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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미하일 불가꼬프. 러시아 문학을 즐겨 읽지 않았던 입장에서 참으로 생소한 이름입니다. 설사 비교적 대중적인 러시아 문학을 즐기는 입장이었을 지라도 이 '미하일 불가꼬프'라는 작가는 조금 낯설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해 봅니다. 1920년대 소련의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 부르주아를 옹호하고 혁명에 비판적이라는 명목하에 출판금지 당했던 작가 미하일 불가꼬프. 이번에 번역·출간된 『개의 심장』에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두 편의 중편, '개의 심장'과 '악마의 서사시'가 실려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음울하고 불안하며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창조적이고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의 예술가들이 수없이 억압받고, 그들의 작품이 어둠속에 묻혀졌습니다. 이 미하일 불가꼬프의 '개의 심장'과 '악마의 서사시'를 읽고 보니 상당히 과격하게, 직접적으로, 혹은 누구나 알아챌 수 있도록 빗대어 체제와 급격한 혁명의 병폐를 향해 비판의 총알을 난사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분위기 속에서 그의 작품이 직접적으로 모두 출판금지되고, 그의 작품을 각색해 만든 공연 등도 줄줄이 취소될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느낌 역시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 러시아의 근현대사, 러시아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역자후기를 보면 주인공과 주요인물들의 이름이 상징적인 단어나 동사로부터 재미있게 변형되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등을 갖추고 읽는다면, 더할나위 없는 작품 감상과 깊은 이해가 되겠지만, 이 두 작품의 경우는 굳이 그런 기본적인 이해의 틀을 벗어나 온전히 텍스트만으로 받아들이고 느껴도 제법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빗대어 비꼬고자 하는 바를 캐치해 낼 수 있습니다.
'개의 심장'은 거리를 떠돌던 볼품없고 불쌍한 개를 의사 '필립 필리뽀비치'가 거두어들여, 사고로 갓 사망한 20대 청년의 뇌하수체와 생식기를 이식하여, 인간으로 변형시켜 재창조해낸다는 상당히 기괴하면서도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전혀 생뚱맞은 상상력만은 아니고, 타인의 뇌하수체와 생식기를 이식하여 인격의 변모를 꾀하는 것과 우생학 등에 대한 과학적인 관심 등이 당시 사회적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떠돌이 개 '샤릭'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 짐승보다 못해보이는 인간들의 행동거지와 말들을 비판적으로 그려놓았는데, 능히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법한 상상이지만 그래도 익살맞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개'의 사이 어딘가쯤, 그야말로 '괴물'로 다시 태어난 '샤리꼬프'가 퍼붓는 악담과 맹공 역시 미하일 불가꼬프가 표적으로 삼았던 그 어느 인물들에게는 나름 뼈아픈 한 발 한 발이 되었을게지요. 체제 비판 등에 대한 외적 요소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작품에 있어 상당히 익살스러우면서도 가장 재미있는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백한 메시지. '인간이 인간다워야 인간이지, 외양만 인간이라고 다 인간인 것은 아니다' 하는 것. 그것을 굳이 그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수술과 실험을 통해 실행하고 관찰하고 체험한 다음에야 여실히 깨달은 의사양반들이지만, 그 직접적이면서도 가시적인, 누구나 인지하면서도 의외로 체득하기 어려운 그 만고불면의 진리를 진정으로 마음 속 깊이 깨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비단 이 어리석은 의사양반들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그 실험과, 실험이 가져온 엄청난 후폭풍과, 결국 부랴부랴 수습하게 되는 익살맞으면서도 심각한 양상은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을 되짚어 보게 하는 효과까지도 불러일으킵니다. 무분별한 동물실험,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생명체에 대한 윤리, 그 인공적인 창조물이 만약 '사람'일 경우에 벌어질 엄청난 혼란과 카오스. 이미 유전자 복제에 의해 유전적으로는 완벽히 똑같은 개체가 탄생하는 시점까지 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내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과학이 신의 영역에 다다랐다'며 빛을 과시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그 빛이 만들어낸 거대하고 끝간데 없이 드리워진 깊은 어둠과 그림자를 상상하며 치를 떨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상상만해도 무섭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엉뚱하게 튀었지만, 이 엉뚱하고 생뚱한 상상 역시 이 '개의 심장'의 독특한 소재와 전개가 가져다 준 유익한 산물입니다.
함께 실려있는 '악마의 서사시'는 줄거리와 메시지가 명백한 '개의 심장'과 비교하면 주요 흐름을 캐치하기가 살짝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당시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시민들이 느낄 불안과 혼란과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수많은 신분증과 ID와 비번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나 자신이 누구누구이다 라고 명백하게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면 나 자신도 무척 곤란스럽고 또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아찔한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아주 가끔 악몽으로 꾸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생각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지만, 솔직히 전체적으로 그렇게 매끄럽게 읽히지만은 않습니다. 흔히 번역의 문제인가 의심해 볼 수도 있지만, 역자분이 러시아어 뿐 아니라 이 미하일 불가꼬프라는 작가에도 정통한 분이시라고 하니 아마도 이 작가의 작풍과 문장 자체가 그러한 모양입니다. 살짝 오락가락 하는 부분들도 있고, 아리송 가리송한 문장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 흥미를 고려할 때 '대중 소설'로서의 요소와 성공가능성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당시의 사회상을 충분히 반영했고, 여러가지 비판적인 시각과 안목까지 갖추고 있기에 고전의 반열에도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러시아 문학에 정통하지 못한 일반 대중 독자들이 읽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고, 나름 재미있고, 쉽게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괴하지만 나름 합당한 상상력의 작가 미하일 불가꼬프'. 그의 대표작 '개의 심장'을 읽은 후 뇌리에 남은 인상입니다. 좋은 기회를 빌어 잘 관심을 두지 않던 지역에서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걸음이 닿는대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가 문을 두드려봐야겠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