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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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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이라는 제목에서 부터 대략 어떤 내용이 펼쳐질 지 감이 옵니다. 친부모와 친자식간이 아닌, 어떤 사연에 의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워온 부모 자식간의 삶을 둘러싼 미스터리겠지, 하는 예상.

 

 전직 스키선수 출신 히다 히로마사와 그의 딸이자 현직 스키선수인 카자미. 사건은 예상했던 바 대로 흘러갑니다. 여기에 재능과 스포츠 유전자라는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자 유즈키가 끼어들면서 히다-카자미 부녀의 삶에 큰 파문이 일게 되지요.

 

 의문과 의혹, 알을 낳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뻐꾸기가 갑자기 찾아온 데 대한 당혹,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사건의 날개짓, 그리고 반전과 급작스런 파혹破惑.

 

 지극히 히가시노 게이고스런 작품 답게 읽기 쉬운 간명한 문장, 스키와 기타 유전자 과학에 관한 지식약간, 범인은 누구일까, 진실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결합되면서 훌륭한 가독성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명작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그의 소설 가운데 명작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쪽 작품스럽게 미흡하다 여겨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아버지가 딸이 자기 피를 물려받은 진짜 친자식인지 십수년이 지나도록 모를 수가 있을까 하는 것. 물론, 세상에는 이에 관한 정말 기구하고 기묘한, 소설 보다 더 소설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기구하고 기묘한 사연이 절절하게 배어나도록 미리 레일을 적절하게 깔아놓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출산 자체를 직접 지켜보고 챙기지 못했던 아이라지만, 아기때는 몰라도 아이가 커갈 수록 느껴지는 아버지로서의 감이 있을텐데... 게다가 자신도 아내도 제대로 닮지 않은 자식이라면 더욱 더.

 

 뭐, 그럴 수도 있다... 하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흠뻑 감정이 젖어들만큼 충분히 공감가는 설정은 아닙니다. 미스터리를 위해, 지극히 작위적으로 만든 인공적인 냄새 물씬 풍기는 설정일 뿐.

 

 그리고 중반부쯤 어떤 인물의 뜬금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아, 이 사람이... 하는 감이 옵니다. 물론, 그 후 반전과 실제 범인은 따로 있기는 했지만, 세심한 터치로 자연스러운 흐름속에 녹여놓은 장면이 아니라 뜬금없이 툭 떼어다 던져놓은 빵조각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부분이기에 살짝 쓴웃음을 머금었네요.

 

 급작스런 반전과 편지 한 통으로 급 마무리 지은 결말 부분도 꽤나 서툴게만 느껴집니다. 차곡차곡 하나하나 쌓아올려 다다른 감동과 환희의 정상이 아니라, 엉성엉성 겅중겅중 쌓아올린 위태로운 블럭을 편지 한 장으로 접어 날린 종이비행기로 톡- 건드려 와르르 무너뜨린 불균형과 비정상적 구조. 


 일본 현지 출간년도가 2010년으로, 이미 완숙기에 접어든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놓은 작품 치고는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걸작을 쓰기 위해 머리에서 증기 뿜어 가며 썼다기 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공장'에서 찍어낸, 겉만 따끈따끈한 '신상'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역시나 작가와 (아마도 꽤나 비싼 인세 치르고) 이를 출간해 준 국내출판사에는 매우 미안한 얘기입니다만.

 

 작품의 구성과 구조, 감동 모두 지난 해 연말 국내 번역·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스타일상 직접 비교가 어려운 두 작품이긴 하지만, 지난 연말에 받았던 '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야' 하는 감동이 올 연말에는 이어지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 같아 언급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2~3년간 국내에 번역·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가운데 『신참자』, 『마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신참자'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 명작리스트에 올려도 충분한 훌륭한 작품들이고, '마구'의 경우는 히가시노 게이고 극초기작이라는 프리미엄을 얹는다면 리스트에 포함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어쨌거나 구조나 감동은 최상의 작품에 비해 덜 할지라도, 종내에는 결자해지가 이루어지고 따스하고 인간적인 결말과 희망으로 마무리 지어지기에 일말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뜻하지 않게 내 둥지로 들어온 뻐꾸기의 알이라 할 지라도.

 

 그리고 어찌됐건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이 나오면 계속 읽게 되리라는 생각에도 변함은 없습니다. 단순히 이름값이나 정(?!) 때문만은 아니고, 즐비한 범작들 가운데서도 간간이 터지는 명작이 분명 나오는데다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묘한 마력이 그의 작품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탁란托卵, 즉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몰래 낳아 키우게 하는 뻐꾸기의 습성을 모티브 삼아 쓴 작품이고, 다른 이의 자식을 키운 아버지의 삶에 빗대 말한 것이지만, 이와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뻐꾸기 알'에 대한 다른 비유도 해 놓고 있습니다.

 

 바로 의도치 않게, 예견치 못하게 심어진 재능에 대한 것. 탁란에 대한 또다른 비유와 해석만이 이작품에서 유일하게 건져낸, '알'과도 같은 한 구절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수가 없지." (p.395)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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