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짓는건 생각보다 많은 내공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단순히 의미가 좋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듣는 사람이 긍정적이며 신선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음성학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유성음과 무성음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카누‘를 다시 보게 된다. 언어는 브랜드의 집이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대상을 느끼고 ‘인식‘한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할지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언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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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인중개사로 일하며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양재 네오나비에서 시작해 부천에서 독서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본깨적 방식‘은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등에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소설은 토론으로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 유형의 독서모임을 참고한 것으로 만족한다.

개인별 독서발표는 ‘본깨적 방식‘으로 발표를 한다. ‘본깨적 방식‘은 양재나비에서 권장하는 독서법인데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으로 나누어서 독서를 하는 것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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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애나는 선교사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는 다른 자녀를 일찍 떠나보냈기 때문에 아이가 오래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살아남은 형제자매의 이름을 따 폴리애나라는 이름을 지었다. 엄마를 일찍 여의고 아빠와 조금 더 긴 시간을 보냈다. 형편이 어려워 선교사 지원품으로 필요한 물품을 조달받았기 때문에 자원이 늘 부족했다. 받고 싶은 인형 대신 목발을 받아 슬펐지만 이걸 사용하지 않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며 ‘기뻐하기 놀이‘를 시작했다.

폴리애나가 11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모인 해링턴부인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모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의무감에 아이를 떠맡았지만 기쁨으로 양육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모의 찡그림과 무표정에도 폴리애나는 웃는 낯으로 대한다. 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낸시와 동네 사람들에게도 해피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과 같은 수다스러움이 느껴진다. 한 순간도 입을 다물기 어려운 10대 초반의 에너지와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난다. 낯선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손을 내미는 아이의 행동이 마을을 변화시켰다. 자신에게 위기가 다가와 도무지 기뻐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했던 방법대로 위로를 전해주었다. 선한 영향력을 주고 받는 모습에 흐뭇해진다. ‘폴리애나 효과‘가 궁금한 사람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추천!!!

아빠는 하느님이 우리한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을 일부러 팔백 번이나 하신 이유는 우리가 많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길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더 많이 기뻐하지 못한 게 부끄러워졌대요. 그 뒤로는 힘들 때마다 그 구절들이 크게 위로가 됐대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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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무라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소위 금수저다. 결혼은 했지만 처자식은 살던곳에 두고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며 산다. 서양의 춤을 주제로 쓰지만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외국어로 된 자료에 근거해 쓴다. 이 작은 접촉면은 남녀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행지에서 고마코와 요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마음만 앞뒤로 움직일뿐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자들의 관계도 독특한데 고마코는 병약한 남자의 치료하기 위게 게이샤가 됐고, 요코는 그 남자를 이 고장에 다시 데려와 병수발을 하고 무덤을 돌본다. 시마무라가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동네에 불이 난다.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눈이 많은 고장이 배경이다. 그래서 고립되었다는 느낌은 없지만 단체로 오는 다른 손님들과 다르게 시마무라는 혼자다. 그래서 주변인과의 소란함이 느껴지지 않는데 고마코가 9할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카톡 대신 공간을 오가면서 쉴새없이 소식을 전한다. 연애소설의 불타오르는 감정의 선과는 다르게 시마무라의 마음은 개미만큼 움직인다. 그가 서양의 춤을 다루는 태도처럼 멀리서 관조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고마코와 요코는 환상계에 존재하는 무언가처럼 여겨지는 느낌이다. 요코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도 감정이 부각되지 않는데 관찰자이자 방관자로 보인다.

읽다 포기한 바쇼 하이쿠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의 매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겐 어려운 책이었고 평가의 배경이 궁금해진다.

털보다 가느다란 삼실은 천연 눈의 습기가 없으면 다루기 어려워 찬 계절이 좋으며, 추울 때 짠 모시가 더울 때 입어 피부에 시원한 것은 음양의 이치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시마무라에게 휘감겨오는 고마코에게도 뭔가 서늘한 핵이 숨어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한층 고마코의 몸 안 뜨거운 곳이 시마무라에게는 애틋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애착은 지지미 한 장만큼의 뚜렷한 형태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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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소망 없는 불행>은 자살한 엄마의 일생을 회고하는 이야기이다. 무언가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한 개인은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특정한 생활을 할 것을 강요받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요구를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했고 아이들의 소망을 나중에는 비웃기까지 했다. 여성의 호기심을 말살시키고, 가난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회의 요구를 내면화하면서 잘 사는 듯 보였지만 끝내 죽음을 선택했던 점을 미루어보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것 같다. 여자의 일생에 연민이 드는데 자식의 입장에서 감정을 빼고 서술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끝까지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이 이야기>는 연극배우인 아내와 글쓴이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아내는 집을 나가고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된다.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체념하는 아이를 보며 고통을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 취급 받으며 아이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독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딸에게 축복을 비는 어느 시인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한 사람이 겪어낸 두 가지 영역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여자의 아들로 살았던 과거와 여자를 양육하는 현재의 시차도 존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위치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어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내 가족이 겪은 고통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당연히 생겼을 것 같다. 관찰자로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듯 보이지만 끝까지 지켜보는 눈동자를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끝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는 아이를 잘 키울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어 <소망 없는 불행>이 더 와닿았다. 유난히 여자들에게 폭력적이었던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대물림되는 삶이 이런 유형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대에는 어디까지 끊어낼 수 있을 것인지, 나중에 이 또한 잘못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나 또한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만났다. 페터 한트케의 다른 저작이 궁금하다.

반년이 지난 후 아이는 새 학교에 대해 반항하기를 포기했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거의 말하지 낳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처지에 동의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언뜻 볼 때면 때로는 운명에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까지 남자는 나이 든 한 인간의 두 눈에서나 그런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운명에 체념한다는 것은 극단적이고도 슬픈 폭력을 생각나게 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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