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평점 :
'허삼관 매혈기'가 매우 오래된 작품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위화' 라는 작가가 굉장한 노작가 내지는 이미 타계하신 분일 거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었는데, 현지에서도 금년에 출간된 신작 『제7일』을 펼쳐들며 작가 소개를 보니 60년생으로, 부끄러운 오인이 매우 송구스러워지는 창창한 연배시더군요.
검푸른 바탕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영혼같은 존재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표지의 '제7일'은 표지의 느낌과 제목에서부터 대략 무슨 내용일지 짐작되는, 그 감이 크게 빗나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무덤이 없어 안식의 세계로 떠나지 못하고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사이에서 배회하는 영혼들. 소위 귀신이나 유령으로 불리며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로 즉변할 수 있는 존재와 소재들이지만, 위화는 이 실체없는 존재와 소재를 가지고 맑고 투명하며, 서늘하면서도 따스한,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써 냈습니다.
무덤이 없다는 것, 그것은 곧 객사 혹은 억울한 죽음, 혹은 무덤조차 제대로 갖출 수 없을 정도의 궁핍한 삶을 말하는 것일 테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영혼들 모두가 그런 어둡거나 낮은 곳에서 생활하던 소시민들입니다. 제법 황당한 출생 비화와 나름 기구한 삶의 흔적을 간직한 주인공 역시 그렇습니다. 그 물질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영세하고 궁핍한 영혼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쓰다듬고 보듬어주는 그런 시간과 공간의 그 어딘가. 윤회 혹은 천국행 혹은 영원한 배회 그 어떤 여정의 끝을 맞이하건 간에, 종점 혹은 종지부 바로 직전에서 억울함을 풀고,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음을 얻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리던 임을 만나며 정신과 영혼을 정화하는 그런 시간과 공간의 그 어딘가가 바로 이 세계입니다.
기출간된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 등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소재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서글프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위화 특유의 재치있는 표현들로 슬몃 미소지을 수도 있는 동화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짝퉁 아이폰, 쓰레기같은 먹거리, 무분별한 강제철거 등과 같은 현실 비판도 가미되어 있어 작가의 현대적인 감각을 슬쩍 엿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기차가 낳은 아이'라는 황당하면서도 아련한 출생 비화를 가진 주인공 양페이, 그 기차가 낳은 아이를 거두어 일평생을 헌신한 양페이의 양아버지 이야기는 정말 가슴 뭉클하고 시리디 시린 대목입니다. 부모님 생각,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쓸쓸한 뒷모습과 그들의 강맹하면서도 연약한 그림자, 미처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그마 보다도 뜨겁게 내려주는 한없는 자식 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궁핍하고 힘겨운 삶 끝에 저 세계로 쓸쓸히 떠나가는 이들. 그들의 마지막 여정 혹은 최후의 그 일순간에, 지치고 힘겨운 영혼을 위로하는 안식의 손길. 그 손길은 힘겹고 각박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세계의 우리를, 우리의 지치고 때묻은 마음과 가슴을 따스하게 쓰다듬는 안식의 손길일 뿐 아니라, 원망과 분노에 찌든 검붉은 눈꺼풀을 벗겨 내고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삶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가라는, 부모형제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정과 성을 다하며 살라는 구원과 깨침의 이정표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