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듯 모를 듯, 아쉬운 듯 그렇지도 않은 듯 - 히라노 게이치로 『결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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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괜찮은 듯 그렇지도 않은 듯, 알 듯 모를 듯, 아쉬운 듯 그렇지도 않은 듯.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는 제게 그런 작품입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탄생과 삶, 그 인간의 마음마다 내재된 뜻모를 악의, 평범한 인생의 가지 끝에 불어닥치는 처연한 광풍. 비교적 명백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지만, 현학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작가의 기교나 표현들이 좀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써 놓고 해석과 해몽은 너희들의 몫! 이러면서 즐기는 것이 작가의 취향인 것인지, 이것저것 평사平射 난사亂射하다보니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럴싸한 소설 한 편이 완성되어 있더라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네요.

 과하면서도 효과적이지 않은 현학적인 수사는 미시마 유키오에 비할 바가 못되고, 이 작품을 '죄와 벌'에 비교한다는 것도 상당한 무리수 같습니다. 딱히 범죄 추리소설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일면만을 바라기에도 조금 부족한, 애매한 포지션이네요.

 뜬금없이 치밀어 오르는 비뚤어진 악의와 괴물의 탄생, 일본인 특유(라고 치부하기엔 일반론적 근거가 부족하지만 어쨌거나 여기에 묘사되고 지적된 바에 따르면)의 음습함과 이중성, 나름 다양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지식과 대사의 향연으로 조각조각 붙여진 기괴한 패치워크만이 폐허처럼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입니다.

 차라리 초반 전개에 바탕을 두고, 가족간의 불신과 뜻모를 의심으로 촉발된 안타까운 붕괴, 시커먼 혈흔을 남기지만 아른거리는 빛이 간신히 스며든 구원의 봉합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밑도 끝도 없는 중2병 괴물과 싸이코패스의 합작 크로스라니요...

 읽는 내내 좀 더 쉽고 명백한 언어와, 장대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흐름이 너무나 눈부신 덴도 아라타의 작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악의가 아니라 시작의 근원이 있고, 힘겹지만 차곡차곡 내딛는 과정이 있고, 종내에는 모든 것을 승화시키고 분출시키는 눈부신 카타르시스가 있는 '영원의 아이'나 '가족사냥' 같은 작품들 말이지요.

 부유하는 가족, 방황하는 현대인, 시공을 잃은 인터넷 공간과 그 블랙홀 속을 떠도는 악의의 향연. 히라노 게이치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설풋 감은 잡힙니다. 그러나 소재도 장치도 결정적인 한방도 모두 그의 괴이한 수사修辭만큼이나 공허하며, 보들보들한 살갗에 온전히 내려와 닿지 못하고 부유먼지가 되어 뒤틀린 황천을 맴돌 뿐입니다. 그가 좀 더 완숙해지면, 불현듯 틀과 형식과 갑옷을 깨부수고 자아의 '결괴'를 이루어내면, 이 작품, 고쳐 써서, 혹은 다시 써서 세상에 다시금 '명시'하고 '과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