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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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가 2011년에 발표한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에이전트 6(Agent 6)"입니다. 이 작품은 냉전시대의 긴장이 다소 완화되기 시작하는 1960년대 후반의 구소련을 배경으로 젊고 유능했던 전직 MGB 요원이자 살인수사과의 수사관을 거쳐 평범한 노동자로 살던 40대의 "레오 데미도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평범한 공장의 매니저로 일을 하는 "레오 데미도프"는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했던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 평범한 노동자가 된 남편 "레오"와는 달리 학교 교장이 되어 소련 교육계의 중요한 위치까지 올라간 "라이사"는 두 딸 "조야"와 "엘레나"를 데리고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레오"도 같이 가려고 노력했지만 KGB를 뛰쳐나온 그에게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 혼자만 모스크바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라이사"와 두 딸들이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인과 소련인 남녀가 같은 날 뉴욕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과 소련은 동시에 단순한 치정에 얽힌 사건이라고 발표를 합니다.


"하나도 잃을 것이 없는 자의 계산된 위험이지. 당신은 최대한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기술의 전문가잖아. 그런 수법은 적당히 써먹고 끝냈어야지. 당신에게 들어간 돈이 얼만데 지금까지 당신이 뭘 했어?"

"내가 소련을 위해 무엇을 더 할지 기꺼이 토론할 수도 있는데."

"토론은 이미 했어. 당신의 임무는 결정됐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군."

그 남자는 셔츠 입은 가슴을 긁다가 놀라울 정도로 길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자신의 손톱을 바라봤다.

"곧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날 거야. 그 일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해. 당신은 카메라를 받았어. 내가 뭘 받았는지 보여주지."

그는 테이블 위에 권총 한 자루를 내려 놨다.


KGB를 뛰쳐나간 "레오"는 이제 권력에서 멀어져 평범한 작은 공장의 매니저로 일을 하는 반면, 중등학교 교장이 되어 점점 실력을 인정받게 된 "라이사"는 조금씩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오"는 아내 "라이사"를 질투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며 입양한 두 딸과 아내가 함께하는 삶에 만족해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중심인 냉전의 갈등과 긴장이 조금씩 식어가면서 형성된 화해무드에 편승해서 소련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의 합동 공연이 UN 빌딩에서 기획되고 "라이사"는 소련학생들을 인솔하여 두 딸을 동반한 채 미국 뉴욕으로 떠나게 됩니다. 같이 가고 싶었던 "레오"는 괘씸죄로 인해 모스크바에 혼자 남게 되고 아내와 두 딸이 뉴욕으로 떠나는 여행에 불길함을 느낍니다. UN 빌딩에서 공연하는 당일 과거 미국에서 인기 가수이자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던 흑인 남자와 소련인 여자가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과 소련은 이 사건을 오래된 인연이 만들어낸 치정 사건으로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모스크바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던 "레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뉴욕에서 죽은 소련인 여자가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라이사"였기 때문입니다.


레오는 라이사의 눈에서 두려움을 봤다. 물론 그리고리가 잘못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녀는 두려웠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마침내 레오는 그녀에게 뭘 줄 수 있을지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줄 수 있었다. 그게 대단한 재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시절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내를 만족시키고 그를 사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레오는 라이사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노력해볼께요."


전쟁 영웅이자 비밀경찰, 수사관으로써 소련 사회의 특권층이었던 "레오"는 이젠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누리던 특권을 포기하고 전 보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가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가 비밀경찰을 그만둔 이유는 "레오" 자신이 국가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 "라이사"가 싫어해서 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레오"에겐 "라이사"가 삶의 지침이자 자신을 비추는 양심이 되었습니다. 그런 "라이사"가 뉴욕에서 살해당합니다. 미국과 소련은 단순하지만 치욕적인 이유를 대며 죽은 "라이사"를 모욕하고 "레오"는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찾아내기로 다짐하며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레오"는 무려 16년에 걸쳐 "라이사"가 죽은 바로 그 장소, 뉴욕까지 가기 위해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다가 잡히고 결혼한 두 딸에게 더 이상 피해가 가지 않도록 국가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일을 받아들여 아프카니스탄으로 가서 죽은 아내 "라이사"가 그토록 싫어했던 비밀경찰이 다시 되지만  "라이사"를 잊기 위해 아편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조국이 벌이는 나쁜짓에 동참하게 되지만 결국 어떻게든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자신의 나라 소련과는 너무도 다른 미국. 하지만 미국 역시도 국가의 힘이 국민의 눈을 쉽게 가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레오"는 오랜 시간을 견디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냅니다. 비록 불륜을 저질러 애인을 죽였다는 오명을 벗겨내지 못하더라도. 정말로 이 여정이 너무 눈물겹도록 슬프고 애잔해서 몇 번이나 울컥하는 것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이바노프, 자넨 날 모르지. 하지만 난 자네가 저지른 짓을 알고, 엘레나의 아빠인 레오 데미도프도 잘 알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레오가 알게 되면 자넬 찾아서 죽일 거야. 그 점은 내가 상당히 확신해. 자넨 즉시 시내를 떠나야 해. 자네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몰라야 해. 그렇지 않으면 레오가 내게 물어봤다가 내 거짓말을 알아차릴 거야. 같은 이유로 만약 자네가 누군가에게 말하면, 가족 중에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레오가 자넬 찾아낼 거야. 자네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입도 벙긋하지 않고 사라지는 거야. 물론 결정은 자네가 내리는 거지. 행운을 비네."


이 작품 "에이전트 6"는 삼부작의 첫 작품 "차일드 44"에 녹아있는 미스터리적 요소는 별로 없습니다. 삼부작 두 번째 작품인 "시크릿 스피치"보다도 더. 사실 저는 "차일드 44"도 이데올로기와 그 사회에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미스터리 요소를 도구로 사용했다고 생각하기에 그 점에 대한 불만 없이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작품 "에이전트 6"는 그냥 공산국가였던 구소련에서 살던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 삼부작이 고스란히 "레오 데미도프"라는 한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영웅에서 비밀경찰, 살인사건 수산관, 평범한 노동자에서 다시 점령지에 파견되는 군사고문이 되었다가 조국의 반역자가 되는 "레오"의 인생은 작가 "톰 롭 스미스"가 말하고자 하는 국가가 만들어낸 유토피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목격하게 되는 허구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신념에 대한 환상이 가리고 있는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영리하게도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구소련을 이 이야기의 주 무대로 고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 "레오"의 마지막은 처음부터 비극이 될 운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타

다른 승객들은 이 브랜드의 악명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환타 병이 카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도 몰랐고, 취조실에서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속에 이 브랜드가 어떤 공포를 만들어내는지도 몰랐다. 여기 뉴욕에서 환타는 설탕이 들어 있는 음료수이자 활기찬 재미의 상징 이상은 아니었다. 레오는 그 광고를 빤히 보면서 자신이 또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이라고 느꼈다.


사실 저는 이 작품 "에이전트 6"가 슬프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어서 각오하고 읽었는데도 잘 참다가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창피하게도 말이죠.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집념과 사랑, 희생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꼭 "레오 데미도프"삼부작을 연달아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제가 상용구처럼 쓰는 생생한 캐릭터들, 잘 짜인 플롯 같은 글들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레오"의 인생을 쭉 따라가시다 보면 마지막에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실 겁니다. 어쩌면 제가 그랬듯이 마지막 장에서 눈물을 흘리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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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띠리 2015-06-09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라이사`가 .....비극이군요....
미스테리보다는 공산국가의 첩보전에 무게를 두면 되겠죠~?^^

다크차일드 2015-06-09 07:19   좋아요 0 | URL
첩보전이라기도 애매하고 그냥 역사스릴러로 보시면 될듯 합니다.

즐건독서 2015-07-0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께 다 읽었는데, 라이사가 갑자기 죽어서 ㅜㅜ.
레오의 인생을 쭉 따라가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