의 생멱을 따라고 고함을 지르던 델리가 그랬고, 남들 앞에서는 울지도 말도 하지 않던 마브란도니가 그랬다.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겁쟁이로 사태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던 터였다."


그렇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의 태도는 '겁쟁이'로 보일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은 삶의 방식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둘의 삶의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두 사람 모두 '행복을 느끼기에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음'을 깨닫고 나에게 주어진 것에 충실하며 '현재'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조르바던, '나'던, 오르탕스 부인을 비롯한 크레타섬 사람들이던 각자 처한 상황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자기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 수 있는 삶, 그것이 인간의 최고의 미덕이라는 것 말이다.


내 인생에 조르바를 통해 떠올려지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얼마전 나는 일간지에서 윤광준이라는 사진작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고, 이 분의 행동과 생각이 조르바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를 옮겨보면,

"전 관념으로 세상을 조립하기 전에 행동이 먼저 앞섰고, 체험한 후에야 그게 도대체 뭐였는지 나중에 정리하는 삶을 살았어요. 즉각적 감각이 주는 명확함이 더 쉽게 와 닿아요. 먹어보고 짜면 안 먹을거고, 아프면 손을 놓을거란 거죠. 책을 몇권 쓰긴 했지만, 남들이 말하는 독서가도 아니에요. 사람이 모두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도 절대 동의할 수가 없어요. 고전은 이데올로기를 공감시키려는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꼭 책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인간의 기본이나 관계를 얘기하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텐데, 하는 기대가 아직 제게 있어요."


어찌보면 조르바가 '나'에게 비난하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위 인터뷰 내용 중에 와닿는 것은 '즉각적 감각이 주는 명확함'이다. 사소한 일부터 해서 본능에 따라 즉각적으로 행동했을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경험을 나도 몇번 한적이 있다. 더 잘하려고 괜히 한번 더 돌려서 생각해보고 몸을 사리다가 좋은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그동안의 살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내 무의식 속에 저장이 되어 있어서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내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IFEZ 독서행정시스템을 통해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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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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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무거운 말이다. 책장을 펼치기 전 머리에 단단히 안전벨트를 채워 집중하고자 했다.

그러나 저자 강상중 교수는 고민,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을 통해 우리가 좀더 자유롭게, 뻔뻔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방향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자아, 돈, 지성, 청춘, 종교, 노동, 사랑, 죽음, 노년 등 인생을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사유와 연관시켜 제시해 주고 있다.

 

내가 이 책을 20대에 읽었더라면 이해와 공감의 수준은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다.

대학진학이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목표를 위한 기계적인 공부와 생활의 고등학교 시절 이후 대학생이 된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알려주지 않는 이 나침반없는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막막해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자유가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막막했다.

저자는 정치, 종교, 노동, 결혼 등 태어날때부터 모든 것이 의심할바 없이 정해져있던 전근대사회에 비해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많은 자유가 주어진 것이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고 말하는데, 비유를 하자면 나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모든 것이 정해져있던 전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나의 고민과 방황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학 졸업할때까지도, 대학원 공부 마칠때까지도, 직장에서 사회인 역할을 할때까지도 그 고민의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강상중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다. 그것은 '고민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고민하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굳이 그 답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청춘 시절부터 '나'에 대한 물음을 계속하며 '결국 해답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밖에 없다'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본분91~92쪽)"

 

저자의 말대로 삶의 의미, 자아, 자기와 세계와의 관계 등에 대한 고민없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요령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 자신 한때 그러한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민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고,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이 더욱 풍요롭고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고민하라,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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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자서전 - 상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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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후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은 나의 독서리스트의 상위에 있었다. 사실 '행복의 정복'은 그의 학문적인 다른 저서들과 비교해 볼 때 디저트 같은 달달하고 가벼운 종류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 한권에 이 천재 사상가이자 수학자, 철학자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녹아내려있다고 본다.


러셀의 자서전은 프롤로그의 첫 문장에서부터 이미 압도적이다.


"단순하지만 억누를 수 없는 강렬한 세 가지 감정이 내 인생을 지배하였으니 첫째, 사랑에 대한 욕구, 둘째, 지식에 대한 욕구, 셋째,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감정은 이제 나의 인생도 지배하는 것들이 되었고, 이 세 가지 감정에 따라 나의 리뷰도 전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지식에 대한 욕구이다.

러셀은 두 번째로 꼽았으나 자서전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의 지성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전공인 수학뿐 아니라 철학(후에 그는 수학도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라 보았다), 논리학, 정치, 사회운동, 교육 등에서 40여권의 저서와 수많은 강연을 남겼고, 노벨문학상(저서 '결혼과 도덕') 수상자이기도 하다. 방대한 분야에 걸친 그의 연구와 저서는 결국엔 세상과 우주와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모두 출발한다.

관련하여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들은, 15세 때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다가 신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일기장에 이 내용을 쓰는데 결론을 보고 놀랄 가족들에 대비해 그리스어로 일기를 썼다.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기던 소년기의 러셀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는데, 같은 천재들이 모인 캠브리지 대학에서 그는 평생의 친구가 될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말년에 아인슈타인과도 친분 관계가 있었고, 그가 추진한 핵확산금지운동에 아인슈타인이 서명을 해주기도 하였다) 그는 캠브리지 대학 시절까지 수학과 철학 분야에 있어 중요한 책들은 모두 읽었다. 그러나 대학 강의에서는 그다지 배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늦게 얻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신념과 맞는 학교를 찾지 못해 직접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하기도 하였다. 


둘째는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다.

사실 ‘행복의 정복’도 자신의 우울하고 불행했던 소년기와 청년기를 분석해 봄과 동시에 행복은 정복될 수 있으므로 행복해지라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싶었던 그의 따뜻한 마음이 동기가 되어 저술된 것이 아니었을까.

상권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눈뜬 소년기부터 캠브리지대학 시절 등 청년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권은 1차 세계대전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긴 러셀의 핵확산 금지 운동, 평화운동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젊은 시절 수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한 세상의 진리를 얻기 위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던 러셀은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인간의 영혼, 본성에 초점을 두고 연구와 저서 활동을 해 나간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러한 욕구는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핵무기의 위기가 급증하는 냉전시대에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인류를 계몽하고 설득하는 활동에 혼신을 다한다.

그래서 그의 인생의 후반부의 기록에서는 그의 인류에 대한 휴머니즘 정신을 강렬히 느낄 수 있다. 그는 인류가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욕구다.

여성들과의 사랑은 러셀의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공식적인 부인만 4명이었고, 애인들까지 합치면 7명 정도 되는데 모두 지적이고 용감한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러셀은 사랑하는 여인들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훨씬 편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성과 권위를 갖춘 남성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이 발언은 여성인 독자로서 그의 위대함을 더욱 칭송하게 만든다.

물론 러셀이 말한 사랑에 대한 욕구가 이성간의 사랑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인간 본성에 근본적으로 내재된 사랑을 강조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적 능력을 갖춘 남성들이 흔히 사랑에 서툴고 진지하지 못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그리고 러셀도 말했듯이 여성들과의 사랑이 그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이 욕구를 좁은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학문적 성과에 입문해야겠다. 우선 ‘서양철학사’부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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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생활의 발견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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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생활의 발견.....나의 눈을 확 끌어당기는 제목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모 포털사이트에서 박경철씨의 '자기혁명'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으로 나란히 소개해주었기에 더욱 혹한 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은 한마디로 지적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쉬운 안내서이다. 심지어 서재의 온도 맞추기, 손쉽게 자주 마실 수 있는 믹스커피보다는 원두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라는 등의 소소한 조언까지 담겨 있다. 지적생활자가 되기 위해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그러나,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제목만큼 지적이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게다가 일부러 독자층의 수준에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평생 지적생활을 추구해 오신 대학자의 문체로서는 다소 유치하다(이 부분에서는 번역과의 관계도 있을터이나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필자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한 저자 개인과 지인들의 사례를 비롯하여 든 예들이 비약이 심하여 신뢰성에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를 비롯하여 칸트, 괴테, 데이비드 흄, 해밀턴 등 대문호의 지적생활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의 지적생활에 대한 한없는 부러움과 함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과 같은 지적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 즉 돈이다. 저자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며,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불로소득으로 살아간 지식인들이 없었다면 문화도 사상도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와 지적생활이 비례한다는 주장은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여지가 있지만, 서두에 말한대로 지적생활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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