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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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너무나도 직설적인 이야기 이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이란 명패를 내 건 한 권의 책 안에는 책의 제목만큼이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7가지의 이야기가 옹기종기 모여 세를 내고있다. 이 7편의 이야기는 너무나 신비롭기 그지없다.

세상과의 모든 연이 끊어져 외롭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 여인의 팔에 묶여있던 붉은 끈, 실패한 가장의 가족에 대한 미안한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도플갱어, 죽은 영혼을 맞이하는 마중불과 한 남자의 과거…….

 7편 모두 슬픔과 공포, 그리고 아련함의 경계가 모호하다. 연인을 먼저 보내야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그녀가 죽음을 기다리며 참아야하는 고통은 무섭다. 그리고 전쟁통에 자신이 죽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두고 온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혼령은 무서우면서도 아련하다.

 죽음과 미스터리함이 뒤섞인 이 이야기들은 무섭지만 끔찍하게 무섭지도 않고, 슬프지만 지독하게 슬프지도 않다. 마치 소금간이 덜 된 국을 맛보는 것처럼 밍밍한 듯 하지만 그렇다고 무미(無味)는 아닌 그런 아련함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약간은 무섭고 약간은 슬프면서 또 아련한 이야기들은 아사다지로의 능청스러운 이야기 서술 능력과 만나 좀더 신비로운 색채를 띄게되었다.

 

여름의 무더운 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아스팔트가 간간히 부는 밤바람에도 식지 않고 잠은 오지 않는 그런 밤, 그런 밤에는 기분을 시원하게해 줄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물론 머리채를 한껏 흐트러트린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도 좋고 한 맺힌 여인이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는 이야기도 좋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체감온도가 내려갈 그런 이야기가 열대야가 극심한 여름밤에는 그저 그립다. 아사다 지로의 신작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그런 날 밤에 읽으면 좋을 소설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묘한 이야기]라는 일본의 연작드라마가 생각났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이 드라마는 매회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시청자를 즐겁게 해준다. 캔에서 나온 미녀라던가 중세시대 에도에 떨어진 휴대전화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해 볼 기회조차 없었던 소재로 한 편의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아마도 이 [기묘한 이야기]라는 드라마도 일본의 전통적인 ’기이한 이야기-기담’에서 그 양분을 얻은 것은 아닐까?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또한 그러한 일본의 전통의 테두리 안에 조심스레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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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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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어찌보면 신선하고 발랄해보이기까지 한 표지의 여자는 서점안의 그 많은 책중에서 단연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거기에 "어쩌면 후르츠 캔디"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은 표지와 함께 나의 머리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어쩌면 후르츠 캔디"라니... 어쩌다 보면 후르츠캔디가 되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후르츠 캔디"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어쩌면 후르츠 캔디"라는 제목뒤에 삭제되어버린 문장의 뒷부분은 나의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제목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읽어보기도 오랜만인것 같았다. 과연, "어쩌면 후르츠 캔디"가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일까?

 

"어쩌면 후르츠 캔디"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너무나 운이 좋게 바라던 회사에 덜커덩 붙어버린 젊은 사회초년병 여성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이다. 그녀는 잘난 미모도 날씬한 몸매도, 거기에 적절한 대학의 네임밸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가진거라고는 일단 입사원서를 넣고보는 배짱과 면접장에서 "되고송"을 적절하게 개사해서 부를수 있는 뻔뻔함,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가져왔던 '광고','카피'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어이없게-본인은 물론, 주변사람들까지 믿을 수 없게- 단박에 입사허가를 받게 되고, 한국에서 제일 크고 잘나가기로 1,2위를 다툰다는 광고회사에 입사하게된다.

 

"어쩌면 후르츠 캔디"는 꽤나 인생을 쉽게 풀어낸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덜커덕 붙어 입사를 하게되고, 사람들이 "로얄패밀리"로 오해한 덕분에 신입생활이 조금은 덜 고단하다. 거기다가 외모되고, 능력좋은 남자가 은근히 대시를 해오기도 하고, 본인도 그게 싫지 않다. 어휴~ 이렇게 쉬운 인생이라니... 그녀에게 있어서 고난은 고작 진짜 "로얄패밀리"가 돌아와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고, 그 "로얄패밀리"에게 관심가는 남자를 빼앗기는 정도이다. 휴우.. 나도 살고 싶다. 이런 쉬운 인생...

 

"어쩌면 후르츠 캔디"는 요즘 많이 출간되는 "칙릿소설"이다. 한국소설은 그동안 너무 무겁고 지루하며 너무 진지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래서 많은 독자층을 가벼운 일본소설에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출간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가쉽걸"등의 칙릿소설이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한국소설도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점에서 "어쩌면 후르츠 캔디"는 한국소설이 무겁고 칙칙하다는 이유로 멀리해온 20대 여성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며 거기다가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후르츠 캔디"안에는 내가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그 어떤 특별함도 독특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표지와 제목만큼이나 톡톡튀는 발랄한 이야기를 꿈꿨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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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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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는 지금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헝가리 사람들이 자살을 '서글픈 전통'이라 자조적으로 말 할 정도이다...."

-이정흠作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 중에서-

 

자살. 태어난 것은 비록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내 삶은 나의 선택으로 마감할 수 있다. 나의 선택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그 마지막 순간이 운명처럼 다가오기 전에, 이 삶을 끝내버리는 것을 내 마음으로, 나의 선택으로 택할수 있다는 것은, 과연 행운일까 불행일까?

단언컨데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순간도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본성이 심각하지 못하게 태어나서인지, 아니면 죽여주는 운명론자인 탓인지는 나도 모른다. 'let it be' 또는 '될데로 되라'정도의 정신으로 가볍게 무장을 하고 삶을 사는 나이기에 '자살'에 대해서 깊이있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자살에 대해 짧은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국사에서 가장 싫었던 부분이 일제강점기 부분이었다. 왜 이렇게 힘이 없는 나라여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짜증이 머리 끝으로 솟구쳐 올랐고 시험을 보기위해 그냥 설렁설렁-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면서- 그저 지식을 습득하며 시간을 보냈다. 몇 십년이 지나 '강압'과 '억제', 혹은 '지배'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삶으로 세상을 살고 있던 나에게도 그렇게나 답답하고 짜증나고 열받는 그 시대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살기 싫었던!' 시대였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일본 강점기'라는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신문물이 엄청난 속도로 밀고 쏟아져 들어온 그 시대가 '구'시대적인 사상과 '신'시대적인 사고의 충돌로 엄청나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움과 남에 의해 지배받는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목숨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

 

[경성 자살 클럽]은 그 혼란스럽고 짜증났던 시대를 살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십여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진 지극한 로맨티스트였고, 누군가는 조국을 위해 과감히 목숨을 내건 애국열사였다. 사랑과 조국, 꽤나 거리가 있어보이는 이러한 주제들 사이에는 그들을 둘러싼 삶이 녹록치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놓고 자신의 사랑을 말하기에는 아직은 보수적인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존재했고, 내 나라 내 조국을 입밖으로 내어 외치는 데에는 목숨을 걸만큼 위험했다.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의 고통스러웠던 시대, 그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내던졌다.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라는 책을 읽다보면 유난히 높은 헝가리의 자살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왜 헝가리의 자살률이 그다지도 높은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헝가리 특유의 그 우울함 때문이 아닐까?하고 작가는 생각한다.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문구를 읽었을때 [경성 자살 클럽]을 자연스레 떠올렷다.

수 십 년 전 그 시대를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날 정도로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그 시대의 그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을 못견디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들은 삶을 스스로 종료시켰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헝가리 사람들은 자살을 '서글픈 전통'이라 말한다고 한다. 비단 헝가리 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곳곳에서 그 '서글픈 전통'은 계속되고 있다. 그 '서글픈 전통'이 그 지긋지긋한 전통의 끝을 볼 날이 이 세상에 오기는 할 것일까? 아마도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비록 시대가 바뀌고 삶의 방식도,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하였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살을 꿈꾸고, 시도한다. 여전히 이 시대도 사람들이 살아가기 수월한 시대는 아닌 것이다. 아니, 그 어느 한 순간이라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모두가 살아갈 맛이 나는 순간이 있었나? 아마도 그 전통은 계속될 것이다. 그 전통을 조금이라도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은 더 강해지는 수 밖에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희망적이고 조금은 더 낙천적인 그런 사람이 이세상에 좀 더 늘어났으면, 아니 이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조금 줄어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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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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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이란 학문을, 법의과학자라는 직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몇 해전에야 알았다. 이미 한번 한국을 열풀으로 휩쓸고 간 CSI라는 미국국적의 드라마.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군에 법의과학자라는 직업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살인사건등이 일어나면 바바리 자락을 휘날리며 폴리스라인을 멋드러지게 넘어서는 형사와 경찰도 있지만, 방사선오염도 견뎌 낼듯 중무장을 한, 등에는 "FORENSIC" 또는 "CSI"라는 문구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한 손에는 꼭 메이크업 박스같은 것을 들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CSI라는 드라마에서 길 그리섬이라는 인물에 홀라당~ 반하고 말았다.

 

길 그리섬은 농아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청력에 문제가 있으며 자신의 일에는 언제나 열정적인, 하지만 페이퍼 워크 보다는 자신이 하고싶은 일-논문과 연구-에만 집중하는 그런 인물이며, 또한 엄청난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귀여운 곰돌이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런 길 그리섬의 캐릭터가 유독 돋보였던 에피소드가 몇몇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돼지 시체"를 이용하여 파리의 번식과정을 추적하여 살인사건에 대한 평결을 뒤집는 것이었다. 흐음...

 

그렇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체는 가족들보다도 더 먼저 곤충의 방문을 맞게된다. 꼭 죽음의 향기를 맡고 그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양 말이다. 그리고 사체의 부패정도에 따라 찾아오는 곤충도, 떠나가는 곤충도 생긴다. 우리는 이런 곤충의 생태를 파악하여 사체가 죽은 장소와 사후 경과시간등을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바로 법의곤충학자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이 바로 길 그리섬의 일이기도 하다.

 

13세기 중국에서 집필된 [세원집록]에서 우리는 곤충을 사건해결의 도구로 사용한 인류 최초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오래전부터 곤충의 생태를 통해 살인사건을 해결해왔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혹은 이런 일을 하는 직업이 세간의 관심을 받게된 것은 근래가 처음이지 않을가 싶다. 길 그리섬, 혹은 CSI라는 드라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법의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관심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읽을때는 CSI에서 처럼 즐거움과 스릴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살인자의 프로파일을 읽어내는 것같은 긴장감과 조작된 스릴과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 이 모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드라마틱한 픽션이 아니다. 이 책은 법의과학 분야에서 법의곤충학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솔직히 재미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보기좋게 배신당했다.  이 책은 재미보다는 진실전달에 중점을 주고 있다. 때문에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가 없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미는 없지만, CSI에서 길그리섬이 했던 일련의 행동들-가령 시체에서 나온 벌레를 곱게 담아 적당한 먹이를 주어 번식시킨다던가, 아니면 동물의 피를 냉장고에 보관한다던가-을 이해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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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 열정 -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는 여자들에게 보내는 열정의 메시지
로나 머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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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 Angelina...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매혹적인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관에서가 아닌 한 파파라치 사이트에서 였다. 사실 [본 콜렉터]를 위시로 하여 그녀가 출연하였던 몇몇 작품을 본 적은 있지만, 그녀를 '안젤리나 졸리다!'라고 인식하고 봤던 적은 없었었다. 하지만 한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에서 그녀는 톱스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탈한 옷차림으로 캄보디아에서 입양했다는 자신의 아들과 즐겁게 웃고 있었다. 아들의 손바닥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아먹기도 하고, 아들과 함께 끊임없이 장난치며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 그렇게 안젤리나 졸리가 내 인생으로 찾아왔다. 우연치 않게 보게 된 사진 몇 장은 톱스타로서의 그녀 보다는 그냥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했다. 피부색이 다른 아들과 너무나 완벽하게 모자(母子)의 모습을 이뤄내고 있던 그녀. 그녀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개인적인 관심. 뭐.. 내가 이렇게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차에 브래느피트와 그녀가 연인이 되면서 나는 굳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카데미 수상자인 존 보이트의 딸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 후 어머니에 의해 양육되었고, 그 덕으로 어머니와는 끈끈한 모녀간의 정을 자랑한 그녀. 그녀는 헐리우드의 반항녀로 오스카 수상 후 오빠와의 키스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으며 아버지 뻘인 빌리 밥 손튼과 거침없는 결혼생활로 헐리우드의 '아웃사이더'라는 그녀의 별칭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러던 그녀가 캄보디아에서 아이를 입양하면서 변화한다. 거칠고 거리낌이 없던 그녀의 과거가 거짓말처럼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로,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는 UN친선대사로 그녀는 완벽하게 변신을 했다.

마치 한편의 완벽한 소설과도 같은 그녀의 인생은 브래드피트와의 열애로 더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안젤리나는 변함없이 입양한 아이들과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로, 임신한 몸으로 거칠고 험한 길을 달려 분쟁지역으로 달려가는 UN친선대사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언제가 읽었던 그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본 기억이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죽은 후 사람들이 '헐리우드 영화배우'로 자신을 기억해 주기 보다는 'UN친선대사'로 활동했던 인권운동가로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예전에 스치듯 읽은 인터뷰 기사인지라 확실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스스로 쌓아올린 '셀러브리티'로서의 삶보다 전쟁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었던 운동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혹자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뭐다 말들이 많지만... 뭐...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돈만 주고 말지,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거침없는 자신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롤 모델이다.

 

[안젤리나의 세가지 열정]은 그렇게나 드라마틱한 그녀의 인생을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라.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는 항상 오늘을 산다. 내일 저녁엔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그녀이기에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다. 두 번의 결혼과 양성애자라는 성 정체성, '보이트'라는 아버지의 성을 떼어버리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영화배우로 거듭난 것, 그리고 제 3세계의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는데 까지.. 그녀에게 있어 후회나 주저는 쓸데없는 말들에 불과하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고 세상에 당당했다.

 

둘째.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라.

그녀는 어린 시절 남들에게 '너무 말랐다'는 등의 부정적인 말을 들으며 성장했지만, 스스로 모델이 되었고, 그리고 영화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처참하게 망가져 삶을 마감하는' 역할로 대중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조연이지만 주연을 뛰어넘는 광기어린 연기로 오스카상을 수상한다. 연기력을 인정받으면서도 '툼레이더'라는 오락성 짙은 액션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 촬영 차 찾은 캄보디아에서 아이를 입양하고, 남편과 결별하며, 그동안 쌓아온 섹스심벌의 이미지를 버리고 자애로운 어머니로 거듭난다.

그녀는 흐르는 물과도 같다. 항상 변화한다. 때로는 그 변화가 거친 풍랑을 만난 것처럼 과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냇물처럼 잔잔하기도 하다.

 

셋째.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어린 시절 그녀는 스스로에게 자해를 했고, 그런 자해의 흔적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녀의 몸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 속 역할에 열중하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갔다. SKINNY 한 것이 대세인 헐리우드에서 그녀는 오히려 몸의 근육을 늘리고, 예전보다 불어났긴 하지만 건강해진 자신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몸에 새긴 문신들은 온전히 그녀만의 매력이 되었고, 그 문신들은 때로는 자신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표출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칼을 들고 남자를 때려 눕히는 '뇌세적인 미녀' 안젤리나가 아이를 품에 안고 우윳병을 한 손에 든 '자애롭고 따뜻한 어머니' 안젤리나로 변모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로나 머서는 이렇게 안젤리나 졸리의 삶을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녀의 삶을 바꿀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혹은 조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세가지 모두의 뒤에는 '열정'이 존재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내가 오래 살든, 힘들게 살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원하면 언제라도 생을 마감할 권리가 나한테 있으니까요. 그래서 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태도로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기에 살아있는 동안 열정적으로 살겠다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언젠가 내 삶에서 열정적이었던 적이 있던가 생각해본다. 내 삶은 끓이려다 불을 꺼버린 미지근한 우유같았다. 한번도 내가 열정적으로 부딪혀 정말 신나게 부서져본 적이 있던가? 아니면 성공을 해 본적은? 글쎄? 없었다. 그냥 하루를 미적지근하게 흘려 보내며, 되는대로 하루를 살았다.

그래! 인생을 살면서 한번은! 한번은 '열정적으로', 한번 된통 부서져 원상복귀가 힘들더라도 신나게 '열정적으로'살아보는 것도 참.. 살아볼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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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real florist 2010-02-0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언제봐도 멋지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