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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43번 국도가 곧바로 바라다보인다.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부터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 길은 서울로 통하는 길이다." '그래도 해피 엔드'중에서.
어머니는 원래 도시분이다. 서울에서 계속 지내시는 이유가 서울에 사는 친구분들도 있겠고, 자식들을 모두 키운 그리고 돈을 모아 장만한 집에 대한 애착도 있겠다. 그리고, 서울특별시민으로 갖고 있는 일등국가 일등시민 자격이라는 자랑도 있다. 묻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 장모님 두분다 그러신다.
일찌감치 서울의 변두리에 살기보단 편리한 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아들은 경기도에 산다. 경기도란 상대적으로 싼 값에, 서울과 멀지 않은, '그래도 해피엔드'의 할머니처럼 위안을 가질 만한 거리에, 지방(경기도민은 지방이라고 생각 안한다!)에 가면 서울사람이라고 위엄을 부릴 수 있는 동네이다. 경제적인 효용과 사회적인 포장의 일거양득 경기도.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다.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상전의식이지 동기간의 우애는 아니다. 상전의식이란 충복을 갈망하게 돼 있다. 예전부터 상전들의 심보란, 종에게 아무리 최고의 인간 대접을 한다고 해도 일단 자신의 거룩한 혈통이 위태로워졌을 때면 종이 기꺼이 제 새끼하고 바꿔치기 해주길 바라는 잔인무도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상전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애를 찾았다."
팀장으로 조언을 들었다. 조언이니까 실행은 선택이었다. 많은 시간동안 조언에 공감했고,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승진하고,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사람이 있어야 한다' 팀장을 하는 동안 내내 자기사람의 의미는 일이 있을 때 아무때나 일을 시켜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 우리(회사라기보다는 팀과 팀장)의 이익을 위해 투쟁할 사람이었다. 그 댓가로 내가 많이 챙겨주어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마음 속에 조금은 사람에 대한 상전의식이기 때문에 불편했다. 다만 회사에서만 상전의식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갑의 계약관계가 편리한 사람들이 있다. 종종 갑의 관계가 계약을 넘어서 을의 모든 세계를 넘보기도 한다. '거저나 마찬가지'처럼.
어머니, 손주를 이미 본 할머니들의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준 좋은 단편집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후에 거의 20년만에 작가님을 만났다. 외국소설에 빠져 오락만 하다 마음이 따뜻한 소설에 감사하다.