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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어렸을 적 『개미』를 읽고 정말 흠뻑 매료되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출간되는 족족 무조건 사서 읽었습니다. 그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개미』부터 최근작 『웃음』에 이어 『제3인류』까지. 국내에 번역·출간된 작품 중 펼쳐보지 않은 것은 『파피용』과 『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정도이니, 대부분의 작품들을 섭렵한 셈.
신작 『제3인류』를 막 읽고 덮은 끝에 다시금 느끼는 것은 그의 작품은 딱 『타나토노트』까지가 정말 좋았다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모든 작품이 '개미'와 같을 수는 없지만, 이제는 '개미' 수준의 참신하고 멋진 작품이 하나쯤 더 나올 때도 되었는데, 또 차기작을 기다려 봐야 하나, 이대로 차기작이 나온들 또 다시 기대반 우려반의 마음을 머금은 채 그의 작품을 쉽사리 손에 쥐게 될까 하는 생각.
이번 작품은 현 인류의 모습이 갖추어 지기 전 단계 인류의 모습, 그리고 지금 인간들이 차후 어떻게 변모하며 진화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SF물입니다. 구체적인 과학적·논리적 근거없이 그냥 작가의 막연한 상상에 의한 산물이므로, 그 상상력 자체를 부정하고 경시해 버리면 이도저도 아닌 망상 소설로 치부될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상상의 나래가 초딩에게는 조금 어렵고, 고딩은 시시해 할 듯하고, 딱 중딩들 정도면 낄낄대며 재밌다고 여길만 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작금의 초딩, 중딩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구를 의인화해서 보여주는 여러가지 생각들에는 나름 괜찮은 부분도 더러 있지만, 과학의 날 기념 공상과학 글짓기에서나 볼 법한, 다소 유치하게까지 느껴지는 컨셉과 사유들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이쯤되면, 이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만 놓아도 되는 것인가, 아니, 놓아야만 하는 것인가, 애초에 작가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청소년 층이 아닐까 하는 생각 등 만감이 교차합니다.
최근작들인 『파라다이스』, 『카산드라의 거울』, 『웃음』 등에서 너무 큰 실망을 했기에 한껏 낮아진 기대치에 비해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지만, 제법 거한 초반 도입부에 비해 1권 후반부까지의 다소 지루하고 평이한 진행(매력없는 주인공들도 한몫함), 2권에서 펼쳐지는 뜬금없는 바이러스 창궐과 '에마슈의 대모험' 등이 그 낮아진 기대치마저 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가장 실망한 것은 바로 '에마슈'를 뚝딱 '창조'해낸 부분입니다. '제3인류'라는 제목과 모티브대로 라면 그 '제3인류'가 탄생되고 창조되는 것 자체가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하겠고, 제3인류의 탄생이 좀 더 경건하고 신비롭고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별다른 고민도 걱정도 실패도 없이 그냥 뚝딱 알을 만들어 부화시키고, 번식시키고, 통제하고, '써먹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새로운 생명과 종을 만드는데 있어 별다른 인류학적, 윤리적 고민조차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뭣도 아닌 새로운 '괴물'을 창조하는데 있어 일말의 근심 고민도 없이 그냥 뚝딱 만들어 내다니, 참 쉬운 창조입니다. 애초에 과학이나 지식에 기반한 논리 보다는 지극히 즉흥적인 직관에 의해 만들어 낸 세계이므로, 치밀하고 조밀하게 짜 간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겅중겅중 듬성듬성 지나쳐 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렇게 작은 새 '종'을 만들어 놓고 기껏 한다는 것이 신 놀이, 창조주 놀이, 사육 놀이, 혹은 인형놀이... 마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서 세상을 만들고, 피조물을 만들어 그것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크리쳐들을 길들이고 따르게 만들며 노는 PC게임과도 같은 컨셉.
너무 신랄하게 까댄 것 같아 작가와 출판사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한 때 지극히 애정했던 작가와 그의 작품이다 보니 그냥저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적당히 공치사空致辭하며 지나쳐 갈 수 없어 자꾸만 솔직한 말들이 튀어나옵니다.
현 인류는 식습관 개선과 문명 발달로 인해 키가 커지고 덩치가 커졌지만, 종국에는 작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리라는 주장에는 어느정도 공감이 갑니다. 또한 유치한 컨셉일지언정, 지구를 파괴하고 괴롭히는 발전에 대한 반성,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들도 충분히 곱씹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형태로 끼워놓은 여러가지 잡학과 지식에 관한 글들도 늘 그렇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읽을거리입니다.
그렇지만, 1,2권으로 일단락 된 이 작품이 1부라고 되어 있어 차후 2부, 혹은 그 이상 출간될 것이 예상되는데, 에마슈의 대모험 혹은 에마슈의 대반격, 다가올 에마슈들의 세상이 솔직히 그리 크게 기대되지는 않습니다.
바닥난 상상력을 무리하게 더 쥐어짜지 말고, 차라리 다른 장르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솔직히 소위 글빨 날리는 작가도 아니고, 상상과 설정으로 덧바른 기발함으로 승부하는 작가임을 생각해보면, 괜히 다른 장르 썼다가 조앤 롤링 처럼 평이하기 그지없는, 다소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결과물이 나올까 더 두렵기도 합니다. (뜬금없는 조앤 롤링 격파도 미안합니다 ㅎㅎ) 그렇지만 이 정도 상상과 엉성한 짜임새로는 더 실망하고 말 것도 없이 아예 외면해 버리고 말 것 같아 뭔가 작품인생에 있어서의 승부수를 한 번쯤 던져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품 중간에 바퀴벌레 얘기가 살짝 언급되는데, 개미를 그렇게 썼던 것처럼 바퀴벌레를 수 년간 연구하여 '개미'에 견줄만 한 '바퀴벌레'를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물을 상상해 보면 절로 구역질이 나기는 하지만...;;) 인류가 멸망한 뒤에도 살아남는다는 엄청난 생존력과 적응력을 과시하는 바퀴벌레... 베르나르 베르베르씨, 어쩐지 솔깃하지 않습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