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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ㅣ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제148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아사이 료의 『누구』. 이 작가의 작품은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로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원작을 먼저 접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보게 된,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동명의 영화를 보고 가슴에 팡 하고 와 닿은 것이 있어 원작까지 찾아 보며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작가가 상당히 어린 나이로 덜컥 나오키 상을 수상.
전작에서는 동아리 활동에 집중하는 고등학생들의 세세한 감정선을 독특하게 담아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며 겪는 고민과 갈등을 제법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소재와 전개의 농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나이에 걸맞는 표현들과 감각이 곳곳에서 비타민 캡슐 터지듯 상큼하게 톡- 톡- 번져나옵니다.
취업준비생들의 고뇌, 학생의 적籍을 털고 새로운 세계로 발딛고 나아가야 하는 청춘들의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포르티시모ff로 연주되고 있는 주제는 바로 'SNS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적나라한 까발림입니다.
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와 스마트폰 세대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거수 일투족을 늘어놓으며 남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팔로우와 맞팔을 주고 받으며 끈끈함 없는 건조하고 휘발성 짙은 랜선 인맥을 넓히는데 주력합니다. 때로는 무지無知와 일회성과 즉흥성이 합치되어 '역시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만큼 어처구니 없는 트윗으로 뭇매를 자처하기도 하는 곳이 바로 SNS 공간이지요.
별 것 아닌 일도 거창하게 꾸미고, 명백한 자신의 잘못도 적당히 남탓하고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식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둘러댈 수 있는 것 또한 SNS를 비롯한 넷 상의 공간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 역시 자신의 취업활동, 혹은 자신의 취미활동에 관한 일들을 최대한 부풀리고 그럴싸하게 꾸며서 트윗질 해 놓습니다. 이를테면, '사상을 전전하다'라는 거창한 제목의, 일견 어려워보이는 책을 읽는 중이라 트윗해놓고도 실상 이제 막 표지 넘기고 첫 페이지 들여다 보는 수준에 그치는 현실처럼 말입니다.
또한, 비밀계정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주변인 혹은 세상의 일들을 향해 마치 악플처럼 냉담하고 잔혹하게, 악랄하게 까대고 씹어대는 행동 역시 비판적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예전같으면 일기장에 솔직하게 술회해야 할 일들을 이제는 본계정이 아닌 '비밀계정'으로 행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더 악랄한 것은, 비밀계정임에도 자신이 누군지 드러내지만 않을 뿐, 누구나 와서 열람할 수 있게 오픈해 놓고 있다는 점. 일기장의 경우도 순도 100%로 솔직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남에게 발견되어 읽힐 각오를 은연중에, 혹은 무의식 중에 하기 때문에 각색되어 윤색되어 쓰여진다고는 하지만, 누군가 내 집에 와서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일기장을 발견해 읽을 가능성은 희박한 반면, 오픈된 비밀계정은 누구나 와서 손쉽게 읽고 그 악랄한 표현과 생각들이 일파만파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과 파괴력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포르티시시모fff로 연주되는 바는 바로 '인간의 이중성'에 관한 이야기. 쉽게 말해 주변 누군가 잘되면 눈으로는 적당히 웃고 입으로는 "축하해~ 잘됐다~ 정말"하면서도 돌아서면 '나보다 잘나가서 속상하다', '그건 내가 되었어야 하는건데', '저런 실력도 없는 녀석이 되다니 세상 정말 불공평하다', '저러다가 곧 짤릴거야', '결국은 망하겠지 뭐'하며 자아의 내벽을 향해 쇠뇌처럼 쏘아대는, 그 악의의 쇠붙이가 고스란히 내 연한 살벽을 찢고 상처내어 피투성이로 만들 것을 알면서도, 마음 고쳐잡고 순수하게 기뻐해주기가 결코 쉽지 않은 비뚤어진 생각과 행동들.
어찌보면 굳이 그것이 적나라하게 지적받을만 한, 결코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직시하는 순간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가 정말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져 견딜수가 없을 정도로 아프고도 힘겨워지는 일이기에, 웬만하면 이런 생각일랑 버리고, 좀 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응원해주고, 나아가 나 자신도 추켜올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자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 되겠지요.
가벼운 터치로 흘려간 흐름 속에 복숭아 씨처럼 박혀 있는, 인간 본성을 뼈아프고 가슴 시리게 바라 보게 만든 그 주제의식이야 말로 나오키 상을 수상하게 만든 힘일테지요.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일 년에 두 번씩 시상하는 나오키상 수상작들이 요즘 소위 '좀 약하다'라는 평들이 많은데, 이렇다 할 대작들이 부재하는 상황이라 수상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바로 앞서 적은 사악하고 악랄한 인간 본성에 대한 지적이 떠올라, 만 스물 세 살 청년 작가에 대한 뜻모를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절로 흠칫하기도 했습니다만 최근 나오키상 수상작들에 대한 평은 어느 출판사 관계자분께 들은 풍문이기에, 흠칫함을 곧바로 내려놓아도 될 듯 합니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에 이어 '누구'까지. 평범한 청춘의 일상과 시선 속에 담아낸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과, 불현듯 가슴을 팡 하고 때리는 세밀한 감정선. 아사이 료의 다음 작품도 평범함 속 비범함을 과시하는 독특하고 눈부신 작품이길 기대하겠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